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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스틸] 이승엽, 2006년의 '데자뷰'를

기사입력 2008.02.29 16:53 / 기사수정 2008.02.29 16:53

박현철 기자

여러분은 2년 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을 기억하시나요? 당시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은 결코 쉽지 않은 상대들이 버틴 아시아 지역 예선을 포함해, 6승 1패를 기록하며 '세계 4강'의 쾌거를 일궈 냈습니다.

특히, 미국 전에서는 종주국의 자존심을 무참히 짓밟으며 7:3으로 승리 했습니다. 당시 선발 투수 손민한(34)에게 미국 전 주심이 너무나 좁은 스트라이크 존을 적용하는 등, 편파 판정에도 불구하고 얻은 승리라 더욱 값졌습니다.

당시 3번 타자로 나선 이승엽(32. 사진, 요미우리 자이언츠)은 이 경기에서 당시 플로리다 말린스의 에이스였던 'D-Train' 돈트렐 윌리스(26.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를 상대로 선제 솔로포를 작렬하는 등 대단한 활약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감명이 깊었던 것은 댄 휠러(31. 템파베이 레이스)가 이승엽을 고의 사구로 출루 시켰던 장면입니다.

경기장에서 직접 관전한 현지 교포는 '이 고의사구만으로도 한국 야구 역사 상 길이 남을만한 날'이라고 평했습니다. 역사를 만든 그 날로부터 2년이 지난 현재, 김경문(50. 두산 베어스)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은 2008' 베이징 올림픽 최종 예선을 앞두고 있습니다.

난 원래 3번 타자다!!

대표팀이 앞둔 최종 예선은 지난 12월 아시아 야구 선수권 우승을 달성하지 못한 후 거치는 일종의 '월드 플레이 오프'이자 '패자 부활전'이 되겠죠. 야구 팬들은 완벽한 클린업 트리오를 갖추기 위한 한국의 필수 요소, 이승엽의 페이스가 좋아 점점 더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이승엽은 지난 24일 단국대와의 연습 경기에서 중월 솔로 아치, 이튿날 5타수 3안타를 기록하는 등 왼손 엄지 부상 후유증을 완벽히 떨친 듯한 모습입니다. 대표팀의 3번 타순을 꿰찬 이승엽은 이후 대표팀의 주포 다운 면모를 조금씩 되찾고 있습니다.

사실 이승엽에게는 4번 보다 3번 타순이 더욱 익숙하지요. 1999년 한 시즌 50홈런(54홈런) 시대를 기록할 때도 3번 타자였고 2003년 '56발'을 쏘아 올릴 때도 3번 타자였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WBC에서도 이승엽은 대표팀 부동의 3번을 지켰습니다.

이승엽은 히팅 포인트가 다른 타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뒤에 있고 임팩트 순간의 손목힘이 좋아 좌측으로 타구가 향하더라도 비거리가 상당합니다. 따라서 정상 컨디션일 때는 상대가 수비 시프트를 마음대로 놓기 버거운 스타일입니다. 여기에 지난 시즌 내내 자신을 괴롭혔던 부상을 떨쳐 낸 이승엽이라면 3번 타자로 놓기에 안성맞춤입니다.

이승엽의 뒤를 잇는 4번 타자 김동주(32. 두산)와 5번 타자 이대호(26. 롯데 자이언츠) 모두 밀어치는 능력을 갖춘 선수들이라 꼭 홈런이 아니더라도 적시타로 득점이 연달아 이어지는 '연쇄 효과'를 노릴 수 있습니다. 세 명의 컨디션이 모두 정상적이라는 전제 하에서 말입니다.

각오도 남다릅니다. 이승엽은 지난 20일 최종예선이 열리는 대만으로 출국하기 전, "야구가 열리는 마지막 올림픽인 만큼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밝혔습니다. 올림픽 대표로 나서는 마지막 대회. 3번 타자 이승엽은 어느 때보다 남다른 각오로 대만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거인 군단 4번 타자', 자존심을 위해!!

요미우리의 외국인 선수 이승엽은 "대회가 끝나면 곧바로 일본으로 돌아가 시범경기에 출장하겠다."라고 밝혔습니다. 자신이 노리는 거인 4번 타자 자리에 지난 시즌 리그 타점 1위(122타점), 최다안타 1위(204개)에 빛나는 알렉스 라미레스(34)가 경쟁자로 나섰기 때문입니다. 하라 다쓰노리(49) 감독 앞에서 하루 빨리 '무력 시위'를 해야 하는 처지이죠.

사실 이승엽에게 4번 타자 자리는 원래 '텃밭'인 '3번 자리'에 비해 커다란 이익을 가져다 주지 못합니다. '거인 군단의 4번 타자'라는 명함은 '국회의원 뱃지'처럼 반짝거리는 '좋은 훈장'입니다. 그러나 바로 앞에서 찬스를 맞는 3번 타자 오가사와라 미치히로(35)는 '해결사'스타일의 타자입니다. 2번 타자로 나설 때도 번트 없이 그냥 휘두르던 타자라 이승엽의 타점 기회는 상대적으로 줄어 듭니다.

게다가 요미우리는 교과서와도 같은 톱타자가 아닌 지난 시즌 35홈런의 '거포' 다카하시 요시노부(33)를 리드 오프로 기용한다는 계획을 놓고 있습니다. 밥 먹으려고 식판을 들고 갔는데 다카하시가 일찌감치 제 몫을 챙겨 먹고, 오가사와라가 또 '와구와구' 식판에 퍼간다면 이승엽의 식사는 그만큼 줄어들겠죠.

그러나 이승엽은 지난해 말, "개막 경기부터 일본 시리즈까지 요미우리 4번 타자 자리를 끝까지 지키겠다."라며 굳은 각오를 보여 주었습니다. 야구 팬들은 이미 지난 아시아 야구 선수권에서 일본과의 실력 격차가 크게 줄어 들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인 타자 이승엽이 2008년 '요미우리 부동의 4번 타자'로 나선다면 앞으로 일본 진출을 노리는 한국 선수들의 가치까지 상대적으로 높아질 가능성도 커집니다. 메이저리그 진출 시에도 '일본 명문 구단의 풀타임 4번 타자 출신'라는 명함은 이승엽의 가치를 더욱 높여줄 것입니다.



이승엽은 한국을 올림픽에 견인하고 나서 그 어느 때 보다 강력한 경쟁자를 상대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는 이미 2년 전에 겪었던 일이기도 합니다. WBC 4강을 견인한 후 요미우리의 1루를 놓고 경쟁하던 조 딜론(33. 전 밀워키 블루어스)을 밀어낸 것이 바로 2년 전 일입니다.

베이징 행 티켓을 따내는 동시에 올림픽에서 메달을 목에 걸고, 2년 전의 배팅 감각을 그대로 재현한다면 이승엽의 2008년은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할 것입니다. 다만, 동료들의 부상이나 컨디션 난조, 부진이 이어지면서 2년 연속 리그 B클래스(4~6위)에 머물렀던 안 좋은 추억까지 가져오지 않길 바랍니다.
 


<사진=요미우리 자이언츠>



박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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