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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결산⑤] '징크스는 그만' 통쾌한 복수의 장

기사입력 2016.07.12 05:48 / 기사수정 2016.07.11 11:14

신태성 기자

 
[엑스포츠뉴스=신태성 기자]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한 달이 흘러갔다. 유로2016은 11일(한국시간) 포르투갈의 역사적인 첫 우승과 함께 대회 종료를 알렸다. 이번 대회서는 경기 전부터 축구팬들의 관심을 모았던 '리벤지 매치'가 유독 많았다. 단순히 친선 경기 패배에 대한 화풀이가 아니라 짧게는 몇 년에서 길게는 수십 년 동안, 혹은 지난 메이저 대회에서 악연을 맺었던 팀끼리의 복수혈전이다. 이에 대회를 마감하며 굵직한 몇 경기를 뽑아봤다.
 
이탈리아 vs 스페인
 
이탈리아는 이번에도 유로 토너먼트에서 스페인을 만났다. 직전 두 번의 유로 대회에서 스페인에 패하며 대회를 마감한 기억이 되살아나는 순간이었다. 2008년 8강에서 마주친 두 팀은 무득점 공방 후에 승부차기서 4-2로 이케르 카시야스가 지안루이지 부폰에 판정승을 거뒀다. 4년 뒤 재회한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조별리그에서 1-1로 승부를 보지 못했다. 그러나 결승에서 이뤄진 재대결은 스페인의 4-0 완승으로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이번 대회에서는 이탈리아가 웃었다. 미리 보는 결승전으로 불렸던 16강전에서 경기력으로 상대를 압도하며 2-0 승리를 이뤄냈다. 이탈리아는 스페인 선수단을 일찌감치 집으로 돌려보내며 대회 3연속 맞대결이라는 악연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번 경기에서 단 한 번도 등 뒤를 허락하지 않았던 부폰은 카시야스와 작별 인사를 나누며 훈훈한 모습까지 보여줬다.
 
독일 vs 이탈리아
 

스페인에 복수를 성공한 이탈리아는 다음 단계에서 또 다른 복수극의 희생양이 됐다. 이탈리아의 8강 상대인 독일은 자국 축구 역사상 메이저 대회에서 이탈리아를 넘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토너먼트의 제왕이라 불리는 독일조차 총 8번의 경기에서 4무4패의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게 만든 국가가 이탈리아다. 통산 전적을 살펴봐도 33전 8승10무15패로 확연히 열세였다. 이탈리아가 스페인을 꺾고 기세 좋게 올라온 상황이라 걱정은 배가됐다.
 
하지만 이는 기우에 불과했다. 과정은 힘들었지만 토너먼트의 승자는 독일이었다. 독일은 승부차기까지 가는 혈투 끝에 이탈리아를 무찌르고 4강에 안착했다. 승부차기는 공식 경기 결과에서 무승부로 기록되기에 개운하게 징크스를 깬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독일은 살아남았다. 이와 더불어 승부차기에서 무려 각 팀의 9번째 키커까지 가는 명승부를 연출한 마누엘 노이어와 부폰의 퍼포먼스도 팬들 기억에 남을 것이다.
 
프랑스 vs 독일
 
이쯤 되면 이번 유로는 고도의 설계 작업이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고 했던가. 스페인에 보복한 이탈리아를 상대로 독일이 아픈 기억을 청산하고, 그 독일에게 프랑스가 설욕전을 가졌다. 프랑스가 1958 스웨덴월드컵 이후 메이저 대회에서 세 차례 만났던 독일은 난공불락이었다. 1982 스페인월드컵에서는 당시 축구팬들에게 ‘토니 슈마허’로 더 유명한 하랄트 슈마허 골키퍼가 승부차기서 두 번의 선방을 기록, 독일에게 승리를 선사했다. 4년 뒤 멕시코월드컵에서는 2-0, 가장 최근에 있었던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는 1-0으로 프랑스가 패했다.
 
이런 상황에서 프랑스는 처음으로 유로 대회서 독일을 만났다. 프랑스는 독일에 고전해왔던 월드컵이 아니기에 해볼 만하다는 입장이었다. 아이슬란드전 상승세와 개최국 이점도 자신감을 끌어올리는 데 일조했다. 최고의 컨디션을 자랑하는 앙투안 그리즈만이 골망을 두 번 갈랐다. 마침내 프랑스는 58년 만에 메이저 대회에서 독일을 꺾었다.


포르투갈 vs 프랑스
 
포르투갈은 프랑스에 햇수로 41년, 횟수로 10차례 동안 무승부 한 번 얻어내지 못하고 모두 무릎을 꿇었다. 여기에는 두 번의 유로, 한 번의 월드컵 경기가 포함돼있다. 그 중 유로1984에서 3-2 패배를 제외한 두 맞대결은 모두 지네딘 지단에게 페널티킥으로 결승골을 헌납했다. 10연패를 당하기 전까지 포르투갈은 프랑스와 14전 5승1무8패로 비등비등했으나 이제 상당히 격차가 벌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마주친 경기가 하필 유로2016 결승전이다. 포르투갈은 심리적 부담감을 추가로 안고 결승전을 치르게 됐다. 그리고 결과는 에데르의 연장전 결승골로 기적 같은 승리. 연패 기록을 10경기에서 끊어내면서 우승컵을 들게 된 포르투갈은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이 날을 위해 오랜 고통의 시간이 있었던 듯 포르투갈은 우승으로 자신들의 징크스 탈출을 자축했다. 연쇄적으로 이어진 복수극 최후의 승자는 포르투갈이었다.



웨일스 vs 잉글랜드
 
상대 전적 102전 14승21무67패. 웨일스가 잉글랜드에게 얼마나 무시 받았을지 생각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웨일스는 1958 스웨덴 월드컵 외에는 메이저 대회 본선 무대조차 경험해보지 못했다. 그렇기에 잉글랜드보다 좋은 성적을 올렸던 기억도 58년 전이 마지막이다. 이번 대회서도 웨일스는 직접 대결해 승리를 따내지 못했다. 조별리그 1차전서 잉글랜드를 잡을 뻔했던 웨일스는 후반전 연속 실점으로 2-1 역전패를 기록했다. 그러나 웨일스는 잉글랜드보다 우월감을 느낄 수 있게 됐다. 그 이상의 가치를 창출해냈기 때문이다.
 
웨일스는 조별리그서 잉글랜드를 제외한 나머지 두 팀을 이기며 승점 6점으로 잉글랜드를 제치고 B조 1위에 올랐다. 또한 토너먼트에 올라가서도 당당히 준결승전에 진출해 16강에 그친 잉글랜드보다 훨씬 높은 곳에서 대회를 마무리했다. 두 번이나 비교 우위를 점하며 간접적으로 승리를 거둔 셈이다. “잉글랜드보다 높은 순위에 있다는 것은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다”라고 인터뷰했던 가레스 베일은 아마 이번 대회에 만족했을 것이다.
 
이들만큼 끈질긴 인연으로 주목받지는 못했으나 유로2016에서 지난 대회의 설욕을 해낸 팀들도 있다. 아일랜드는 유로2012 조별리그 C조 최종전에서 이탈리아에 0-2 패배를 당했다. 이번 대회 조별리그 3차전에서 아일랜드는 후반 막판 극장골로 1-0 승리를 일궈냈다. 비록 상대는 조 1위를 확정한 뒤 후보 선수들을 대거 기용한 이탈리아였지만 아일랜드의 전력을 생각해보면 대단한 성과다. 이 승리로 16강까지 진출했으니 아일랜드에게는 더 의미가 큰 복수였을 것이다.
 
크로아티아는 터키에 앙갚음했다. 유로2008 8강에서 단두대 매치를 벌였던 두 팀의 경기는 연장전 두 골을 추가한 터키의 3-1 승리로 끝났다. 크로아티아는 자신들의 이번 대회 첫 경기 상대가 결정된 뒤부터 복수의 칼날을 갈았다. 그 결과 루카 모드리치가 경기를 지배하고 결승골까지 넣으며 원맨쇼를 펼친 크로아티아는 기분 좋은 승리로 유로2016을 시작했다.
 
물론 복수가 항상 성공하지는 않았다. 절치부심 후 야심차게 복수전에 임했지만 오히려 또 한 번 얻어맞기만 한 팀들도 있다. 아일랜드는 프랑스에 지난 2010 남아공월드컵 예선에서 티에리 앙리의 ‘신의 손’ 사건이 터졌던 경기를 설욕하지 못했다. 벨기에는 36년간 메이저 대회에서 이탈리아를 이기지 못했던 기록을 이어갔다.

vgb0306@xportsnews.com / 사진=유로2016 공식 홈페이지 캡처

신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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