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김유진 기자] 배우 이학주가 조금씩 스며드는 매력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를 마주하면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고 말하는 시의 구절이 떠오른다. 본인의 표현을 빌려 '남 얘기 하듯' 무심하게 말한다지만, 그 말 속에는 투박한 진심이 묻어있다.
독립영화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고, 또 접했던 사람이라면 '이학주'라는 이름은 더욱 특별하게 와 닿는다. 단편 '밥덩이'(2012), '12번째 보조사제'(2014), '폭력의 틈'(2015), '치욕일기'(2015) 등에 출연하며 탄탄한 연기력을 다져왔다.
지난 해 영화 '검은 사제들'을 봤다면 극 중 강동원이 연기한 최부제가 원작 '12번째 보조사제'에서 이학주의 캐릭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화가 인기를 모으면서 원작인 '12번째 보조사제'가 여러 차례 재조명됐고, 이학주 역시 함께 화제선상에 올랐다. 그리고 많은 이들에게 이름을 알린 계기가 된 이 작품은 이학주가 꼽는 자신의 터닝포인트가 된 작품이기도 하다.
"주변 사람들이 '네가 하던 역할을 강동원 선배가 하더라'고 하던데요"라며 웃은 이학주는 "'12번째 보조사제'가 이렇게 큰 영화가 되는 게 신기했죠. 제게는 정말 재밌게, 또 치열하게 찍었던 작품이었어요"라고 회상했다. 실제 이 작품으로 이학주는 제12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에서 단편의 얼굴상을 수상하며 자신만의 확고한 입지를 다져왔다.
지난해부터는 한 발자국씩 걸음을 더욱 넓혀나가는 중이다. 영화 '무뢰한'의 단역은 물론, 드라마 '오 나의 귀신님', '드라마스페셜-짝퉁 패밀리'로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오가며 시청자와 가까이에서 교감했다.
▲ '날,보러와요'로 상업영화의 문턱을 넘다…모든 것이 배움의 순간
가장 눈에 띄는 결과물은 영화 '날, 보러와요'(감독 이철하)다. 4월 7일 개봉한 이 작품은 106만 명의 관객을 모으며 일찌감치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비중 있는 역할로 첫 상업영화에 함께 한 그에게는 이 모든 것 역시 새로운 경험이고, 도전이었다.
이유도 모른 채 정신병원에 납치 감금된 여자와, 시사프로 소재를 위해 그의 사연에 관심을 가지고 취재를 시작한 시사프로그램 PD가 밝혀낸 진실에 대해 이야기하는 실화 소재 스릴러 '날, 보러와요'에서 이학주는 주인공 수아(강예원 분)가 강제입원 된 정신병원의 보호사 동식 역으로 등장한다.
이학주는 정신병원에서 일어나는 참혹한 현실과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수아로 인해 괴로움과 갈등을 겪는 동식의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다양한 이야기를 추측하게 하는 영화의 열린 결말을 두고서도 동식의 존재가 다시 한 번 부각되며 이학주 역시 함께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최근 자신을 둘러싼 주위의 반응을 전한 이학주는 "인스타그램을 잘 안 하는데, 팔로워가 많이 늘었더라고요. 친구들도 그렇고 잘 봤다고 문자도 보내주고 하니까 좋죠"라며 미소 지었다.
단편영화 작업 당시에는 또래들과 함께 하는 경우가 더 많았기에, 상업영화 현장에서 느끼는 사람들과의 만남은 좀 더 다르게 다가왔다. 긴 호흡으로 이어지는 상업영화에 처음 뛰어들었던 당시의 기억을 꺼낸 이학주는 "작품 규모가 이전에 제가 하던 것보다는 커졌는데, 옆에서 선배들, 스태프 분들이 제가 편안하게 할 수 있도록 많이 도와주셨어요. 감독님과 얘기도 많이 나눴고요. 쉽게 적응했던 것 같아요"라고 회상했다.
이철하 감독은 이학주에게 '묻히지도 튀지도 않았으면 좋겠다'는 디렉션을 줬다. "무슨 말인지 잘 몰랐다. 추상적이지 않나"라고 웃으며 고민했던 시간을 떠올린 이학주는 자신의 성격과 동식을 대비해보며 조금씩 캐릭터를 완성해나갔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저와 굉장히 비슷한 부분이 많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어떤 불의에 닥치면 잘 참아요.(웃음) 불의를 보고 참다가도, 좀 큰 일이 생기면 '어떤 행동을 해야 된다'는 마음을 가지고 사는데, 동식이도 그렇지 않았을까 생각했어요. 수아를 도와준 것도 큰 결심을 했던 것 아니었을까요. 저 역시 그렇게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살기 때문에, 그런 입체적인 캐릭터라고 생각하며 접근했죠. 감독님께선 해야 할 역할을 딱 해주고, 또 빠져 있을 땐 빠져 있는 것을 원하셨던 것 같아요. 감독님을 믿고 갔죠 ."
'날, 보러와요'의 촬영이 이뤄졌던 곳은 전라도 광주의 한 폐건물에 만들어진 세트장이었다. 좁고 한정된 공간 속에서 집중하며 연기를 펼쳐나가는 것이 힘들었을 법도 하지만, 이학주는 "좁은 곳에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보니 인간 이학주로서는 답답한 부분도 있었는데, 연기를 할 때는 그런(답답한) 부분이 공포스럽게 더 잘 그려져서 집중하는 데는 더 좋았어요. 그렇게 감정이 필요한 신들에 집중하면 잘 안 웃게 되더라고요"라고 털어놓았다.
영화 속 이학주의 모습을 본 주위의 반응 중 대다수는 '평소 모습 같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학주는 "제일 친한 친구는 '분위기 잡지 마라, 이상하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저도 제 연기를 VIP 시사회 때 처음 봤는데, 아직은 제 연기를 잘 보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조금씩 적응해나가고 있는 것 같아요. 다들 열심히 하라고, 정말 잘 봤다고 얘기해주셔서 감사해요"라고 인사를 전하며 "'날, 보러와요' 같은 미스터리 스릴러는 조각을 맞추는 재미가 있잖아요. 가능성을 열어놓고 찾아갔던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라고 작품에 흠뻑 빠져들었었던 마음을 전했다.
▲ "타인의 삶을 잘 대변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단편영화를 찍던 시절,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했던 시간을 지나 현재의 이학주는 소속사(SM C&C)의 든든한 지원을 받으며 성큼 성큼 걸어 나가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이학주의 시계는 올해도 바쁘게 돌아간다. 6월 방송을 앞둔 OCN 드라마 '38 사기동대'에 출연을 확정하고 촬영에 한창이다.
이학주는 "혼자 할 때는 아는 사람들과 작업을 했었고, 잠깐 만나 촬영하고 이러다 보니 친구들이랑 일하는듯한 느낌이었죠. 아무 생각 없이, 즐겁게 했던 것 같아요. 혼자 한다는 게 굉장히 막연하고 두려울 수도 있는데, 이제는 저를 믿어주는 사람이 생긴 거잖아요. 아무도 안 믿어주는, 저만 보이는 어떤 미래를 이제 같이 봐주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게 책임감과 부담감도 있지만, 감사하고 힘이 되는 부분이 더 큰 것 같아요"라고 설명했다.
처음부터 연기자를 꿈꿨던 것은 아니었다.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출신인 그는 "차가운 겨울날 맨 손으로 조명 같은 기계를 만지는 게 싫었다"고 특유의 솔직한 화법으로 연기를 시작하게 된 다소 엉뚱한 계기를 전했다.
"영화를 만든다는 게 사실 좀 버겁더라고요. 상상이 잘 안된다고 할까? 그건 큰 그림을 그리는, 리더 같은 느낌이 좀 더 큰데 저는 쑥스러움이 많은 편이기도 했고요. 연기를 해보니 재미있었어요. 연기를 한다는 건 일반적인 삶을 살다가 갑자기 다른 길로 가게 되는 것이잖아요. 무서움도, 두려움도 있었죠. 다시 돌아오려고 한 적도 있었지만 주위(극단)의 형, 누나들이 많이 챙겨줬고, 조언도 해줘서 힘이 됐어요. 지금도 계속 잘 만나고 있죠."
그렇게 '연기는 내가 할 것은 아니다'라고 생각해 오던 삶에 잔잔한 파동이 일었다. 환상이 없었기에 깨질 편견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는 이학주가 누구보다 자연스럽게 연기와 연예계에 녹아들 수 있던 이유가 됐다.
스스로를 '운이 좋았다'고 표현한 이학주는 "제가 작업했던 사람들이 다 좋았고, 그 분들이었기 때문에 제 시작 역시 좋을 수 있었죠. 제가 빨리 배울 수 있도록 가르쳐주셨고, 지금도 미천하지만 많이 배우고 있어요. 제가 의도하지 않은 기회도 생각보다 빨리 왔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점이 운이 좋은 게 아닌가 싶어요"라고 담담하게 전했다.
이학주는 자신이 생각한 배우, 그리고 연예인이란 직업을 '실감하려고 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짧은 시간동안 굵직하게 스쳐간 많은 일들을 경험하며 느꼈던 두려움도 앞으로 쌓아나갈 경험의 한 페이지로 조용히 담아내고 있는 중이다.
"제가 제 일을 제 일처럼 못 느끼는 게 있어요. 자기 상황을 못 받아들이고 마치 남일 보는 것처럼 말이죠.(웃음) 지금은 실감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받아들이려고 스스로 노력하고 있는 것도 같고요. 예를 들면 독립영화 같은 경우는 공개가 안 되는 경우도 있잖아요. 그런데 장편영화 같은 큰 작업들은 개봉을 하면, 또 드라마는 방송된 후에 바로바로 피드백이 와요. 제가 잘 못할 수도 있고, (저를) 싫어할 수도 있으니까 거기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어요. 물론 반응이 좋으면 좋지만요.(웃음)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에 대한 보상을 받는다는 느낌임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를 할 때는 매주 매주가 무서웠었죠. 사실 이 직업은 대중 앞에 서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것에 중압감을 받을 수도 있는데, 일을 하는 것 자체는 신입사원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저 역시도 신입사원이죠. 열심히 하는 건 똑같으니까요.(웃음)"
일상 속 이학주는 영화 감상을 좋아하고, 야구팀 넥센 히어로즈를 응원하는 보통의 20대 청년과 다르지 않다. 지금은 배우 이학주로, 또 삶을 살아가는 스물여덟 청년 이학주로도 좀 더 성숙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그다. 지난해를 의미 있게 매듭졌던 만큼, 출발이 좋았던 2016년도 꽉 찬 시간으로 만들어가고 싶은 바람이 크다.
"올 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배낭여행을 꼭 가고 싶어요. 제가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친구와 태국에 갔다 온 게 제 주도적으로 갔던 여행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거든요. 여행을 다녀온다고 꼭 성숙한 사람이 되는 건 아니겠지만, 곧 서른이 다가오는 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작품도 열심히 하고, 여행을 다녀올 수 있는 여유도 좀 있었으면 좋겠네요."
'왜 연기를 하는지'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을 통해 배우로의 목표도 조금씩 정립해나가고 있다.
"맨 처음 '연기를 하겠다'는 마음을 먹었을 때는 '재미있어서'가 1번이었죠. 그렇지만 흥미 위주로만 연기를 한다고 하면, 재미가 없어지면 안하게 되는 거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직업에 대한 의의를 찾아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변호인'의 송강호 선배처럼, 다른 사람의 삶을 잘 대변해줄 수 있는 그런 연기를 하고 싶죠. 보는 이들이 감정이입을 잘 할 수 있는, 그런 배우가 돼야겠다는 것은 맨 처음 '배우가 돼야 겠다, 연기를 해야겠다' 마음먹었을 때부터 생각했던 거고요. 만약 그렇게 될 수 있다면, (저 나름대로는) 성공한 배우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이제는 잘 달려가는 일만 남았다. "저를 응원해주는 친구들, 같이 연기하는 친구들이 잘됐으면 좋겠다고 응원해줘서 정말 고마워요. 부모님께도 '하고 싶은 일 하겠다'라고 했으니 그 기대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여드려야죠"라고 꾹꾹 눌러 담은 진심을 얘기하는 이학주가 채워나갈 '배우'라는 도화지 속 공간들을 지켜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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