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김유진 기자] '독특했다'. 배우 최민식이 영화 '대호'(감독 박훈정) 촬영을 마친 소감으로 계속해서 언급한 단어들이다. 최민식에게는 잊지 못할, 그의 말대로 너무나 독특했던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든 '대호'가 지난 16일 개봉했다.
'대호'는 일제강점기, 더 이상 총을 들지 않으려는 조선 최고의 명포수 천만덕(최민식 분)과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를 둘러싼 이야기를 다룬 작품.
지난해 '명량'의 성공을 통해 한국영화 최고 흥행 기록의 선봉에 섰던 최민식이 내놓은 차기작이자, 100% CG로 구현될 조선 호랑이의 웅장한 모습이 예고되며 일찍부터 많은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다.
'대호' 개봉을 앞두고 서울 종로구 부암동 서울미술관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최민식을 만났다. 영화 속 카리스마와는 또 다른, 부드럽지만 온화한 기운을 한없이 내뿜던 최민식과 '대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대호'에서 최민식은 조선 최고의 명포수 천만덕으로 등장한다. 영화가 천만덕과 '대호'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만큼, 호랑이 CG의 역할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6개월의 긴 촬영 기간 동안 대역 배우, 혹은 파란색 천을 마주하며 대호를 상상했다. 그리고 개봉 전 시사회를 통해 드디어 '김대호' 씨의 진짜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김대호'는 최민식이 '대호'를 부르는 이름으로, 시사회에서 대호를 주연배우라 칭하는 등 남다른 애정을 보인 바 있다.
최민식은 "진짜 연기 잘한다, 반갑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호탕하게 웃었다. 이어 "처음 영화를 하기로 마음먹었을 때부터 CG를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한 막막함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대호가 어떻게 그려지느냐에 따라서 우리 영화의 성패가 좌우된다고 봤다. 우리가 아무리 훌륭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한들 호랑이가 고양이처럼 나와 버린다면 공염불이 되는 것 아닌가. 주어진 여건 속에서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열매가 항상 단 것은 아닐수도 있기에, 내심 불안함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정말 완성된 작품을 보니 그런 마음을 가진 게 미안할 정도로 너무나 감사했다"고 털어놓았다.
대호는 짐승이지만, 그 나름대로의 캐릭터를 가진 동물이다. 그 중에서는 만덕과 교감을 나누는 장면들도 포함돼있다. '대호'처럼 현실과 판타지가 섞여있는, CG로 구현된 작품들을 만나는 것이 전혀 낯설지 않은 시대가 됐지만 막상 형체가 없는 상대를 상상하며 연기하는 것은 쉽지만은 않았다.
"관객 입장에서 CG가 많이 들어가는 작품을 보는 건 전혀 어색하지 않은데, 막상 내가 연기를 하려니 맥도 빠지고 재미가 없더라"고 다시 한 번 소리 내 웃은 최민식은 "저 뿐만 아니라 (정)만식이, (김)상호 모두 눈에는 안 보이는 실체를 그리며 연기해야 하는 것이었지 않나. 정말 재밌는 경험이었다"고 회상했다.
조선 최고의 명포수로 이름을 날린 천만덕은, 하나뿐인 아들 석(성유빈)을 비롯해 가족에게만큼은 누구보다 자상하고 따뜻한 아버지다. '잡을 만큼만 잡는' 산에 대한 예의 역시 누구보다 잘 아는 인물이기도 하다.
최민식은 "옛날 우리 아버지들의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다"면서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속정은 깊은데 겉으로 표현을 잘 안하고 또 못하는 그런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다"면서 "어렸을 때부터 사냥꾼들을 쫓아다니면서 총 쏘는 것을 배우고, 늘 산의 품속에서 살았던 인물이기에 그 고마움을 아는 거다"라고 설명을 이었다.
대호에 이어 자연스럽게 작품을 함께 한 정만식, 김상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실제 최민식은 시나리오를 읽고 포수대의 리더 구경 역에 정만식을 떠올렸고, 그를 추천해 작품에 함께 하도록 도왔다.
최민식은 "정만식, 김상호 이 두 배우들이 정말 대단하다. 대본 리딩, 회의를 할 때도 느꼈지만 얼굴에 분장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정말 극 속에서는 이들이 수 십 년 동안 포수 일을 한 산사람처럼 보여야 했다. 그건 대본에 안 나와 있는 것이지 않나. 의상, 메이크업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그건 배우들이 각자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라며 캐릭터에 완벽히 녹아든 후배들에 아낌없는 칭찬을 건넸다.
부자지간으로 호흡을 맞춘 성유빈과도 허물없이 지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하는 일이니 사람과 친해지면 되는 것이다"라고 여유를 내보인 최민식은 "내가 중학생이 되면 된다. 실제의 (성)유빈이도 또래에서 볼 수 없는 깊이가 있더라"며 애정을 보였다.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5월까지는 꼬박 '대호'와 함께 했던 그다. "올해는 진짜 '대호'가 제 머릿속을 꽉 채웠던 해다"라고 한 해를 돌아본 최민식은 "정말 홀가분하다. 또 허탈한 마음도 있다. 그런데 우리 일이 그런 것이니 그건 어쩔 수 없는 거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활시위는 나갔으니 관객 분들이 잘 봐주시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는 바람을 덧붙였다.
최민식은 '믿고 보는 배우'라는 수식어에도 "부담보다는 스스로 그런 면에서는 좀 자유롭다"고 말했다.
그는 "제가 출연하는 작품을 즐겨봐 주시고, 저를 믿어주신다는 것은 배우 입장에서는 정말 고마운 일이다. 어떤 작품은 잘 될 수도, 잘 안 될 수도 있기에 항상 '기본에 충실하자', '만드는 재미로 살자'는 마음을 가진다"면서 늘 그랬듯, 꾸준한 모습으로 관객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연기 27년차의 베테랑 배우는 그렇게 다시 한 번 단단하게 자신을 다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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