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김승현 기자] 중요한 경기에서 감독들의 승부수는 내용의 차이를 가르기 마련이다. 상대팀의 전력을 분석한 뒤 장점을 꺾기 위해 내던지는 과감한 카드패는 위험 요인을 수반하지만, 이것이 주효했을 때 크나큰 환희와 희열을 선사한다. 며칠 간 이 시대의 명장이라 불리는 감독들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즐기면서 원하는 성과를 거뒀고, 소속팀의 진일보를 주도할 수 있었다.
첼시의 조제 무리뉴 감독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프리미어리그 33라운드에서 커트 조우마 카드를 빼들었다. 본직이 중앙 수비수인 조우마는 제공권과 빠른 발을 소유해 이미 수비형 미드필더로 배치된 적이 있고, 이때마다 무리뉴 감독은 짭짤한 수익을 올렸다.
리그 6연승을 달리며 상승 가도를 올린 맨유의 중심에는 마루앙 펠라이니가 있었다. 194cm의 압도적인 피지컬을 통한 하늘 지배, 그리고 동료들에게 내주는 세컨드 볼은 첼시가 차단해야 하는 공격 루트였다. 중책을 부여 받은 조우마는 펠라이니의 활동 반경을 제약했고, 1-0 승리에 기여하면서 무리뉴 감독의 신뢰에 보답했다. 사실 비기기만 해도 리그 우승에 탄력이 붙었던 첼시는 3위 맨유와 승점 차이를 11점으로 벌리며 독주 체제를 굳혔다.
무대를 바꿔 22일과 23일 양일 간에 펼쳐진 유럽챔피언스리그에서도 변칙 기용은 빛을 발했다. 바이에른 뮌헨의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 선수를 쳤다. 1차전 FC포르투 원정 경기에서 1-3으로 패하며 뮌헨 부임 후 최대의 시련에 직면한 과르디올라 감독은 이를 바득바득 갈며 2차전을 기다렸다. 뮌헨은 포르투의 곪은 상처를 짓누르며 경기를 쉽게 풀어 나갔다.
포르투의 좌우 풀백인 알렉스 산드로와 다닐루가 경고 누적으로 결장해 무게감이 약해진 점을 간파한 과르디올라 감독은 필립 람을 오른쪽 측면으로 배치했다. 윙백 출신인 람은 적합한 옷을 입은 마냥 활개를 쳤고, 전의를 상실한 포르투는 전반전에만 다섯 골을 내줬다. 뮌헨은 6-1 대승을 거두며 준결승에 진출했다. 마티아스 잠머 뮌헨 단장은 "람의 측면 배치는 좋은 전략이었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뮌헨에 내린 축복이다"고 추켜 세웠다.
바통은 레알 마드리드의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이 이어 받았다. 올 시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 3무4패로 절대 열세에 시달리던 레알은 하필 챔피언스리그 8강에서 재회하며 부담감을 떠안았다. 1차전에서 단단한 수비벽을 넘지 못하며 득점 없이 비긴 레알은 홈구장에서 결판을 내야 했다. 레알은 루카 모드리치의 부상이라는 비보를 접했고, 아이세르 이야라멘디, 사미 케디라, 루카스 실바를 대체자로 내세우기에는 탐탁치 않았다. 안첼로티 감독은 세르히오 라모스를 전진 배치하는 결단을 내렸다.
영국의 BBC가 안첼로티 감독을 도박사라고 칭할 정도로 가시가 박힌 카드였다. 아틀레티코의 세트피스를 라모스의 제공권으로 제어하려는 안첼로티 감독의 의중은 적중했다. 라모스는 2차례의 걷어내기와 4차례의 공중볼 경합 성공으로 수비에 힘썼고, 레알에서 가장 많은 71회의 패스를 시도해 83.1%의 성공률을 기록했다. 아르다 투란의 경고 누적 퇴장도 이끌며 승리의 숨은 공신이 됐다.
경기 후 이스코와 치차리토는 라모스 시프트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을 정도로 파격적인 기용이었다. 안첼로티 감독은 "라모스는 이 포지션에서도 제 기량을 발휘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유연한 전술을 내세운 전략가들의 치밀함은 더 높은 곳을 바라볼 수 있는 근간이다.
김승현 기자 drogba@xportsnews.com
[사진= 무리뉴, 과르디올라, 안첼로티 ⓒ AFPBBNews=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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