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의 새 앨범 '사랑했으니..됐어'가 10일 발표됐다. ⓒ 씨제스엔터테인먼트
[엑스포츠뉴스=한인구 기자] 가수 거미(본명 박지연·33)는 2003년 데뷔했다. 헤어진 연인을 찾아 헤매는 '그대 돌아오면'으로 선 굵은 음성과 애절한 음악을 담아냈다. 그 뒤로도 R&B를 발판삼아 다양한 장르를 넘나는 드는 시도를 해왔다. 감정을 풀어내는 방식은 앨범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었지만, 마음의 틈 사이로 상대의 빈자리가 드러나 보이는 사랑 이야기는 어쩌면 거미 앨범의 일관된 주제일지도 모른다.
이번에도 거미는 완성되고 충족된 사랑보다는 가슴 한편에 작은 구멍이 뚫린듯한 음악으로 돌아왔다. 지난 10일 발매된 거미의 미니앨범 2집 '사랑했으니..됐어'에는 동명의 타이틀곡과 '놀러가자' '지금 행복하세요' '혼자이니까' '사랑해주세요' '누워'가 수록됐다.
'사랑했으니..됐어'는 이별의 아픔을 반어적인 표현으로 담담하게 써내려간 곡이다. "사랑할 때는 최선을 다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이별 후에도 후회하지 않는 편인데, 잊는 시간은 오래 걸리는 것 같아요. '사랑했으니..됐어'를 타이틀로 정한 것도 '온 힘을 다해서 사랑했으니 됐어'라는 가사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죠." 또 거미는 가사 내용이 자신의 이별 경험과도 닮아있었다고 설명했다.
10년이 훌쩍 넘게 '연인과의 헤어짐'을 무던히 곱씹어야 했던 거미에게 미니앨범 2집에서의 이별을 그리는 방식은 전적과 달랐다. "기존 이별과는 다르게 받아들이려고 생각했죠. 울고불고 어찌할 바를 몰라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봤자 헤어진 연인이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 나이가 됐더라고요. 덤덤하게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감정을 표현하려고 했어요." 그는 '안으로 삭히는 절규'라고 '사랑했으니 됐어..'에 대해 말했다. 헤어진 옛 연인을 그리워하며 눈물짓기보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이별 노래인 셈이다.
'이별'을 풀어내는 방식이 달라졌으니, 자연스레 곡을 표현하는 방법도 이전과 같지 않았다. '사랑했으니 됐어'는 가사의 끝을 묘하게 잡아끌어 늘어뜨리는 창법이 곡 특유의 정체성을 가지게 한다. 축 늘어지는 듯한 호흡이 더욱 가슴 시리게 다가온다. "다른 스타일로 곡을 부르니, 기존에 이별곡을 불렀을 때의 감정처럼 상대를 붙들고 매달릴 것 같은 느낌이었죠." 아무렇지도 않듯이 부르는 창법은 오히려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도왔다.
거미는 미니앨범 2집에 수록된 '놀러가자' '사랑해주세요'를 작사·작곡했다. 그는 자작곡 작업이 즐거웠었다고 말했다. 친구와 놀 듯이 곡에 대한 의논 끝에 연인과 데이트를 앞둔 심정을 담은 '놀러가자', 사랑을 바라는 '사랑해주세요'가 탄생했다. 전혀 다른 밑바탕 색의 두 곡이지만 각각의 매력이 진득하게 전해진다. 큰 부담을 가지지 않고 작업한 결과물이었기에 가능했다.
거미의 자작곡 작업에는 원티드 전상환이 도움을 줬다. 거미가 대략적인 윤곽을 잡으면 전상환이 곡의 스타일을 만들었고, 다시 거미가 멜로디와 가사를 붙였다. "'놀러가자'는 다른 남자 가수에게 주려고 했던 노래예요. 시점을 여자로 바꿔 불러봤더니 재밌더라고요. JYJ 박유천이 피처링해 완성도가 높아졌죠. '사랑해주세요'는 앨범에 수록하려던 곡은 아니었는데, 가사를 수정해서 이번 앨범에 싣게 됐죠." 단 두 곡이 이번 앨범에 들어갔지만 총 6곡이 수록된 것을 생각하면 거미의 자작곡은 그 비중이 높기도 했다.
그만큼 거미는 음악 앞에선 진지한 태도를 가진 가수였다. 방긋 웃는 미소로 취미 생활에 대해 말을 이어갔지만, 다시 음악으로 방향이 틀어지면 단어 하나에도 신경을 쓰며 생각을 전했다. 그래서 거미를 향해 '다가가기 어려운 가수'는 의견도 간혹 나오기도 했다. "저를 잘 아시는 분이나 팬들은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아요. 음악만 고집하는 성향도 아니에요. 음악이 아무리 무거워도 얼굴이 아이유 같았다면 그렇게 느끼시진 않으셨을 것 같아요(웃음). 방송 출연 등 노출을 많이 하지 않아서인지도 모르겠네요." 그는 대화 사이에 농담도 살짝 끼워 넣으며 미소 지었다.
거미에 대한 오해 중에 하나는 '숨어지내는 가수'이지만 그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다. ⓒ 씨제스 엔터테인먼트
거미에 대한 편견은 그의 예민한 음악적 감수성에도 그 이유가 있었다. "원래 눈물이 많고 감정을 받아들이는 것에 민감해요. 이별의 아픔이나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상처를 받는 일이 많았어요. 이런 것들을 혼자 감당하려는 편인데, 저 자신에게는 힘든 일이지만 가수로서는 좋은 면도 있어요."
또 다른 오해 중에 하나는 '숨어지내는 가수'라는 시선이다. 적극적으로 방송 출연에 열을 올리는 다른 가수에 비해 그 빈도수가 적기 때문일 터. 최근에는 앨범 발매가 뜸하기도 했다. "항상 사람들과 교류하고 있어요. 운동, 술자리, 일도 하고 영화도 보고, 웨이크보드도 좋아해요." 거미는 주변 친구들도 있지만, 가족들과도 많은 시간을 보낸다고 밝혔다. 또 술을 좋아해서 어느 술자리든 "혼자 살아남는다"고 웃어 보였다.
거미는 '음악'이라는 벽을 치고 세상과 멀리 떨어지고 싶어 하진 않았다. 단, 음악이 다치지 않는 선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방송이라면 좋다고 했다. "개인기나 망가져야 하는 것들은 어색하고, 음악도 다치게 되는 것 같아요. 친구들과 놀 때도 격식을 차리진 않았는데, 망가지는 기질이 없는 듯해요." 그는 또 '히든싱어'에도 출연을 하고 싶었지만, 아직 모창자를 찾지 못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24일 방송된 KBS 2TV '불후의 명곡' 가족 특집 편에서 오랜만에 시청자들과 만난 거미는 가수가 꿈이었던 어머니와 함께 패티김의 '사랑은 영원히'를 불렀다. 똑닮은 모녀는 감동적인 무대로 방청객은 물론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엄마와 평소에도 친하게 지내요. 제일 친한 친구예요. 방송 후에 사람들이 알아보니까 기분 좋아하시더라고요. '불후의 명곡'에 출연하신 뒤로는 '고생 많이 한다'며 '방송이 쉬운 게 아니더라'고 말씀하세요."
데뷔 10년이 넘어 웬만한 가수 못지 않게 무대 경험이 쌓인 거미이지만 음악 순위프로그램에 대한 부담감도 있었다. 현재 음악 순위프로그램은 아이돌과 어린 가수들의 주요 활동 영역인 것처럼 비치고 있는 상황이기에 그렇다. "제 또래나 선배님들이 방송에 나오면 어색하더라고요. 요즘 저희 세대 가수들이 나오면서 그것에 대한 생각도 없어졌어요. 지금은 아이돌과 다른 세대들의 음악이 골고루 사랑받으며 긍정적인 변화가 일고 있는 것 같아요." 그는 가요계로 돌아온 플라이투더스카이와 휘성에 대한 언급도 잊지 않았다.
거미는 이미 다음 앨범에 대해 생각하며 "즐거운 고민"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앨범을 발표하기까지의 시간이 오래 걸려서 이제는 공백 없이 앨범을 어떤 형태로든 발표하고 싶어요. 그리고 다이어트는 최대의 고민이에요. 맛있는 음식이 너무 많아서죠(웃음)." 이와 함께 거미는 연애와 결혼도 고민이라고 솔직하게 답했다. "결혼을 할 때가 되거나 하고 싶어지는 때가 올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제는 백지영 언니나 서영은 언니처럼 아이도 낳고 싶어요. 그러면 더 편안한 음악이 나오지 않을까요? 연애를 갈망하고 있어요(웃음)."
'사랑했으니..됐어'는 거미의 가수 인생에서 여행길 속 이정표와 같았다. "데뷔해서부터 지금까지 가수로 활동한 것이 마음에 들어요. 나중에 지금을 돌아봤을 때, 후회할 것 같진 않아요. 앞으로 해야 할 음악과 해왔던 음악의 '징검다리' 정도의 느낌이 아닐까요?"
이별에도 담담히 받아들이려는 거미. 그는 이제 막 징검더리건너고 있다. ⓒ 씨제스 엔터테인먼트
한인구 기자 in999@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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