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15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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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리뷰] 공들인 '불의 여신 정이', 왜 용두사미 드라마가 됐나

기사입력 2013.10.23 06:31 / 기사수정 2013.11.10 23:26



▲ 불의 여신 정이

[엑스포츠뉴스=김현정 기자] 거창한 포부로 시작된 '불의 여신 정이'가 용두사미 드라마의 전형을 보여주며 막을 내렸다.

23일 방송된 MBC 월화드라마 '불의 여신 정이' 마지막회에서는 아버지 이강천(전광렬 분)을 잃고 힘들어 하던 정이(문근영)가 분원 사람들을 위해 겐조(윤서현) 일당을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는 모습이 그려졌다. 정이에게 애틋한 마음을 고백했던 광해(이상윤)는 17년 뒤에도 정이를 생각하며 그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많은 드라마가 그랬듯 '불의 여신 정이' 역시 권선징악의 결말을 택했다. 강천은 아들 육도(박건형) 대신 겐조의 칼에 맞아 숨을 거뒀고 질투와 욕심에 사로잡혀 정이를 괴롭혔던 화령(서현진)은 전재산을 잃고 인빈(한고은)을 찾아 저잣거리를 헤맸다.

당초 '불의 여신 정이'는 16세기 말 동아시아 최고 수준의 과학과 예술의 결합체인 조선시대 도자기 제작소 분원을 배경으로 정이의 치열했던 예술혼과 사랑을 담는다는 거창한 포부를 안고 출발했다. 실존인물인 백파선(=유정)을 모티브로 삼았다는 사실도 흥미를 돋웠다.

시작은 좋았다. 진지희, 노영학, 김지민, 박건태 등 아역들의 로맨스는 작품 초반 흐름에 불을 지피며 향후 사기장과 왕의 신분을 초월한 사랑의 향방을 궁금하게 했다. 강천과 을담(이종원)의 대립관계부터 정이의 탄생과정, 광해의 첫 인연 역시 빠르게 전개돼 기대를 높였다.

하지만 초반의 긴장감과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까닭에 갈수록 배가 산으로 가는 형국이 됐다. 정이의 열정 스토리를 비롯해 청년 광해의 신분을 초월한 사랑, 숨 막히는 경합과 창조의 공간인 분원의 이야기 등 애초의 기획의도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결국 이 드라마는 정이의 드라마틱한 성공담 또는 왕자와 사기장의 이뤄질 수 없는 애틋한 로맨스물 그 어느 것도 아닌 평범한 사극으로 남았다. 어려운 상황에 빠진 여주인공이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고난을 헤쳐 나가는 모습은 사극의 전형적인 구조와 다름 없었다. 정이가 시련을 맞닥트릴 때마다 광해와 태도가 백마 탄 왕자처럼 어김없이 등장한 것도 시청자들이 정이의 앞날을 쉽게 예상하게 만들었다.

정이가 도자기를 만드는 내용보다 궁궐 내 권력 암투가 비중 있게 다뤄져 '불의 여신 정이'라는 제목이 무색해진 점도 아쉽다. 이야깃거리가 아무리 풍성할지언정 '정이의 성공담'이라는 중심 소재가 제대로 비춰지지 않아 주객이 전도된 느낌을 주고 말았다. 막판에는 질질 끌어왔던 출생의 비밀이 풀리고 임진왜란까지 일어나면서 긴장감을 유발했지만 너무 늦게 터진 감이 없지 않다.


성공스토리 못지 않게 중요한 요소였던 러브라인과 삼각관계도 밋밋하게 그려졌다. 서로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갖고 있는 광해와 정이, 정이를 짝사랑하는 태도(김범), 태도를 마음에 두고 있는 화령, 화령에게 첫 눈에 반한 육도까지 복잡한 오각관계를 예고했지만 도돌이표 전개로 극의 긴장감을 불어넣는 효과적인 장치가 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이 드라마는 도자기라는 신선한 소재와 정이의 천재성, 출생의 비밀, 왕자와 사기장의 이룰 수 없는 사랑 등을 흥미롭게 엮어내지 못한 채 성공담도 로맨스물도 아닌 정체성을 잃은 작품이 됐다.

배우들의 열연은 빛났다. 주인공 문근영은 신분을 숨겨야 했던 남장 공초군부터 천재성을 지닌 여자 사기장까지 폭넓은 감정 연기를 선보였다. 특히 부모를 죽인 범인이 강천임을 알게 됐을 때 보여준 문근영표 오열 연기는 보는 이들도 뭉클하게 했다. 이상윤 역시 총명하고 인간적인 광해의 모습을 잘 그려냈다. 아역(노영학)과 가장 높은 일치율을 보여준 그는 정이에게 남다른 감정을 지닌 광해의 마음을 애틋하게 표현해냈다.

김범과 서현진, 이광수, 박건형의 연기 변신도 돋보였다. 김범은 현란하고 정교한 검술 연기와 액션 연기를 보여줬고 서현진은 얄미운 악역을 제대로 소화해냈다. 전광렬, 이종원, 정보석, 변희봉 등도 베테랑 연기자답게 노련한 연기로 캐릭터에 충실했다.

배우들의 열정과 더불어 그간 드라마에서 선보이지 않았던 도자기라는 소재를 다뤘다는 점, 사람들이 쉽게 접하지 못한 분원이라는 곳을 조명했다는 점만큼은 눈 여겨볼만 했다.

김현정 기자 khj3330@xportsnews.com

[사진 = 불의 여신 정이 ⓒ 방송화면]

김현정 기자 khj3330@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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