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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모의 백스테이지] '힙합 디스전'을 역으로 디스한다

기사입력 2013.08.27 04:39 / 기사수정 2013.08.30 05:58

백종모 기자


힙합 디스전, 왜 폭로전으로 변질됐나

[엑스포츠뉴스=백종모 기자] 최근 국내 힙합계에는 이른바 '디스 대전' 열풍이 불고 있다. 이는 미국의 주목 받는 신예 래퍼 켄드릭 라마가 현지의 대표적인 래퍼들을 비판한 사건에 영향을 받았다. 그는 빅션의 '컨트롤(Control)'이라는 곡에 피처링으로 참여하면서 인기 힙합 뮤지션들을 싸잡아 비판했다. 이에 대해 미국 힙합계에서는 켄드릭 라마의 도발에 대한 반발 의견부터, '컨트롤'에 대한 대응(response)곡들의 발표가 이어졌다.

■ 현 상황, 진정한 '힙합 문화'로 볼 수 있나?

켄드릭 라마의 의도는 긍정적인 것이었다. 과거 미국 힙합계는 서부힙합(West Coast)과 동부힙합(East Coast)로 나뉘어 지역별로 각자의 색깔을 띠며 발전해 왔다. 그런데 최근 '더티 사우스'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남부 힙합 음악이 널리 유행하자, 그 스타일을 너도 나도 쫒아가면서 음악 스타일이 마치 '아이돌 음악'처럼 획일화돼가고 있는 미국 힙합계를 비판한 것이다. 켄드릭 라마는 '컨트롤'을 통해 "난 웨스트코스트의 왕이다. 지가, 나스, 에미넘, 안드레3000까지는 최고 반열의 MC로 거론된다" 하지만 나머지' 뮤지션들에 대해서는 "더 이상 랩을 듣고 싶지 않을 정도다"라며 제이콜, 빅 크릿, 왈레, 푸샤 티, 믹 밀, 에이샙 롸키, 드레이크, 빅션, 제이 일렉트로니카, 타일러, 맥 밀러 등의 실명을 거론했다. 다만, 그는 "(진정한) 경쟁이 무엇인지 말하고 싶다. 난 수준을 높게 올리려 하고 있는 것이다"라며 '디스'의 목적을 분명히 밝혔다.



그런데 국내로 번진 디스전은 그 성격이 달랐다. 자신에 대한 허세와 욕설과 비아냥거림은 난무했지만 그에 대한 명확한 근거가 제시되지 않았다.

켄드릭 라마의 ‘컨트롤’의 국내 첫 대응곡으로 꼽히는 스윙스(문지훈)의 'King Swings'를 보면 힙합계 선배들에게 "실력이 짧다. ‘찌질’하게 생겼다"는 등 인신공격과 욕설을 퍼부으면서 "내가 최고"라고 외쳤을 뿐이다. 이에 대한 대응 곡들도 과도하게 자극적인 가사들로 체워졌다. 이러한 요소들은 힙합을 즐겨 듣지 않은 대중에게는 자칫 힙합이 폭력적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과연 그런 디스곡을 올바른 '힙합 문화'라고 부를 수 있었을까?

■ '배신'과 '돈 문제'…폭로전으로 변질된 힙합 디스전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국내 힙합 뮤지션들은 또 다른 명분으로 서로 물어뜯기 시작했다. 바로 '배신'과 '돈 문제'다.

이센스(강민호)는 23일 공개한 'you can't control me'를 통해 자신의 전 소속사 아메바컬처와, 그 수장격인 '다이나믹듀오' 멤버들을 비난했다.


그는 곡을 통해 "회사는 발목을 자르고 목발을 줘. 내가 걷는 건 전부 지들 덕분이라고 턱 쳐들어 올리고 지껄여. 말 잘 들으면 휠체어 하나 준대. 니들이 팔려고 했던 내 인생. 10억을 달라고? 아메바 컬쳐. kiss my ass"라며 전 소속사를 거칠게 입에 올렸으며, "아무리 생각해도 난 다듀(다이나믹 듀오) 군대 땜빵" "한국 힙합 후배를 위해 걔네가 나한테 저지른 양아치짓에 입 닫고 눈감은 여우의 피도 뜨거워질지 한 몸 다 바치듯 연기하며 사기를 치네. 이거 듣고 나면 대답해. 개코(다이나믹 듀오 멤버). 지난 5년간 회사 안에서 날 대했던 것처럼"이라며 도발했다.



그러자 대중의 관심이 폭발했다. 디스의 주체는 몰락한 유명 래퍼였고, 그 대상인 다이나믹듀오는 국내 메이저 음악계에 위치한 팀이었기 때문이다. 이센스는 또한 사이먼디와 함께 '슈프림팀'을 이끌며 한 때 메이저 반열에 올라 있었으나, 대마초 흡연을 하며 몰락했다. 이센스는 2009년 10월부터 8월까지 총 5차례 걸쳐 대마초를 흡연한 혐의로 활동을 중단했으며, 지난 7월 22일 아메바컬처로부터 전속계약 해지 통보를 받은 상태였다. 게다가 10억이라는 금액과 자신이 억울하게 전 소속사에서 쫓겨났다는 듯한 하소연은 마치 기자회견장이나, 법정에서나 들을 수 있는 내용이었기에 대중들은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개코가 이센스의 폭로에 대응해야 한다는 쪽과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갈렸다. 대응한다는 것은 이센스의 곡에 맞대응하는 곡을 내 놓는 것을 의미한다. 랩에는 랩으로 맞선다는 이른바 '랩 게임'이라는 힙합의 문화를 따라서 말이다. 국내 힙합 1세대 뮤지션인 김디지는 개코에 대해 "대응할 것이 아니라 웃어넘기는 것이 좋다"고 충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개코는 힙합의 문화를 따르는 쪽을 택했고, 디스전은 폭로 양상으로 치닫게 됐다.

그는 대응곡 'I Can Control You'를 통해 "넌 열심히 하는 랩퍼 애들한테 대마초를 줬네. 참아준 형 배신하고 등 돌리는 식. 선풍기 랩 회전모드에 바람세기는 허풍. 휩쓸리는 건 너같이 관심 병 환자들뿐. 암적인 존재, 니 존재자체가 독"이라는 인신공격으로 이센스에 맞섰다. 결국 진흙탕 속으로 뛰어든 것이다.

폭로전 여파는 이센스와 함께 '슈프림팀'에 몸담았던 사이먼디에게까지 미친다. 이센스가 'you can't control me'를 공개하자 스윙스는 '황정민 (King Swings Part 2)'이라는 곡을 쓰며 "이센스가 아메바컬쳐에서 퇴출되는 동안 사이먼디가 방관자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며 그를 비난했다. 결국 사이먼디도 폭로전에 동참했다. 그는 25일 'Control'이라는 곡을 내며 "상세한 내막도 모르는 스윙스가 내 이름을 팔아 포털 사이트 검색어 1등을 했다"며 반박했다. 그러자 스윙스는 26일 'Swings - 신세계 (King Swings Part 3)'을 또 다시 공개하며 "내가 여기서 실패를 하면, 이 문화는 악순환을 할 것이며, 우린 길거리 양아치로 전락하게 된다. 다들 뭐라 하던 난 내 갈 길을 갈 것이다"라고 응수했다.



■ 한국 힙합계의 썩은 치부 드러났다

슈프림팀과 아메바컬처 사이에서만 폭로전이 발생한 것이 아니었다.

여성 래퍼 타이미(이옥주,前 활동명 이비아)는 25일 'Cont LOL'이라는 제목의 곡을 통해 "선배들 믿다가 훅갔다. 이 바닥 정말 더럽다"고 폭로했다. 그는 지난 1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전 소속사를 통해 2년 남짓 활동한 뒤 정산 받은 음원 수익이 0원이었다. 지난해 5월 계약이 만료된 상태이나, 전 소속사에서 '자동 계약 연장'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CMYK(전 활동명 썬데이투피엠)의 멤버 지백과, 데피닛은 24일과 26일 각각 'lose control'과 'Out of control'이라는 곡을 통해 전 소속사인 ‘블록버스터 레코드’의 대표였던 아웃사이더(신옥철)를 공격했다. 이들은 아웃사이더가 지난 2010년 12월 입대하며 블록버스터 레코드가 해체가 되는 과정에서 피해를 봤다고 주장했다.

공개적으로 언급된 계약 관련 문제만 해도 세 가지다. 타이미는 디스곡을 공개한 뒤 "갈 데까지 갔으면 좋겠다. 한국 힙합이 얼마나 썩어있는지 지금 아니면 언제 보겠냐"고 말했다. 대체 얼마나 썩어 있다는 것일까?

한 가요계 관계자는 "국내 힙합계 시장은 굉장히 좁다. 래퍼들은 앨범만 내준다면 '감사합니다'라며 달려올 정도다. 그런데 이후 어느 정도 인지도를 쌓아 가면 래퍼는 '형 왜 이러세요'라고 하고 소속사는 '이놈 괘씸하네'라며 서로 사이가 틀어지는 경우가 흔하다. 계약서조차 제대로 쓰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다 보니 타이미와 CMYK 처럼 소속사와 계약문제로 갈등을 겪는 경우가 흔하다는 것이다.

그는 "뮤지션은 의외로 이기적인 경우가 많다. 메이저 씬에서 손길이 오면 그걸 잡으려 발버둥을 치며 서로 헐뜯고 싸운다. '메이저 해볼래?'라는 PD의 제의가 오면 대부분 배꼽인사를 하더라. 그게 현실이다. 반면, 나락까지 떨어진 뮤지션들은 잃을 것이 없다. 져도 잃을 것이 없는 이들이 거대 세력에 상응하는 대항마를 만들기 위해서는 쿠데타나 전쟁밖에 없지 않겠느냐. 국내 힙합계의 열악함이 켄드릭 라마나 이센스를 빌미로 터진 것이 현 상황이다"라고 봤다.



과거 미국 힙합 음악 시장에서는 디스 곡 한곡을 만들더라도 심혈을 기울여 만든 뒤 실제 음반에 담았다. 상대방에게 들은 메시지를 곱씹고 철저한 자기반성을 해서 내놓았던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이 발전한 지금은 하루 이틀 만에 디스곡이 쏟아지고 있다. 차라리 실제 음원 사이트에 올릴 수 있는 곡을 만든다고 생각하고 좀 더 정제된 내용으로 만드는 것이 낫지 않을까? 이렇게 디스 곡을 쏟아내는 것은 소신 있는 음악적 발언이라기보다는, 음악을 갖고 노는 바이럴 마케팅(입소문 인터넷 검색어 등을 이용하는 홍보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디스 열풍에 '켄드릭 라마'라는 면죄부를 들고 너도 나도 뛰어드는 것은 결국 국내 힙합계의 제살 깎아먹기가 될 수도 있다. 음악에 대한 충고가 없는 '디스'는 비판이 아닌 비난이며, 어린아이가 떼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힙합 가사가, 디스 문화가 반드시 자극적이고 염세적이어야만 할까? 스스로의 치부를 드러내며 자기 홍보에만 열올리는 것이 힙합계의 발전에 긍정적일까? '힙합의 문화는 이런 것이다'라고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조금만 더 생각한다면 진정한 충고와 발전을 도모하는 소통도 가능할 것이라 본다.

백종모 기자 phanta@xportsnews.com

[사진 = 이센스, 개코, 슈프림팀, 타이미, 스윙스 ⓒ 쌈디 트위터, 엑스포츠뉴스DB, 아메바컬처, 타이미 미투데이, 브랜뉴뮤직]

백종모 기자 phanta@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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