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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중의 스포츠2.0] 박지성, 맨유 7년보다 강렬했던 PSV 7개월

기사입력 2013.08.06 12:43 / 기사수정 2013.08.06 15:25

김덕중 기자


[엑스포츠뉴스=김덕중 기자] 박지성이 PSV 아인트호벤을 택했다. 8년 전 어느 날 새벽잠을 설치게 했던 바로 그 조합이다. 당시 박지성과 PSV는 말 그대로 전율이었다. 시즌 종료까지 마지막 7개월간 활약이 박지성에게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적의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이후 7시즌을 맨유에서 보냈으나 PSV 시절의 강렬함은 없었다는데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다. 팀의 조연이 아니라 주연이었던 박지성. 그 백미는 2004-05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PSV아인트호벤(네덜란드)과 AC밀란(이탈리아)의 경기였다.

2005.04.27 AC밀란 2-0 PSV(밀라노 산시로)

PSV는 챔피언스리그 8강에서 올림피크 리옹을 고전 끝에 물리치고 준결승에 올랐다. 그러나 당시 PSV의 돌풍은 여기까지라는 의견이 많았다. 계속된 강행군으로 전력이 정상이 아니었던데다 상대가 워낙 막강했다.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이 이끌던 밀란은 16강서 맨유, 8강서 인터밀란을 꺾었으며 조별리그 7경기 연속 무실점의 안정된 수비 조직력을 갖추고 있었다. PSV의 거스 히딩크 감독은 1차전 원정 산시로에서 모험을 걸 수밖에 없었다. 무릎부상 중이던 하셀링크를 제외하고 박지성을 최전방에 세우는 이른바 '제로톱' 전술이었다.

박지성이 팀 공격의 정점에 섰다. 좌우에 파르판, 비즐리가 포진했고 그 뒤에 보겔, 코쿠, 반 봄멜이 위치한, 수비적인 전형이었다. 이영표 또한 PSV의 왼쪽 수비수로 선발출전했다. PSV에게 악재가 하나 더 있었다. 당초 부상으로 결장할 듯했던 밀란 허리의 중심 피를로가 선발로 나섰다. 피를로의 롱패스를 받은 세브첸코, 크레스포, 카카 등 공격 삼각편대는 초반부터 위력을 드러냈다. 8만5,000여 홈팬의 열광적인 응원까지 등에 업은 밀란은 전반 41분 세브첸코가 카카의 침투패스를 받아 선제골을 넣었다. PSV 보우마가 끝까지 따라붙었으나 역부족이었다.

1차전 원정에서 0-1 패배라면 나쁘지 않은 결과다. 박지성 또한 그 격차를 좁히려 부단히 노력했다. 전반 18분 15m 드리블 과정서 셰도르프의 경고를 유도했고 후반 파르판과 연계플레이가 돋보였다. 후반 15분 히딩크 감독의 승부수였던 하셀링크 투입 뒤에는 본래 포지션으로 돌아갔다. 영국 방송사 '스카이스포츠'는 이날 경기서 박지성에게 평점7을 부여했다. PSV 선수 중 최고 평점이었다. 아쉬웠던 점은 경기 마무리였다. 다양한 카드를 갖고 있던 밀란이 막판 운영에서 앞섰다. 후반 45분 달 토마손이 쐐기골을 넣은 밀란이 1차전 2-0 승리를 확정했다.

2005.05.05 PSV 3-1 AC밀란(아인트호벤 필립스스타디움)

원정 1차전 종료 직전 추가실점이 컸다. 여론은 밀란의 결승행 쪽으로 쏠렸다. 애초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보였던 매치업이었다. 히딩크 감독만 반기를 들었다. 그는 기자회견을 통해 직전 시즌 밀란의 '리아조르 참사'를 들먹였다. 밀란은 2003-04시즌 챔피언스리그 8강 데포르티보 라 코루나전서 1차전 4-1 승리에도 리아조르 원정 2차전서 0-4로 패해 중도 탈락했다. 히딩크 감독은 한 마디를 덧붙였다. "초반 선제골을 넣는다면 뒤집을 수 있다"라고.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말디니, 스탐이 버틴 밀란 수비진은 대회 7경기 연속 무실점 기록을 이어가는 중이었다.

PSV는 1차전 엔트리에서 소폭 변화를 줬다. 하셀링크가 선발로 나섰고 파르판과 박지성이 좌우에 포진했다. 오이에르의 공백은 루시우스가 메웠고 이영표는 왼쪽 풀백으로 출전해 카푸와 정면대결을 펼쳤다. 경기시작 9분, 믿기 힘든 장면이 연출됐다. 히딩크 감독의 말처럼 PSV의 첫골이 이른 시점에 터졌다. 주인공은 박지성이었다. 중원서 공을 잡은 박지성이 재빨리 돌아섰고 전방의 하셀링크에게 찔러줬다. 하셀링크가 스탐과 경합 중 볼을 놓치자 문전쇄도하던 박지성이 그대로 왼발슛, 밀란의 골네트를 흔들었다. 박지성은 홈팬들의 응원을 촉구했고 필립스스타디움에는 '위송빠르크'가 메아리쳤다.

박지성이 1955년 출범한 챔피언스리그에서 한국인 최초의 득점자로 기록되는 순간이었고, 동시에 PSV의 반격은 더욱 거세졌다. 하셀링크의 헤딩슛이 크로스바를 한차례 때렸다. 마침내 후반 20분, 이영표가 카푸를 앞에 놓고 올린 왼쪽 크로스가 코쿠의 헤딩슛으로 연결되면서 PSV는 1,2차전 합계 2-2 균형을 맞췄다. 한 편의 드라마가 써지는 듯했으나 승리의 여신은 밀란의 손을 들어줬다. 연장전 대비를 위해 양팀 벤치가 분주했던 후반 종료직전, 카카의 왼쪽 크로스를 받은 암브로시니의 헤딩골이 터지면서 필립스스타디움에 일순간 정적이 감돌았다.

2005년 5월 그 이후, 끝나지 않은 이야기


박지성 만큼이나 인상적이었던 선수가 PSV 중원의 핵이었던 코쿠였다. 당시 맏형 노릇을 했던 코쿠는 밀란의 만회골이 터진 뒤에도 포기를 몰랐다. 후반 인저리타임에 하셀링크의 백헤딩 패스를 받아 왼발 발리슛으로 추가골을 터뜨린 선수도 코쿠였다. 세리머니 대신 멍해있던 동료선수들의 분발을 촉구했다. 원정골을 우선시하는 UEFA 규정에 따라 PSV가 결승에 오르기 위해선 단 한 골이 부족했다. 박지성, 이영표를 비롯해 반 봄멜, 보우마, 보겔 등 PSV 역전의 용사들이 대거 떠난 2005년 여름 이후에도 코쿠만은 히딩크 감독과 함께 꿋꿋이 에인트호벤을 지켰다.

박지성이 맨유로 떠나면서 PSV는 국내 팬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그러나 PSV와 밀란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2005-06시즌 PSV와 밀란은 챔피언스리그 E조에 함께 편성됐다. 전력누수를 피할 수 없었던 PSV와 달리 밀란은 '아주리 군단'의 차세대 거포 질라르디노와 비에리를 영입, 전력을 더욱 견고히 했다. 그러나 결과는 1년 전과 달랐다. 두 팀의 조별리그 1차전이 열린 산시로. PSV는 22대3의 슛 열세가 입증하듯 수세에 몰리면서도 특유의 수비축구로 승점 1점을 확보했고 이어 열린 홈경기에서는 1-0으로 승리하면서 조 선두로 도약하는 쾌거를 올렸다.

공격진에 아루나 콘이 영입됐고 아펠라이, 아시아티와 같은 신예 등용이 효과를 봤지만 경기 내용이 입증하듯 코쿠가 버틴 중원의 견고함이 더욱 강건해졌다는 게 PSV 돌풍의 결정적 근거로 꼽혔다. 운명의 장난일까. PSV 역사에 빼놓을 수 없었던 인물 코쿠가 2013-14시즌부터 PSV의 새 지휘봉을 잡았다. 유럽축구에서 네덜란드가, 네덜란드 리그서 PSV가 그렇듯 빠져나간 전력을 메우기 위한 코쿠 감독의 고민이 깊어보인다. 8년 전의 '자이언트 킬링'을 다시 연출할 수 있을까. 그라운드서 재회하는 박지성과 코쿠의 2013-14시즌에 대한 기대가 높다.



김덕중 기자 djkim@xportsnews.com

[사진=박지성 ⓒ 게티이미지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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