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장원재 칼럼니스트] 2006년 3월 5일 아침 도쿄 WBC 한국대표팀 캠프. 이승엽 선수가 김인식 감독에게 ‘돌직구’를 던졌다. “오늘 홈런치면 얼마 주실래요?” 2002년 아시안게임 때부터 대표팀 생활 쭉 같이 오래 했는데, 생전 안 그러던 친구가 왜 이러나. “그래 200불 주마.” ‘향후 30년 간 일본에는 절대로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게 해주겠다’라던 소위 이치로 망언(妄言)으로 국내외가 시끄럽던 바로 그 때다. 이승엽은 8회에 거짓말같은 역전 투런 홈런을 쳤다. 한국이 이겼다. 3-2. 이진영이 라인 쪽으로 흘러나가는 완벽한 장타를 다이빙 캐치로 잡아내며 ‘국민우익수’ 칭호와 일본 관중의 기립박수를 획득한 바로 그 경기다.
경기 후 공식 인터뷰 룸. 관례에 따라 패전팀 일본의 왕정치(王貞治) 감독이 먼저 인터뷰를 하는 동안, 문 밖에서 대기하던 김인식 감독에게 이승엽 선수가 다가왔다. 다른 선수들은 모두 샤워실에서 몸을 씻고 있었단다. “감독님, 돈!” 어린이가 세뱃돈 받는 자세로 내민 손 위로 100달러짜리 지폐 두 장이 화끈하게 건너갔다. 화장실에서 나오다 이 광경을 목격한 박찬호 선수가 ‘변화구’를 던지며 끼어들었다. “저도 잘 던졌는데요.” 9회 등판해 세이브로 경기 마무리. 이건 수훈선수에게 공식적으로 주는 돈이 아니고 나랑 승엽이가 경기 전에 개인적으로 약속한 거다, 그래도 아니, 경기 전에 그래도, 승리팀 감독 인터뷰 진행합니다. 김인식 감독님 입장해 주세요. 입술이 나온 박찬호 선수의 표정이 재미있었다는데, 그 때 김인식 감독님 머릿 속에 부르릉 떠올랐다는 계산서 하나.
승엽이는 요미우리 입단이 확정돼서 연봉 2억엔, 그 때 환율로 한 30억? 찬호도 샌디에이고로 옮겨서 받는 연봉이 500만 달러에서 600만 달러, 아니 수십 억 씩 연봉받는 녀석들이 나한테 용돈을 달라고?
子貢이 欲去告朔之犧羊한대
子曰 “賜也, 爾愛其羊이지만 我愛其禮하노라”(八佾/17)
해석) 자공이 고삭례(告朔禮)에 바치는 산양을 애처롭게 생각하자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사야, 너는 그 양을 사랑하지만 나는 그 예를 사랑한다.
그렇다. 이승엽 선수가 바란 건 ‘돈’이 아니라 ‘감독님의 사랑과 인정’이었을 거다. 모르긴 몰라도, 그 때 김감독께서 건네신 그 지폐는 아직도 이승엽 선수 지갑 속, 어쩌면 액자 속에서 영원히 ‘미사용’인 채로 남아있을 터이다.
말이 난 김에 한 마디만 더 할까? 어떤 사람들은 ‘물벼락’을 싫어하지만 야구팬들은 그 ‘흥겨움’을 사랑한다. 단, ‘물’은 감전의 위험이 있다고 하니 재료를 바꿔보자. 야구 선진국 미국에서는 보통 ‘면도 크림’을 쓴다고 한다. 시각적 효과, 안전도 그리고 향후 광고 모델 발탁 가능성 등을 염두에 둔다면 ‘물’보다는 ‘면도크림’이 훨씬 괜찮은 물품이 아니겠는가.
장원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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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인식 감독(오른쪽) ⓒ 장원재 제공]
김덕중 기자 djkim@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