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28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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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리그] 갈색 폭격기는 정말로 레전드가 되었다.

기사입력 2007.12.14 18:33 / 기사수정 2007.12.14 18:33

조훈희 기자

    


<구릿빛 강인해보이는 피부와 활처럼 휜 스파이크동작. 신진식을 상징하던 그 역동성은 한국배구의 모습 그 자체였다.>

[엑스포츠뉴스=조훈희 기자] 갈색 폭격기, 배구계의 레전드, 더 이상의 수식어는 필요가 없던 한국배구 최고의 스타 신진식. 김세진과 함께 한국배구의 90년대 후반을 책임진 신진식도 세월의 무게를 더 이상 이기지 못했다. 신진식은 오는 12월 16일 소속팀 동료이자 성균관대학교 동문 선배인 김상우,방지섭과 함께 공식 은퇴식을 가지고 현역생활과 작별을 고한다.

남성고등학교 시절부터 신진식은 배구를 위해 태어난 선수 그 자체였다. 93년 성균관대학교에 입학하면서 1학년때부터 주전자리를 차지한 신진식은 실력으로 대학 최고 선수의 자리를 접수해, 94년 마지막 백구의 대제전과 95년 슈퍼리그에서 쟁쟁한 실업팀들을 누르고 성균관대학교를 슈퍼리그 3위로 이끄는 주역이 된다. 93년 신인왕으로 화려하게 실업 선배들과 대학 선배들에게 신고식을 마친 신진식은 98,99,2001,2003년 4차례 슈퍼리그 MVP에 오르며 김세진과 함께 한국배구 최고의 선수 자리를 굳게 지켜냈다.

95년 월드컵으로 국제무대에 데뷔한 신진식은 올림픽,세계선수권,아시안게임등 매 국제대회때마다 한국 대표팀으로 출전해 중국,일본을 제치고 한국이 아시아배구의 맹주로 자리매김하는 버팀목이 되었고, 98년 방콕아시안게임 은메달,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 은퇴를 앞두고 있던 2006년에도 김호철 감독의 부름을 받아 도하 아시안게임에 참가해 금메달을 일구어내며 최고의 선수임을 또 한번 과시했다.

신진식은 태어날때부터 배구를 위해 태어난, 배구의 신에게 축복받은 타고난 몸이었다. 긴 팔과 강한 어깨, 동양인으로써는 믿기 힘들 정도로 뛰어난 탄력, 그리고 무시무시한 체력. 배구선수를 위해 태어난 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축복받은 몸이었다. 188cm의 신장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남들보다 5센티는 더 긴 팔, 남들보다 5센티는 더 높은 점프력, 남들보다 다섯발을 더 내딛을 수 있는 순발력과, 남들보다 5차례는 더 점프할 수 있는 강인한 체력등 배구선수로써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조건을 모두 가지고 태어난 선수였다.

또한 신진식의 투지와 승부근성은 한국의 모든 스포츠스타들 중에서도 월등했다. 80년대부터 한국스포츠계의 스타플레이어들에게 항상 따라붙었던 수식어중 하나인 독종. 신진식 역시 그런 독종이었다. 국가대표와 소속팀에서 항상 신진식은 팀의 중심이었고, 비교적 유한 캐릭터였던 김세진을 대신해 국가대표의 정신적 지주이자 파이팅을 이끌어내는 투사의 역할을 수행했다.

어쩌면 그런 타고난 투사적 몸과 투사적 기질로 인해 신진식의 말년은 김세진과 달리, 불꽃이 사그러들듯 더욱 극적이었던 것 같다.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배구코트에서 쏟아붓는 근성과, 자신이 팀이 중심이 되지 못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던 본능. 그때문에 신진식이 전성기를 불태우고난 2000년대 이후, 그는 더이상 이전같은 폭발력을 보여주지 못하며 부상으로 주저앉았고, 재활과 출전, 복귀와 부상을 반복하며 프로로 전환한 배구에서 세월의 무게를 체감한 신진식은 2007년 여름 커리어를 연장하기 위해 이적을 요구했고, 그로 인한 소속팀 삼성화재와의 갈등 끝에 은퇴를 선언하게 된다.

언제나 최고의 자리에 서있던 신진식도 이제 세월의 흐름에 따라 흘러가는 자유인이 되었다. 삼성화재의 지도자 연수를 받으며 지도자로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신진식에게 최고의 선수라는 과거의 영광이 아닌 성공한 인간 신진식으로써 영원히 배구계의 레전드로 남아주길 바라는 것이 과거,현재,미래의 배구팬들이 바라마지 않는 바일 것이다.

 



조훈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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