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9-22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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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시작된 여자배구 '라이트 전쟁'

기사입력 2006.02.16 04:47 / 기사수정 2006.02.16 04:47

여준구 기자


사실상 플레이오프 진출이 좌절된 채 최하위에 머물고 있지만, 지난 5라운드에서 보여준 GS 칼텍스의 선전은 눈부셨다. 첫 경기에서 풀세트 접전 끝에 승리를 거두며 4라운드 전승으로 한창 기세가 올라있던 현대건설을 5라운드 전패라는 롤러코스터의 수렁으로 몰아 넣더니, 줄곧 선두를 지켜오던 흥국생명마저 풀세트 접전 끝에 잡아내 결국 선두 자리에서 내려오도록 하는 단초를 제공하기도 했다. 

나혜원 선수
ⓒ GS 칼텍스 배구단
GS 칼텍스의 이런 선전에는 김민지, 이정옥, 나혜원으로 이어지는 삼각 편대의 막강 공격력이 바탕에 깔려 있는데, 특히 최근 2경기에서 보여준 라이트 나혜원의 활약은 매우 대단했다. 서브는 더욱 날카로워졌고, 공격 성공률은 눈에 띄게 좋아졌으며, 그 동안 거의 시도하지 않던 후위공격까지 옵션으로 장착했다. 

물론 2경기만으로 섣불리 판단하기는 이르지만, 나혜원은 드래프트에서 전체 1번으로 지명되어 화려하게 입단했음에도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던 모습에서 벗어나 드디어 자신의 가능성을 꽃피우기 시작한 듯한 느낌이다. 

나혜원의 이러한 활약은 무척 반가운 일인데, 입단 첫해 신인상을 차지하는 등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한 발 앞서 가고 있는 동갑내기 라이벌 황연주(흥국생명)에게 누가 진정한 라이트의 강자인지 가려보자는, 소위 '라이트 전쟁' 을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보자고 외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황연주와 나혜원, 이들의 '라이트 전쟁' 이 무엇보다 기대되는 이유는 둘 모두 왼손잡이에다 공격에 중점을 둔 라이트라는 점에 있다. 코트의 오른쪽에서 공격을 시도하는 라이트 포지션의 특성 상 왼손잡이가 공격의 폭이 넓다는 점에서 유리하다. 

황연주
ⓒ 흥국생명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른손을 쓰는 라이트가 많은 것은 좋은 왼손잡이 선수가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75년생의 노장 박미경(도로공사) 이후로 여자 배구에 좋은 공격력을 갖춘 왼손잡이 선수가 전혀 나오고 있지 않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뛰어난 자질을 갖춘 왼손잡이 선수가 한꺼번에 2명이나 등장했다는 것이 얼마나 고무적인 일인지 잘 알 수 있다.

라이트는 다른 어떤 포지션보다 공격력 우선의 포지션이다. 센터처럼 블로킹과 트릭 점프에 많은 신경을 써야하는 것도 아니고, 레프트처럼 리시브에 참여하지도 않으며, 리베로와 교체되지도 않는다. 

따라서 공격 우선의 마인드를 가진 뛰어난 공격력의 선수들이 라이트에 포진하게 되고, 이들이 주공격수로 활약하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이다. 그러나 우리 여자 배구의 라이트는 조금 다른 형태의 선수들이 주류를 이뤄왔다. 라이트 공격수는 후위에 나갔을 때도 리시브에 참여하지 않기 때문에 후위공격을 많이 시도해 주지 않으면 존재 가치가 급격하게 떨어진다. 

후위공격이 공격 옵션의 하나로 자리잡은 지 얼마 되지 않는 여자 배구의 경우 과거 후위공격이 가능한 라이트가 존재하지 않았고, 존재 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수비력 등 다른 부분들이 요구되었다. 

수비와 공격을 모두 잘해내는 선수는 흔치 않다. 따라서 다른 부분의 강조는 곧 약한 공격력이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고, 빈약한 공격력 때문에 거의 센터와 비슷한 플레이를 펼치며 공격보다는 다른 쪽에 중점을 두는 변칙적인 라이트가 주류를 이뤄온 것이 여자 배구의 현실이다. 

반면 나혜원과 황연주는 둘 모두 후위공격이 가능하며 공격에 중점을 둔 플레이를 펼치는 정통파 라이트에 가까운 선수들이라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 수비와 조직력, 변칙 플레이 등을 중심으로 하는 배구는 공격력을 중심으로 하는 배구에 비해 경기의 재미도 떨어지고 쉽게 한계를 드러낼 수 밖에 없다. 

최근 우리 여자 배구도 점점 공격력을 강조하는 추세로 흘러가고 있는데, 두 선수의 활약을 지켜보면 이들의 플레이가 기존의 라이트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 좀 더 공격적이고 좀 더 재미있는 배구로 나아갈 수 있는 촉매제로 작용했으면 하는 바람마저 들 정도다.

물론 개선되어야 하는 부분도 있어 보인다. 나혜원의 경우 훌륭한 신체조건에서 나오는 높이와 파워를 갖춘 공격이 돋보이지만, 경기력에 기복이 심하고 후위공격 능력이 아직 미숙하다. 황연주의 경우 다채로운 움직임을 바탕으로 한 자신감 넘치는 공격이 돋보이지만, 높이와 파워의 기본적인 열세를 확실히 극복할 만한 무기가 아직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둘 모두 86년생으로 아직 갈 길이 먼 어린 선수들이다. 좋은 라이벌의 존재는 서로에게 큰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될 '라이트 전쟁' 이 두 선수 모두의 성장에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올스타 브레이크를 끝내고 오늘 18일부터 다시 재개될 6라운드 경기, 공교롭게도 두 선수의 소속팀인 흥국생명과 GS 칼텍스가 인천에서 첫 격돌을 벌인다. 

황연주와 나혜원, 두 선수의 불꽃 튀는 맞대결에서 좋은 플레이가 얼마나 쏟아져 나올지, 그 플레이들 속에서 두 선수가 얼마나 더 뻗어나갈 수 있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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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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