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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재의 논어와 스포츠] 김연아, 퀸연아여 영원하라

기사입력 2013.03.20 18:08 / 기사수정 2013.03.22 21:43

김덕중 기자


[엑스포츠뉴스=장원재 칼럼니스트] 김연아가 우승했다. 세계가 열광했다. 시상대 맨 윗자리에 선 여왕의 모습은 당당하고 우아했다. 관중들의 환호에 답하며 경기장을 활주하면서, 김연아는 누군가가 건네준 태극기를 몸에 둘렀다. 대한민국(大韓民國) 국격(國格)이 실시간으로 상승하는 듯 했다. 합창단이 현장에서 라이브로 불러주는 우리말 가사 애국가도 감동을 배가시켰다. 여왕이 돌아왔다. 전 세계 언론이 ‘압도적 우승’이라며 앞다투어 '퀸연아'의 승전보를 타전했다. 캐나다 온타리오 주에서 열렸던 2013 세계피겨스케이팅선수권대회 얘기다.

2012년 7월 김연아가 현역복귀를 선언했을 때 주변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복귀목적이 뭐냐는 말이 떠돌았다. 언론도 대중들도 김연아를 탐탁찮게 생각하는 미묘한 흐름. 뭐가 문제였을까? 스포츠서울 위원석 차장의 칼럼에 저간의 사정이 잘 정리되어 있다.

지난해 7월 김연아의 현역 복귀 기자회견을 전후해 적지 않은 논란이 있었다. 자신의 상업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컴백을 결정했다는 설이 대표적이었다. 2010 밴쿠버올림픽 금메달을 정점으로 부와 명예를 한손에 거머쥐었지만 당시는 광고시장에서 '대체재'로 성장한 손연재가 새로운 블루칩으로 각광받고 있었다. 광고시장내 자신의 입지를 급속히 손연재에게 빼앗기는 것을 막기 위해서 소치올림픽까지 선수생활을 연장하는 '상업적 고육책'을 택했다는 일종의 비아냥이었다. 교생실습을 '쇼'로 치부한 한 대학교수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가 취하하는 소동도 겪었다. 주류CF 출연에 대한 비난도 있었다. 한 젊은이가 홀로 감당하기 힘든 파고였다.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곧이어 열린 이탈리아 세계선수권에서 준우승을 했을 때 대중들은 변함없이 김연아를 지지했다. 정점에 오른 뒤 집중력이 떨어진 거다, 이제 좀 쉬어야 한다, 준우승도 대단하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2011년 7월 남아프리카 공화국 더반. 3수 끝에 평창이 드디어, 기어이 동계올림픽 유치에 성공하던 날. 바로 그 자리에 김연아도 있었다. 유창한 영어로 또박또박 밟아간, ‘왜 대한민국 평창이 올림픽 개최지가 되어야 하는가.’ 현역 올림픽 챔피언 김연아의 프레젠테이션이 IOC 위원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고 평창의 승리에 상당한 기여를 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유치단이 귀국할 때 김연아는 몸살에 걸려 기자회견조차 하지 못했다. 그만큼 우리는 김연아를 혹사했다. 그런데 얼마 후 그녀의 주변에서, 은퇴를 하고 싶었는데 외압 때문에 억지로 2011 세계선수권에 참가해야 했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서는 김연아가 필요했고, 그녀가 현역이냐 아니냐에 따라 득표력에 커다란 차이가 있기에 은퇴를 하지 말라는 강요가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출전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는데도 할 수 없이 등 떠밀려 나서야 했다는 2011년 초의 러시아 세계선수권(은메달) 대회. 그 날 이후, 김연아는 사실상 은퇴상태였다. 갈라쇼 말고는 빙판 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런데 선수생활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고 본인이 본인 입으로 토로한 마당에, 일 년 반을 쉬고 나서 느닷없이 복귀선언? 이거, 진정성이 있는 결정이야?



논어 이인 편(4/12)에 이런 구절이 있다.

子曰 放於利而行이면 多怨이다.
자왈 방어리이행이면 다원이다.
해석)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이해관게에 빠져 행동하면 원망을 듣는 일이 많아진다.

정이천(程伊川)은 이 구절을 ‘자신에게 이롭고자 하면 반드시 남에게 해를 끼친다. 그러므로 원망이 많은 것이다’라고 풀이했다. 김연아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이 이와 비슷했을 터이다. 김연아의 복귀는 염불보다 잿밥, 대의보다 사리사욕을 좇은 결정이 아니냐, 돌아온다고 해도 성적은 그저 그럴거다, 어디 잘 되나 보자. 하지만 김연아는 흔들리지 않았다.


子曰 躬自厚而薄責於人이면 則遠怨矣니라.(위영공 편 15/15)
자왈 궁자후이박책어인이면 즉원원의니라.
해석)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제 자신을 중후히 하여 남에 대한 책망을 엷게 하면 원망을 멀리하게 된다.

자신을 꾸짖기는 엄하게 하고 남을 책망하길 가볍게 하라. 하면 내가 남을 원망하는 마음도 멀리할 수 있고 남이 나를 원망하는 소리도 멀리할 수 있으리라.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 관대하라는 가르침. 말은 쉽지만 실천하기는 지극히 어려운 육체적 정신적 고난의 길. 동계올림픽 직후 출연한 <무릎팍 도사>에서 김연아는 자신을 향한 모든 댓글과 소문을 알고 있다고 했다. 스캔들, 소문, 가족에 대한 비난 등 모든 글들을 읽는다고 했다. '왜 그걸 다 읽어요?' '제 얘기니까요.' 김연아 스스로 어떤 사람들이 자기를 돈연아라고 부른다며 웃기도 했다. '제가 돈을 너무 밝힌다던데요?'

이 모든 비난과 의혹을 넘어서는 것은 실력 밖에 없었다. 본인만 잘 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었다. 쇼트프로그램 점수가 박하게 나왔을 때 심판들이 유독 김연아에게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는 보도가 나왔다. 김연아는 자기와 다른 선수 뿐 아니라 심판들과도 겨뤄야 하는건가? 프리스케이팅을 앞두고 김연아가 느꼈을 심리적 압박감은 어느 정도였을까. 실수없이 연기를 펼쳐야 한다는 중압감에 더하여, 김연아는 내 연기가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구심과도 싸워야 했을 터이다. 한 순간의 삐끗함이 돌이킬 수 없는 실수로 이어지는 곳이 바로 세계정상(世界頂上), 절정고수(絶頂高手)들의 세계다. 마음의 평정을 어지럽히는 아주 사소한 거북함도 경기력에 치명적 영향을 미치는 전장(戰場)이 바로 거기다.

김연아는 이 모든 불리함을 타넘고 최정상에 ‘다시’우뚝 섰다. 대회가 끝난 후, 다른 선수들의 연기는 김연아의 연기와 비교하면 저공비행에 저속주행일 뿐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한 마디로 급(級)이 달랐다는 것이다. 그렇다. 여왕의 실력은 다른 클라스에서 펼쳐지는 신기(神技)였다. 하고 싶은 수 만 가지 말들을 가슴 한켠에 묻어놓고, 때가 오기만을 기다리며 매일매일 매순간 매순간을 묵묵히 정진하며 꾸준하게 달려간, 아무리 생각해도 가슴 뭉클한 김연아의 자기단련. 이건 그야말로 군자의 길로 나아간 살아있는 표본이다. 그리하여 덧붙이는 공자님의 말씀 한자락.

子曰 君子는 病無能焉이오 不病人之不己知也니라. (위영공 편 15/19)
자왈 군자는 병무능언이오 부병인지불기지야니라.
해석)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자신의 무능함에 대해 부심할 뿐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에 대해 부심하지 않는다.

아아, 김연아, 퀸연아여 영원하라.



장원재 칼럼니스트 sports@xportsnews.com

[사진=김연아 ⓒ 엑스포츠뉴스 권혁재 기자]







김덕중 기자 djkim@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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