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아이스링크에 나가 최종 웜업을 펼친 뒤 자신의 순서를 기다린다. 마침내 장내 아나운서가 자신의 이름을 호명하는 순간이 다가오면 관객들의 갈채를 받고 아이스링크에 선다.
그동안 갈고 닦았던 프로그램을 연기할 시간이 다가왔다. 링크 위에서 첫 포즈를 취하며 음악을 기다릴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피겨 스케이터에게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다. 이 상황을 극복하고 최고의 집중력을 유지하는 스케이터가 '클린'을 달성할 확률이 높다.
'피겨 여왕' 김연아(23)가 4년 만에 '월드챔피언' 탈환에 나섰다. 피겨 스케이터로서 김연아의 이력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228.56점이라는 경이적인 점수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현역 스케이터는 물론 피겨 역사상 노비스 시절부터 자신이 출전한 모든 대회에서 시상대 위에 올라선 이는 김연아 밖에 없다.
시니어 데뷔 이후 21개의 대회에 출전해 15번 정상에 등극했다. 은메달과 동메달은 각각 3차례 씩 목에 걸었다. 주니어와 노비스 시절에는 10차례 국제대회에 출전해 7번 우승을 차지했고 3차례에 걸쳐 은메달을 획득했다.
피겨 스케이팅 여자 싱글 역사상 이처럼 화려한 경력을 쌓은 스케이터는 좀처럼 찾아 볼 수 없다. 하지만 세계선수권에서 우승을 차지한 적은 한 번 밖에 없었다. 지난 2009년 3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LA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김연아는 이듬해인 2010년과 2011에는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한 시즌동안 휴식을 취했던 김연아는 지난해 복귀를 선언했다. 본인은 "자신의 기대치를 낮추고 부담 없는 경기를 치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실력은 예전과 비교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복귀 무대였던 독일 NRW트로피에서는 200점을 넘어서며 시즌 최고 점수를 세웠다. 지난 1월 초에 국내에서 열린 '전국종합선수권대회'에서는 프리스케이팅 프로그램인 '레미제라블' 클린에 성공하며 210.77점이라는 점수를 챙겼다.
무엇보다 빙판을 가로지르는 스피드가 건재했다. 이 부분에서 김연아의 컨디션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지난 11일(현지시간) 진행된 첫날 공식연습에서 김연아의 움직임은 예사롭지 않았다. 빙판을 질주하는 모습이 힘이 넘쳐보였고 점프의 비거리도 흠잡을 때 없었다. 10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출국한 김연아는 "나 자신에 대해 크게 기대를 걸지 않는다"라며 이번 대회를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또한 "밴쿠버 동계올림픽 때의 나와 현재의 나는 비교할 수 없다. 하지만 열심히 준비해온 것만큼 잘해낼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감도 내비쳤다. 이번 세계선수권대회를 국내에서 준비해온 김연아는 캐나다로 출국하기 전까지 큰 문제가 없었다. 피겨 스케이터가 겪는 잔부상과 세세한 문제점은 늘 안고 가는 부분이다.
김연아 스스로 밝혔듯 가장 중요한 것은 '동기 부여'다. 어린 시절부터 꿈꿔왔던 목표를 위해 정진할 때의 열정은 매우 남달랐다. 하지만 올림픽 챔피언이란 꿈을 이룬 뒤 새로운 목표를 위해 다시 열정을 불태우는 것은 쉽지 않았다.
2년 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를 마친 김연아는 '새로운 동기 부여'와 '정신적인 문제'에 대해 토로했었다. 모든 것을 이룬 스케이터가 다시 빙판에 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다시 선수로 뛰는 만큼 빙판 위에서 최선을 다해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김연아는 "목표의 기대치를 낮추고 예전과는 다르게 즐기고 싶다"라고 말했다. 올림픽 챔피언으로서의 여유가 느껴지는 말이다. '이기려는 자'보다 '즐기는 자'가 더욱 행복하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즐기는 것'은 절대로 '설렁설렁 한다'라고 보면 곤란하다. 열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임해야만 진정으로 '즐길 수 있는 자'가 될 수 있다. 김연아는 NRW트로피 대회와 전국종합선수권대회에서 녹슬지 않는 기량으로 좋은 결과를 얻었다.
올 시즌은 2011년과 비교해 전망이 나쁘지 않다. 우선 세계선수권대회를 앞두고 실전 대회 감각을 익힐 수 있도록 두 번의 대회에 출전했기 때문이다. 또한 두 번의 대회에서 실수를 경험했기 때문에 자신의 프로그램을 디테일하게 보완할 수 있었다.
이번 대회에서도 김연아가 극복해야할 최고의 적은 자기 자신이다. 올림픽챔피언으로서의 여유를 지키는 동시에 진정으로 '즐기는 자'가 된다면 개인통산 2회 월드챔피언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
[사진 = 김연아 (C) 엑스포츠뉴스DB]
조영준 기자 spacewalker@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