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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욱의 타이중리포트] 타이중의 눈물, 그리고 WBC가 남긴 과제

기사입력 2013.03.06 11:57 / 기사수정 2013.05.07 15:40

홍성욱 기자


[엑스포츠뉴스=타이중(대만), 홍성욱 기자] 이겼지만 이긴 게 아니었다. 대한민국 대표팀은 5일 타이중 인터컨티넨탈 구장에서 열린 홈팀 대만과의 마지막 경기에서 3-2로 이겼다. 8회말에 터진 강정호의 투런홈런으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다. 그렇지만 승리의 기쁨을 누릴 순 없었다.

경기가 끝나면 통상 패장 감독이 내외신 기자 인터뷰를 먼저 하고, 뒤를 이어 승장과 수훈선수 인터뷰가 이어진다. 어제 경기의 승장은 대한민국호의 선장 류중일 감독이었지만 1라운드 탈락이라는 고배를 마셨기에 먼저 인터뷰에 응했다. 실질적인 패장이었다.

우리 선수들은 경기가 끝난 뒤 아쉬움을 남긴 채 짐을 꾸렸다. 그런데 관중석에서 ‘팀 코리아’를 응원하던 팬들 중에는 눈물을 흘리는 이들이 여럿 보였다. 그 눈물의 의미는 현장에서만이 느낄 수 있었다.

KBO(한국야구위원회)가 이벤트로 선정했던 대한민국 공식응원단 400명과 각자 티켓과 항공권을 구해 대만에 날아왔던 100여명의 팬들은 삼삼오오 흩어져 1루측 스탠드에서 한국 팀을 목이 터져라 응원했다. 대만 관중들의 열화와 같은 응원이 펼쳐졌지만 대한민국 응원단은 결코 기죽지 않았다.



응원은 용기가 필요했다. 경기 전 대만관중들의 손에는 ‘봉타고려(棒打高麗)’라는 격문이 써 있는 포스터가 배부됐다. ‘방망이로 한국을 때리자’는 자극적인 문구다. 스탠드 2층에는 뜬금없이 김일성과 김정일 김정은의 대형사진까지 걸렸다. 경기 시작 전 애국가가 울려퍼질 때 응원단은 대형 태극기를 들어 올렸지만 일부 대만 관중들은 이를 끝까지 방해했다. 결국 태극기는 완전히 펴지지 못했다. 더구나 이 장면을 지켜본 2만여 대만 관중들은 애국가가 후렴구로 넘어갈 때까지 계속 ‘우~’하며 야유를 보냈다.

용감한 대한민국 한 팬이 태극기를 손에 들고 뛰면서 한국에서 온 팬들의 응원을 독려하자 대만 관중이 나와 팔을 잡으며 제지하기도 했다. 위압적인 분위기였고, 군중심리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팀코리아’을 응원했던 현장의 한국 팬들은 0-2로 시종일관 끌려가자 풀이 죽었다. 대만 관중들의 열띤 응원소리는 바로 옆 사람과 대화도 힘들만큼 하늘을 찔렀다. 마지막 공격이 된 8회말. 이승엽의 큼지막한 2루타와 이대호의 좌전안타로 1점을 만회한 한국이 강정호의 통렬한 홈런포로 단숨에 경기를 뒤집자 경기장의 열기는 찬물을 끼얹은 듯 가라앉았고, ‘대~한민국’을 연호하는 팬들의 함성만이 메아리쳤다.



경기가 끝나고 대만관중들은 다소 아쉽지만 2라운드 진출에 대한 기쁨을 함성으로 대신했다. 늦은 시간인데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경기장 주변에서 대만국기를 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사이 한국 응원단은 아쉬움을 뒤로한 채 경기장을 조용히 빠져나갔다. 그들 중 상당수가 눈물을 흘렸다. 잘 싸워준 선수단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와 함께 힘들게 응원한 마음 한구석의 회한이 남아있었다.


눈물을 흘린 이들은 또 있었다. 3루쪽 덕아웃에 자리한 대만 선수들이었다. 그들의 눈가는 기쁨의 눈물로 촉촉해졌다. 웃음만으론 감정을 표현할 수 없었다. 이내 벅찬 감동의 눈물이 덕아웃을 덮었다. 대만 선수단이 관중에게 인사를 하자 대만 관중들은 눈물로 화답했다. 휴지를 꺼내들고 선수들을 격려한 대만 관중들이 적지 않았다.

수훈선수로 선정돼 기자회견장에 들어선 선발투수 양야오쉰의 눈가는 아직도 촉촉이 젖어있었다. 그는 “손가락에 문제가 생겨 피가 나고 쓰라리게 아팠지만 결코 마운드를 내려오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상대선수였지만 감동적인 투혼이었다. 그의 유니폼 하의는 피를 닦은 흔적이 역력했다.



이제 1라운드는 끝났다. 우리 대표팀은 ‘대만참사’로 기록될 만큼 충격적인 탈락을 뒤로하고 서울로 돌아온다. 그렇지만 이게 끝은 아니다. 페넌트레이스가 코앞이고, 국제대회는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왜 그토록 잘 싸우던 우리나라가 이런 치욕을 당해야 하는지 모두가 다시 생각하고 지혜를 짜내야 한다. ‘승리’를 위해 가지고 있는 모든 힘을 합치지 못했다면 통렬하게 반성해야 한다. 뼈를 깎는 아픔만이 기쁨의 꽃을 피울 수 있다.

타이중은 다시 따뜻해졌다. 언제 추웠냐고 반문이라도 하듯 말이다. 이 도시를 떠나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 여전히 평온했다. 신문 가판대에는 ‘대만, 도쿄 진출’이라는 기사가 1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홍성욱 기자 mark@xportsnews.com  

[사진=위부터 고개를 떨군 류중일 감독, 김정은의 사진을 들고 나온 대만 관중, 강정호의 홈런에 환호하는 대한민국 응원단, 안녕히가세요라는 피켓을 들고 선 대만 관중 ⓒ 엑스포츠뉴스 권혁재 기자]

홍성욱 기자 mark@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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