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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투더 백구대제전] '1980년대 女배구의 강호' 미도파에 대한 추억

기사입력 2012.08.20 11:19 / 기사수정 2012.09.20 04:37

김현희 기자


[엑스포츠뉴스=김현희 기자] 2012 수원컵 프로배구대회가 화려한 막을 올렸다. 올림픽 4강 신화를 이뤄낸 여자배구 대표팀 선수들도 소속팀에 합류해 선의의 경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남자와 달리 여자배구는 모든 구단이 고른 전력을 갖추고 있어 ‘춘추전국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따라서 한 번의 승패는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한 번의 승패에 언제나 최선을 다하기에 우리는 그들을 ‘프로’라고 부른다. 

이는 백구의 대제전 시절에도 다르지 않았다. 다만 지금과 달리 초창기 여자배구에서는 현대와 미도파가 ‘양강 구도’를 형성하면서 배구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 중 미도파 배구단은 세 번이나 이름이 바뀌는 우여곡절 속에서도 여자배구 최강자로 군림하는 저력을 선보였다. 비록 1994년을 끝으로 미도파가 효성 배구단에 흡수되며 역사의 한 페이지 속으로 사라졌지만 1980년대 여자배구를 얘기할 때 미도파는 분명 빠져서는 안 될 팀이다.

미도파, 1984년 초대 대통령배 대회 우승

1980년대 명동 거리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미도파 백화점’은 상당히 친근한 곳이었다. 때로는 약속 장소로, 때로는 쇼핑 장소로 각광을 받았던 바로 그곳에 여자 배구단이 있었다. 1984년 초대 대통령배 대회에서 박미희를 앞세워 우승을 차지했던 미도파는 2~4회 대회에서도 준우승하며 현대 배구단과 라이벌 관계를 유지했다. 대통령배 대회가 개최되기 전 ‘나는 작은 새’로 불렸던 조혜정 전 GS 칼텍스 감독 역시 미도파 배구단에 소속돼 있었다. 

초대 대통령배 대회에서 MVP를 차지했던 박미희는 사실 ‘원조 얼짱 배구선수’로 불릴 만큼 단아한 용모와 출중한 실력을 두루 갖췄던 ‘올라운드 플레이어’였다. 1982년 멕시코 세계청소년대회에서도 우승 멤버로 두각을 나타냈고 1984년 LA올림픽과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도 국가대표로 활약했다. 뿐만 아니라 ‘배구 코트의 여우’라는 별칭이 입증하듯 머리를 잘 쓰면서 창의적인 플레이를 한 것으로도 정평이 나 있었다. 지난 2006년 부터는 KBS N 배구 해설위원을 맡으며 ‘제2의 전성시대’를 열고 있다.

1987년에 열린 대통령배 대회에서는 ‘미도파’가 아닌 ‘대농’으로 팀명을 바꿔 또 한 번의 우승을 차지했다. 초대 MVP 박미희가 인기 선수로 선정된 것을 비롯해 세터 이운임이 이 대회에서 MVP에 오르며 상종가를 쳤다. 또한 1985년 열린 세계여자배구 올스타전에서는 한국 대표로 유일하게 선발되는 진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결혼 이후에도 은퇴하지 않고 2년간 현역으로 뛰었고 1991년에는 방송 리포터로 ‘제2의 인생’을 살기도 했다.

이후 대농 배구단은 또 다시 ‘미도파’로 팀명을 고치며 대통령배 대회에 꾸준히 참가했다. 그러나 1991년 3위를 차지한 이후 이렇다할 모습을 보이지 못하다가 1994년 6월 효성에 통합되면서 해체에 이르게 됐다. 당시 미도파는 서울 동북 상권에 초대형 신규 백화점을 개설하는 등 종합유통 산업에 매진하기 위해 애를 썼지만 끝내 IMF 사태를 극복하지는 못했다.

1973년 국세청 배구단 인수 이후 한때 184연승의 믿기 힘든 기록까지 남긴 미도파 배구단. 지금은 모기업마저 롯데 그룹에 넘어가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았지만 1980년대 ‘미도파 여자 배구단’은 올드 배구팬들이 잊을 수 없는 추억의 팀이라는 사실에 이견은 없다.

[사진=박미희 KBSN 해설위원 (C)엑스포츠뉴스 DB]

김현희 기자 SPORTS@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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