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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제

'메시아'가 되지 못한 '메히아'

기사입력 2004.10.12 01:12 / 기사수정 2004.10.12 01:12

두정아 기자




시인, 야구를 노래하다. 

어느 날 우연히 신문을 보다 재밌는 것을 발견한다. 그것은 '메히아'라는, 이제 막 등단한 어느 시인의 詩였다. 대부분의 일간지는 매년 새해에 신인을 발굴하는 신춘문예가 있지만 중앙일보는 단독적으로 초가을에 거행한다. 新春문예가 아닌 新秋문예인 셈이다. (그러나 여기에선 편의대로 신춘문예라 명명하기로 한다)

필자가 보았던 것은 그러니까 신춘문예에 등단한 어느 시인의 당선작이었다. 보통의 신춘문예 시들은 일정의 분위기와 전형적인 구도가 잡혀 있는데 반해 이 '메히아'라는 시는 소재가 매우 독특할 뿐 아니라 문체도 평범하지 않은 시였다. 다음은 그 시의 전문이다.


메히아

김재홍

중남미의 어느 공화국 시민인 그는
동란과 쿠데타를 딛고선 아시아의 작은
공화 정부의 취업비자를 받아
뜨끈뜨끈한 잠실야구장 타석에 섰다
(왜 중남미 선수들은 교범에도 없는 말타기 자세를 하는지 몰라)
메시아가 어디 사는 지도 모르면서
검게 붉게 얽은 얼굴을 하고 그는 처음에
야구공과 방망이를 손난로처럼 품고
한겨울 국제공항 청사를 두리번거리며 어슬렁거리며 나왔을 것이다
(머리통이 얼마나 작으면 헬멧 속에 모자를 또 썼을까)
그는 당당하게 2루타를 쳤다
베이스를 밟고 선 두 다리가 덜덜 떨렸다
수천 개 눈동자가 일순간 그의 몸을 향해
함성을 지르고 파도처럼 술렁거리며 비명을 지르고
거대한 솥단지가 되어 펄펄 끓다가
더 작은 체구의 다음 타자가 안타를 칠 수 있을지 의심한다
(관중석에 앉으면 왜 선수들은 모두 야구공처럼 보일까)
비쩍 마른 붉은 눈의 게바라를 읽고 싶었다
국경을 뛰어넘는 공화국의 깃발을 보고 싶었지만
그는 너무 작았고 액정 화면에 잡힌 그의 헬멧에는
국적 불명의 독수리 이니셜만 코를 벌름거리며 박혀 있었다
멕시코와 푸에르토리코와 쿠바 출신의 운수 좋은 메이저리거들도
타석에 서면 구부정하게 허리 굽히고
꼭 말 타는 자세로 방망이를 든다

*메히아 - 국내 프로야구팀 `한화 이글스`의 외국인 선수



이 시는 ‘야구’에 대한, 자세히 말하자면 ‘야구선수’에 대한 내용이다. 야구 영화, 야구 만화는 많이 봤어도 야구 詩는 처음이다. 신춘문예에 있어 종종 이런 재밌는 당선작이 나오곤 한다. 예를 들면, 황인숙의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같은, 시를 초월한 유쾌함을 품고 있는 詩. 

우리나라의 가장 보수적이며 권위 있다는 신인 등용문에서 이런 재밌는 시를 발견하게 된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이 시를 쓴 김재홍 시인은 ‘메히아’를 제외하고도 필자가 읽은 시 4편이 모두 야구에 관한 시였다는데 주목할 만하다. 그러니까 당선이 된 시가 야구에 관한 것일 수는 있는 일이지만 시인이 신춘문예에 응모했을 때 냈던 시가 대부분 야구에 관한 시였을 것이라는 점이 신기한 일이라는 것.  얼마나 야구광인지 시를 쓸 때조차 온통 야구 생각뿐 인 셈이다.

여느 보수적인 심사위원이었다면 이 장난기 많은 시를 당선시키기에 망설임이 꽤나 있었을 듯 싶다. 심사평을 보면 '비유도 어눌해 보이고 평범하기 그지없는 이 시는 특유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바로 '유머'다. 일반인들이 생각하기엔 詩와 유머가 어울릴까마는 전략적으로 평범을 가장한 詩야 말로 독자에게 웃음을 선사할 수 있을 지니고 있다.

우스꽝스러운 메히야의 타격폼 자세에 대한 군더더기 없는 묘사와 , ‘아시아의 작은 공화 정부의 취업비자를 받아’를 통해서는 연민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말 타는 자세로 방망이를 든’ 인물을 묘사함에 있어서 유머와 연민을 통해 가장 최상의 이중 효과를 가져오며 야구에 대한 재밌는 상황을 그리게 한다. 야구를 넘어 세상을 향하고 있는 시선은 상대적으로 사뭇진지하게 느껴진다.


메히아의 황당한 타격폼 “뭬야”

작년 약 두 달간 머물렀던 한화의 용병 ‘메히아’를 기억하는가. 그 폼이 얼마나 특이했으면 詩에도 등장할까 싶다. 도미니카공화국 출신 로베르토 메히아.

계약금 4만 달러에 연봉 8만 달러로 한화 이글스와 입단계약을 맺었다. 90년대 미국프로야구 트리플A에서 활동했었고 2002년에는 대만리그에서도 뛴 경험이 있어 동양 야구에 빠른 적응력을 보일 것으로 기대가 많은 선수였다.

정확도와 장타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던 그는 지금 이름조차 생소하게 들리는 스쳐지나간 외국인 선수들 중 한 명으로 남아 있다. 입단한지 두 달만에 퇴출 되었기 때문이다. 초반의 부담 적응과 페이스 조절에 실패했고 수비만 잘한다는 비판여론이 제기됐다.

더군다나 그 해의 용병 선수의 부진이 유난히 대두된 실정이라 피할 수 없는 메스가 가해진 것이다. 전 용병인 데이비스처럼 많은 활약을 기대했지만 공백이 워낙 컸기에 팀 전력상으로도 힘든 일이었고 메히아 선수가 그 공백을 메우기란 애초부터 부담이었다.


'메시아'가 되지 못한 '메히아'

황당한 타격폼으로 화제가 됐던 그의 별명은 “뭬야”였다. 그가 입단했을 때는 마침 '여인천하'라는 드라마가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던 때였다. 특히 도지원이 분한 ‘경빈’의 대사 중 표독스러운 표정으로 내뱉던 “뭬야?”는 최고의 히트였다. 메히아의 “뭬야”라는 별명은 처음 경기가 있을 때 붙여졌다. ‘메히아’를 줄여서 발음하다보니 “뭬야”가 됐던 것. 드라마가 끝나면 그에 따른 유행어도 사람들 기억속에서 사라지듯 그의 인기도 조금씩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갔다.

어디서나 용병선수는 모두 영웅이 되어주길 바란다. 잘해야 본전, 못하면 퇴출을 면치 못한다.

한국 야구에는 그의 타격폼이 맞지 않았던 것일까.
두달 만의 퇴출, 특이했던 타격폼… 항상 팬들에게 미소로 화답하던 메히아는 기대해던 만큼 그 결과를 보이지 못한 채 '중남미의 어느 공화국'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메히아의 진지한 모습과 열심히였던 모습은 이 시와 함께 한국에 남겨지게 됐다. 당사자인 메히아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어느 시의 주인공으로 등장해 당선을 받게 된 사실을 알기는 할까.



두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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