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수아 기자) 넷플릭스 시리즈 '돌풍'의 박경수 작가가 기획 의도를 밝혔다.
지난 28일 공개된 '돌풍'은 세상을 뒤엎기 위해 대통령 시해를 결심한 국무총리 박동호(설경구 분)와 그를 막아 권력을 손에 쥐려는 경제부총리 정수진(김희애) 사이의 대결을 그린다.
'돌풍'이 공개 직후 '오늘 대한민국의 TOP 10 시리즈' 부분 1위를 기록한 것은 물론, 온오프라인을 망라해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평단과 대중들 모두 오랜만에 만나는 몰입감 넘치는 정치 스릴러에 극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특히 '돌풍'의 세계관과 캐릭터를 창조해낸 박경수 작가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상황.
이에 박경수 작가의 기획의도와 시청자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담긴 일문일답이 공개됐다.
이하 박경수 작가 일문일답.
Q. '돌풍'은 어떤 작품인가?
'박동호'의 위험한 신념과 '정수진'의 타락한 신념이 정면충돌하여, 대한민국 정치판을 무대로 펼쳐지는 활극이다.
Q. '돌풍'의 기획 및 집필 의도는?
이미 낡아버린 과거가 현실을 지배하고, 미래의 씨앗은 보이지 않는 답답하고 숨 막히는 오늘의 현실을 리셋하고 싶은 갈망에서 시작한 작품이다.
Q. '권력 3부작'으로 큰 사랑을 받으셨는데, 권력이라는 소재에 끌리셨던 이유가 있다면?
외부에서 바라보는 작가와 작가 자신이 바라보는 작가가 다른 경우가 자주 있다. 사람들은 제가 '권력을 비판하는 작품'을 쓴다고 말을 하지만 저는 그런 작품을 쓰겠다 의도하고 시작한 적은 없다. 단지 제 마음을 울리는 인간을 그릴 뿐이다.
섬마을 소년을 그리면 섬마을이 배경일 수 밖에 없듯이, 제가 그리는 인간이 21세기 초반의 대한민국을 살아가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배경일 수 밖에 없다. 저의 작품에 권력 비판적 요소가 있다면, 제 마음을 울리는 주인공이 살아가는 21세기 대한민국이 불합리하기 때문일 것. 시대와 국가와 무대와 작업은 배경일 뿐, 제가 그리고자 했던 것은 오직 그 인간의 본질이다.
저는 사회를 고발한다는 말에 조금의 거부감이 있다. 나이 마흔이 넘으면 자신이 사는 세상에 책임이 있다는 말이 있다. 이 사회에 문제가 있다면, 그건 저의 책임이다.
이 세상의 불합리는 내 안의 악마가 만들거나, 침묵하거나, 묵인한 것이다. 그래서 아프다. 나의 침묵으로 만들어진 불합리한 세상을 나의 주인공이 살아가기 때문. 덧붙이자면, 저는 권력이 아니라 '몰락'을 그린다. '추적자 THE CHASER'의 강동윤, '황금의 제국'의 장태주, '펀치'의 박정환 모두 몰락하는 인물들이다.
불가능한 꿈을 꾸었지만, 현실의 벽 앞에서 포기하지 않고 질주하다가 몰락하는 자들에게 저는 관심이 많고, '이카루스적 인간'을 좋아하는 것이다. 작가로서 저는 모든 몰락하는 것을 사랑한다. 안전한 삶을 포기하고, 불온한 꿈을 꾸는 자들. 하지만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기에 끝내 몰락하는 자들을 앞으로도 더욱 깊이있게 그려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Q. 전작들과 비교해서 '돌풍'이 특별한 점이 있다면?
전작은 모두 약자를 짓누르는 강자들에 대한 분노의 정서가 깔려 있다. 즉 분노는 글을 쓰게 하는 동력이었으며, '분노는 나의 힘'이었다.
'돌풍'은 '나의 분노는 정당한가?'라는 성찰에서 시작했다. '박동호'와 '정수진'의 성찰 없는 분노는 그들 모두를 괴물로 만들어 버렸다. 그래서 '나의 분노는 정당한가?' 그 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 속에서 고통스러워하며, 부끄러워하며 써 내려간 대본이다.
이 작품을 보면서 우리가 한 번쯤 자신의 분노는 정당한지 생각해 볼 수 있다면 너무나 고마운 일이다.
Q. 작품의 제목을 '돌풍'으로 정한 이유는?
극중 '서기태'의 대사는 제 진심이다. "다시 시작하고 싶다, 숨 막히는 오늘의 세상 다 쓸어버리고"
Q. 대본을 집필하실 때 작가님만의 비결이나 원칙이 있는지?
저는 항상 이번 화가 마지막화라고 생각하고 대본을 쓴다. 다음 화를 염두에 두고 쓰면, 주인공이 빠져 나올 수 있을만한 상황에서 멈추게 된다. 주인공을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덫에 집어넣고, 그 화를 끝낸다. 그리고 다음 화의 스토리 고민을 시작한다.
물론 후회도 한다. '내가 미쳤지. 왜 전 화의 엔딩을 이렇게 했을까. 도저히 방법이 없는데...' 하지만 찾고 또 찾다보면 또 다시 활로가 생긴다. 제가 쓴 작품의 다음 화가 궁금한 이유는 작가도 다음 화를 모르고 그 화의 엔딩을 쓰기 때문.
Q. 이번 '돌풍'에서 아끼는 대사가 있다면?
1) 거짓을 이기는 건 진실이 아니야. 더 큰 거짓말이지.
2) 썩어가는 세상을 어떻게 할까, 질문은 같아. 너하고 나 답이 다를 뿐. 내가 내린 답을 정답이라고 믿고 끝까지 밀어붙일란다.
3) 공정한 나라, 정의로운 세상, 이 땅을 천국으로 만들겠다 약속한 자들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었어.
Q. '박동호'를 통해 어떤 점을 보여주고자 하셨는지?
비록 ‘위험한 신념’을 가졌지만, 자신의 미래를 포기한 자가 주어진 시간 동안 세상을 청소하고 국가를 포맷하려는 그 숨가쁜 진격의 템포가 현 시대를 살아가는 시청자들에게 작은 메시지라도 던질 수 있길 바랐다.
Q. ‘정수진’을 통해 어떤 점을 보여주고자 하셨는지?
‘정수진’은 작가인 나의 모습과 가장 닮아 있는 인물이다. 한때의 나였고, 지금도 나의 흔적이 진하게 배어있는 ‘정수진’은 제가 가장 아프게 그린 인물이다. 저는 욕망보다 신념이 더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욕망은 법으로 통제할 수 있지만, 신념은 통제마저 어렵기 때문이다.
Q. 설경구, 김희애 배우와 캐릭터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나누셨는지?
불타는 내면을 차가운 호흡으로 표현하며 씬을 장악하는 두 배우의 연기 내공을 알기에 전적으로 신뢰했다. 설경구 배우님, 김희애 배우님, 두 분 다 저의 신뢰보다 몇 배나 더 나은 연기를 보여주셨다. 두 배우분께 감사와 존경을 표한다.
Q. 김용완 감독과의 작업 소감은?
‘박동호’와 ‘정수진’이라는 인간을 그린 이 작품에 김용완 감독님도 공명해 주셨기에, 별 다른 의견 차이 없이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김용완 감독님은 인간적이고 따뜻한 풍모와 작품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훌륭한 감독님이다. 이 작품으로 김용완 감독님께 많은 것을 배웠고, 함께 작업한 시간이 너무나 즐거웠다.
Q. 복귀 소감 및 작품을 오랫동안 기다려 온 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더 열심히 살고, 더 열심히 쓰겠다. 다음 작품은 '돌풍'의 여운이 사라지기 전에 공개되도록 속도를 내겠다.
Q.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190여 개국 팬들에게 '돌풍' 을 선보이게 된 소감은?
유럽의 어느 노인이, 아프리카의 어느 청년이, 미국의 어느 학생도 '돌풍'을 볼 수 있다 생각하니, 많이 두렵고 조금은 설레는 마음이다. 내 마음을 울리는 이야기는 남의 마음도 울린다는 생각으로 각본을 써 왔다. 한국 시청자들은 물론이고, 같은 시대 다른 나라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마음도 조금이나마 울릴 수 있기를 바란다.
사진 = 넷플릭스
김수아 기자 sakim4242@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