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아시안컵 호주와의 16강 전을 하루 앞둔 인도네시아 신태용 감독이 27일(현지시간) 카타르 도하 메인미디어센터(MMC)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엑스포츠뉴스 도하, 권동환 기자) 인도네시아 축구대표팀을 이끄는 신태용 감독이 한국 축구 팬들에게 비판보다 응원을 요구했다.
신 감독은 28일 오후 8시30분(이하 한국시간) 카타르 도하 자심 빈 하마드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호주와의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 16강 맞대결을 치른다. 경기 하루 전인 27일 미디어센터에서 열린 회견에 나타난 신 감독은 "악플보다 응원을 부탁한다"라고 했다.
신 감독은 이번 아시안컵에서 인도네시아를 이끌고 대한민국 축구대표팀과 함께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대회 조별리그에서 일본, 이라크, 베트남과 함께 D조에 편성된 인도네시아는 1승 2패를 거뒀지만 성적이 가장 좋은 조 3위 4팀에게만 주어지는 16강행 티켓을 극적으로 거머쥐었다. 이번 대회에서 16강에 오른 동남아시아 팀은 태국과 인도네시아 둘 뿐이다.
24일(현지시간) 카타르 도하 앗수마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조별리그 D조 최종전 일본과 인도네시아의 경기가 끝난 뒤 인도네시아 신태용 감독이 팬들에게 인사하며 경기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16강에 올라간 인도네시아는 호주를 상대한다. 만약 신 감독의 마법이 한 번 더 일어날 경우 8강에서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을 상대할 수도 있다. 16강에서 만난 한국과 사우디아라비아 중 승자는 8강에서 호주 혹은 인도네시아를 상대한다.
과거 태극전사들을 이끌고 2018 국제축구연맹(FIFA) 러시아 월드컵에 도전했던 신 감독이 아시안컵에서 한국과 단두대 매치를 펼치는 진풍경이 연출될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신 감독도 기자회견에서 한국과 8강에서 맞붙는 시나리오에 대해 "나한테는 상당히 동기부여가 된다. 우리가 호주를 이길 확률은 내 생각엔 3 대 7이지만 공은 둥글기에 함께 한국과 8강에서 만나는 게 가장 멋질 거 같다는 게 내 생각이다"라며 기대심을 감추지 않았다.
이때 신 감독은 전 한국 대표팀 사령탑이자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축구인으로서 최근 엄청난 비난을 받고 있는 클린스만호를 보호하기로 나서면서 눈길을 끌었다.
축구대표팀 주장 손흥민이 지난 25일 말레시이아와의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조별리그 E조 최종전을 3-3으로 마친 뒤 아쉬워하고 있다. 연합뉴스
클린스만호는 이번 아시안컵에서 손흥민(토트넘 홋스퍼), 이강인(PSG), 김민재(PSG) 등 역대 최고 수준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선수단과 함께 우승에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현재까지 그들이 보여준 경기력과 결과는 실망스럽기만 하다.
바레인, 요르단, 말레이시아와 같은 조에 속한 클린스만호는 조별리그에서 1승2무라는 성적을 거뒀다. 특히 FIFA 랭킹 130위 말레이시아한테 3-3 무승부를 거두며 체면을 구겼다. 16강 진출엔 성공했지만 우승을 기대하고 있떤 팬들은 조별리그 성적에 큰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팬들읜 실망은 기대 이하의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고 있는 클린스만 감독을 향한 맹비난으로 이어졌다. 또 조규성(미트윌란), 설영우(울산HD) 등은 SNS상에서 인신공격까지 받았다.
팬들의 비난 수위가 점차 거세지자 신 감독이 직접 진화에 나섰다. 과거 한국 대표팀을 이끌었을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던 신 감독은 태극전사들을 위해 비난을 자제해 줄 것을 호소했다.
2023 아시안컵 호주와의 16강 전을 하루 앞둔 인도네시아 신태용 감독이 27일(현지시간) 카타르 도하 메인미디어센터(MMC)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표팀을 향한 악플에 대해 신 감독은 "심리적으로 압박은 많이 받는다. 아무래도 감독이나 선수들은 핸드폰과 인터넷을 통해 어떤 말이 나오는지 보기에 심리적인 압박이 심하다"라며 "나도 러시아 월드컵 때 열심히 했지만 경기 결과로 인해 많은 비난을 받았다. 그래도 마지막에 유종의 미를 잘 거둬 행복하게 마무리했다"라고 말했따.
이어 "이번 아시안컵에서 예선전을 힘들게 치르고 있어 축구 팬들이나 국민들의 실망이 상당히 크다고 생각하지만 대표팀 선수들을 믿고 악플보다는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셨으면 한다"라며 "악플을 쉽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선수들의 컨디션이 멘털을 안 좋은 쪽으로 흘러갈 수 있으니 악플을 달더라고 경기 결과가 끝난 다음에 부탁드리고, 지금은 악플보다 응원을 해주길 바란다"라고 덧붙였다.
또 "우리 클린스만 감독부터 해서 선수들이 더 경기에 자신 있게 해줄 수 있게끔 응원을 보내줬으면 한다"라며 "내 경험으로 봤을 때 국민들이 응원을 해주면 선수들이 좋은 결과를 가져올 거라고 생각한다"라고 전했다.
월드컵을 1년 앞두고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경질됨에 따라 2017년 6월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신 감독은 월드컵 기간 중 장현수와 함께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장현수는 조별리그 2경기에서 연달아 실책성 플레이를 선보여 축구 팬들로부터 악플 공세에 시달렸다.
27일(현지시간) 러시아 카잔 아레나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3차전 한국과 독일의 경기. 김영권의 슛이 골로 인정되자 손흥민, 김영권, 장현수 등이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오죽하면 신 감독은 장현수에게 월드컵이 끝나면 함께 대표팀을 떠날 생각까지 했다. 신 감독은 멕시코전이 끝난 후 기성용이 부상을 입어 독일과의 3차전에서 장현수를 기성용 자리에 기용할 생각을 했지만, 자신감이 크게 떨어진 장현수는 이를 거절했다.
이때 신 감독은 "나는 너보다 (여론의 비난이) 더 심하다. 우리 독일전을 열심히 치르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대표팀에서 물러나자"라고 말했다.
신 감독에게 설득된 장현수는 독일전에서 미드필더 출전했고, 좋은 활약을 펼치며 2-0 승리에 기여했다. 당시 한국은 디펜딩 챔피언 독일을 무너뜨렸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16강 진출을 저지하면서 엄청난 화제를 일으켰다. 당시 경기가 러시아 카잔에서 열렸기에 '카잔의 기적'이라고 불리고 있다.
신 감독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아직 대회 중엔 비난보다 응원이 더 필요하다고 팬들에게 호소했다. 악플 공세에 시달렸지만 유종의 미를 거두면서 팬심을 반전시킨 신 감독과 마찬가지로 클린스만 감독 역시 16강에서 사우디를 제압하며 등 돌린 팬들을 다시 부를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될 전망이다.
사진=연합뉴스
권동환 기자 kkddhh95@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