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조은혜 기자) 우여곡절이 많았던 선수 생활이었다.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유니폼을 벗어야 했다. 조금은 늦은, 하지만 진심을 담은 강경학의 한 편의 작별인사.
#1 트레이드, 부상, 방출
2011 신인 드래프트, 생각지도 못했던 한화 이글스에서 이름이 불렸다. 그리고 10년을 한화에서 뛰었고 2021년 트레이드로 KIA 타이거즈로 이적했다. 많은 기대 속에 팀을 옮겼지만, 그 기대만큼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설상가상 부상까지 발목을 잡았다.
종종 통증이 왔던 팔꿈치가 문제였다. 강경학에게 2022년은 중요한 해였다. 자신을 선택한 팀을 위해 더 나아진 모습을 보여야 했지만, 팔이 계속 아팠다. 통증을 참고 했지만 결국 일상생활에서도 못 버틸 정도가 됐고, 세 군데의 병원에서 검진을 받은 결과 두 군데에서 '야구를 계속하려면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야구를 계속해야 한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강경학은 구단과 논의 끝에 5월 수술을 결정하고 6월 중순에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수술을 마친 뒤 이제 막 몸을 추스르고 있던 그때, 강경학에게 날아든 건 방출 소식이었다.
#2 도전과 고민의 시간
군 제대 선수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야 했던 시기, 자신의 거취가 불안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예상치도 못한 시점에 방출 통보를 받았다. 수술을 위해 선수단에서 나와 있었기 때문에 그 누구에게도 제대로 된 인사를 하지 못하고 팀을 떠나야 했다. 재활도 온전히 스스로의 몫이었다.
그래도 야구는 해야 했다. 강경학은 몸 상태가 100% 회복된 후 새 팀을 찾기로 마음먹었다. 다만 회복이 생각보다 더뎠다. 해가 바뀌고, 더 완벽한 컨디션을 찾다 9월이 되어서야 한 팀의 배려로 입단 테스트를 볼 수 있었다.
강경학이 생각한 마지막 도전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팀의 부름은 없었고, 결국 '선수' 강경학에게 마침표를 찍어야 할 때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다. 강경학은 "이제 나이도 있고, 경쟁적으로도 더 어리고 더 잘하는 선수들도 많으니 생각은 하고 있었다. 몸 상태 때문에 테스트를 세 번 정도 미뤘는데, 그때마다 다른 길을 고민을 했다"고 털어놨다.
미련도 없었다. 그는 "1년이 엄청 지루했다. 야구도 보기 싫었다. 혼자 재활하고 몸 상태를 유지하고, 기술 훈련을 한 다는 게 힘들었다. 더 시도를 해 보면 필요한 팀이 있을 수도 있었겠지만, 내가 거기까지 버틸 힘이 없었다"고 돌아봤다.
이어 "테스트 딱 한 번을 보기 위해 1년을 버텼다. 안 해 봤으면 후회를 했을 텐데, 테스트 딱 한 번 보면 미련이 없겠다는 생각이었다. 야구를 다시 하기 위해 1년을 준비했던 건데, 떨어지고 나서는 후련하기도 하고 조금은 쉬고 싶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3 "이글스의 경학이는, 타이거즈 경학이는 삐까뻔쩍"
강경학의 2018년 6월은 아직도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강경학의 당시 한 달 성적은 81타수 31안타 3홈런 15타점 18득점 타율 0.383으로, OPS가 1.042에 달했다. 강경학의 '미친' 한 달이 한화를 포스트시즌으로 이끌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강경학에게도 가장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시즌이다. 단순히 성적이 좋았기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그 결과를 만들었다는 뿌듯함 때문이다.
강경학은 "그 시즌에 1군 캠프에 갔다 15일 만에 2군 캠프로 떨어졌다. 그때 더 독기가 생겼던 것 같다. 이후에 시즌이 시작하고 1군에 올라갔다 한 타석도 못 나가고 내려오면서 다시 분노 아닌 분노를 생겼었다. 그때 악에 받쳐서 했는데, 올라가자마자 빵 터졌다는 게 속 시원했다. 야구하면서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었다"고 설명했다.
평생 잊지 못할 환호성. 강경학은 "제일 아쉬운 게 이렇게 그만두면서 팬들한테 제대로 된 인사를 하지 못했다는 거다. 한화에서는 내가 평생 가져갈 기억들을 많이 만들어주셨다. KIA 팬분들에게는 와서 너무 못 보여드려 죄송한 마음도 있다. 다시 야구를 하기 위해 1년 동안 조용히 있었는데, 나의 안부를 궁금해하고, 나를 생각해 주고 응원해 주는 팬들이 있다는 생각에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얘기했다.
그는 "한 번씩 육성응원을 들으면 기분이 정말 좋더라. 훗날 나의 자식에게 자랑할 수 있을 정도로, 팬분들의 응원은 평생 간직하고 살아갈 것 같다. '삐까뻔쩍' 응원가를 만들어준 홍창화 형에게도 정말 고맙다. 야구를 하면서 내가 '삐까뻔쩍'으로 살 수 있게 해 주셔서 너무 감사한 분들이다"라고 웃었다.
#4 새 출발
강경학은 12월부터 모교인 광주동성고 코치를 맡아 지도자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강경학은 "입단 테스트에서 떨어진 뒤 이제 선수를 그만할 것 같다 인사를 드리러 갔는데, 그때 마침 코치 자리가 비어 좋은 제안을 해 주셨고, 해보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지도자로도 프로 무대를 밟고 싶다는 새 목표도 생겼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많은 지도자를 만나고 또 스스로 경험하면서, 후배들에게 여러 가지를 알려줄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다.
강경학은 "선수로서는 팬들 마음속에 영원히 '삐까뻔쩍'으로 남고 싶다"면서 "앞으로는 한국 야구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선수들을 많이 배출할 수 있도록 열심히 공부하는 지도자가 되겠다. 이제 '제2의 삐까뻔쩍'을 만들겠다"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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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혜 기자 eunhwe@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