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최원영 기자) 과거는 곧 현재의 밑거름이 됐다.
의외였다. 올해 미국 메이저리그(MLB) 내셔널리그(NL) '유틸리티' 부문 골드글러브 수상자, 김하성(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이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멀티 포지션을 하기 싫었다"는 것. 동시에 '과거의 김하성' 덕분에 오늘날에 다다랐다고 말했다. 비슷한 역할의 선수들에게 울림을 줄 수 있는 고백이었다.
야탑고 시절 팀 상황상 3루수, 2루수, 유격수를 병행했다. 2014년 넥센 히어로즈(현 키움 히어로즈)에 입단한 뒤 이듬해 주전 유격수로 발돋움했다. 2018년까지 줄곧 유격수 자리를 지켰다. 2019년 변화가 감지됐다. 유격수로 846이닝, 3루수로 240⅓이닝을 소화했다. 2020년엔 유격수로 743이닝, 3루수로 360⅓이닝을 맡았다.
김하성은 20일 골드글러브 수상 기념 공식 기자회견에서 "멀티 포지션을 한다는 게 싫었다. 고등학생 때도, 프로에서도 마찬가지였다"며 "유격수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무척 컸다. 키움에서의 마지막 두 시즌엔 3루수로 나가는 경기가 많아 개인적으론 좋지 않았다"고 속마음을 내비쳤다.
수년간의 경험이 빅리그 무대서 빛을 발했다. 김하성은 내야 어느 포지션이든 기용 가능한 만능열쇠가 됐다. 샌디에이고 첫해였던 2021년 유격수로 260이닝, 3루수로 165⅔이닝, 2루수로 148이닝을 기록했다. 지난 시즌엔 유격수로 1092이닝을 책임지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3루수로도 171⅓이닝 동안 뛰었다.
샌디에이고는 올 시즌을 앞두고 리그 대표 유격수 잰더 보가츠를 영입했다. 11년 총액 2억8000만 달러의 초특급 계약을 맺었다. 김하성은 유격수 자리를 내줬다. 그럼에도 설 자리가 있었다. 2루수로 856⅔이닝, 3루수로 253⅓이닝, 유격수로 153⅓이닝을 선보였다. 내셔널리그 2루수 부문 골드글러브는 니코 호너(시카고 컵스)가 차지했지만, 유틸리티 부문의 영광은 김하성의 몫이었다. 포지션별 최고의 수비를 펼친 선수에게 주어지는 상을 거머쥐었다. 한국 선수이자 아시아 출신 내야수 최초로 역사에 족적을 남겼다.
김하성은 "과거의 경험이 메이저리그에서 이렇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곤 생각조차 못 했다. 그때의 시간들이 내가 성장하는 데 결정적인 발판이 됐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올해 포지션을 바꿔야 해 부담스러웠지만 자리를 가릴 상황은 아니었다. 구단에도 '포지션보다 출전 시간이 더 중요하다. 어디든 나가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며 "코칭스태프와 동료들이 잘 도와줘 2루수로도 나쁘지 않은 성적을 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2루수로 변신과 동시에 새 규정에도 적응해야 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올 시즌부터 수비 시프트를 금지했다. 김하성은 "시프트가 안 돼 2루수로서 해야 할 역할이 많아졌다. 좌타자가 나왔을 때 2루수, 유격수, 1루수로 시프트 하는 경우가 잦았는데 더는 할 수 없게 됐다"며 "2루수의 수비 범위가 더 넓어졌지만 내게는 도움이 됐다. 역할이 커져 재밌었다"고 미소 지었다.
이어 "개인적으론 2루수보다 유틸리티 부문에서 골드글러브를 수상하고 싶었다. 과거와 달리 최근엔 빅리그에서도 멀티 플레이어에 대한 기대와 가치가 높아졌기 때문이다"고 강조했다.
스스로 가장 까다롭다고 느끼는 포지션은 3루수다. 김하성은 "타구가 너무 빠르게 온다. 핸들링이 비교적 더 많이 필요한 것 같다"며 "각도상 2루수, 유격수보다 타자의 타격이 잘 안 보인다. 주 포지션이 아닌 다른 포지션으로 출전하면 엄청난 긴장감과 함께 집중력을 써야 해 체력적으로 조금 힘든 것도 있다"고 언급했다.
샌디에이고에서 주전 유격수로 뛰지 못해 트레이드될 것이란 현지 매체의 관측도 많았다. 김하성은 "처음엔 트레이드 이야기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지금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며 "트레이드돼도 결국 다른 팀에서 나를 필요로한 것 아닌가. 어느 팀이든 출전 시간이 주어진다면 상관없다. 개인적으론 샌디에이고가 좋다"고 밝혔다.
더 멀리, 더 힘찬 발걸음을 내디디려 한다. 김하성은 "올해 골드글러브를 받았고, 실버슬러거(포지션별 최고 타자에게 주는 상) 후보에도 올랐다. 발전하는 데 좋은 동기부여가 됐다"며 "내년에 두 개의 상을 다 받으면 좋겠지만 실버슬러거를 수상하기엔 타격이 너무 부족하다. 후보에 한 번 올라봤으니 노력해 보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어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게 수비다. 어느 포지션이든 관계없이 매 시즌 골드글러브를 받고 싶다. 한 시즌 반짝 잘한 게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자 한다"며 두 눈을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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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영 기자 yeong@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