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도쿄, 유준상 기자)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한국 야구의 전성기'로 불리는 2000년대 후반의 기억을 떠올리곤 한다.
그 어느 팀과 맞붙어도 물러서지 않았던 한국 야구는 올림픽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등 세계 무대에서 경쟁력을 입증해 보였다.
그러나 2010년대 이후 상황이 조금씩 달라졌다. 2013 WBC 1라운드 탈락으로 한국 야구에 위기가 찾아왔다. 2015 프리미어12 우승으로 명예회복에 성공했지만, 그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야구 대표팀은 2017 WBC에서도 1라운드 탈락의 수모를 피할 수 없었다. 심지어 홈에서 열리는 첫 WBC였음에도 이스라엘, 네덜란드에 연달아 패배하면서 자존심을 구겼다.
침체된 분위기는 2019 프리미어12 준우승, 2020 도쿄올림픽 노메달(4위)로 이어졌다. 올해 3월 WBC 역시 결과는 1라운드 탈락이었다. 그 사이 베테랑급 선수들이 하나 둘 대표팀을 떠나기 시작했고, 세대교체의 필요성이 더 부각될 수밖에 없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정규시즌 후반기 일정을 앞두고 있던 지난 7월 20일 KBO 리그·팀 코리아 레벨 업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국가대표팀 전임감독제 운영, 국제 교류경기 추진, 피치클락 및 연장 승부치기 도입 등이었다. 일명 '로봇 심판'으로 불리는 자동 볼·스트라이크 판정 시스템(ABS) 도입 검토도 포함돼 있었다.
관련 내용 발표 당시 KBO는 "오는 2026 WBC까지 대표팀의 장기적이고 일관성 있는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는 전임 감독제를 운영한다"며 "감독을 보좌하고 대표팀의 방향성과 정책을 연구할 코치 역시 전임으로 선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그동안 대회에 임박해 국가대표팀을 소집했던 것과 달리 꾸준히 해외팀을 상대로 평가전과 교류전을 개최해 국가대표팀을 운영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렇게 대표팀은 국제 무대 경쟁력 향상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고,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통해 소기의 성과를 얻었다. 금메달로 대회 4연패를 달성한 것도 중요하지만, 20대 초중반에 불과한 젊은 선수들이 주축이 돼 성과를 이뤘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 역시 아시안게임과 마찬가지로 세대교체를 위한 장이었다. APBC는 대회 규정상 24세 이하(1999년 1월 1일 이후 출생) 또는 프로 입단 3년차 이내의 선수 및 와일드카드 3명(1994년 1월 1일 이후 출생자)로 팀이 꾸려지는 만큼 성적과 더불어 선수의 성장과 국제무대 경험에 초점이 맞춰졌다.
지난 5일 대구에서 소집된 선수들은 일주일간 훈련 및 연습경기로 컨디션을 조율했고, 14일 일본으로 건너와 이튿날 일본 도쿄돔에서 대회 대비 훈련을 진행했다. 그리고 16일 호주전을 시작으로 17일 일본전, 18일 대만전까지 예선 일정에서 2승1패를 기록하며 2017년 1회 대회에 이어 또 한번 결승에 올랐다.
결과는 준우승이었지만,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는 예선과 결승에서 만난 일본에 1점 차 승부를 벌이며 자신감을 충전했다. '적장' 이바타 히로카즈 일본 대표팀 감독도 "경기에서는 우리가 이겼지만, 아주 작은 차이로 승패가 갈렸다고 생각한다. 한국이 두 경기를 이겼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며 "타자들의 스윙이 날카로웠고, 우리가 배워야 하는 부분도 많았다. 투수들도 제구가 좋았다. 선발투수 4명(문동주, 이의리, 원태인, 곽빈)은 전부 150km/h 이상의 공을 던졌다. 이렇게 젊고 훌륭한 투수를 4명이나 데려온 걸 보고 앞으로 한국 야구가 무서워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나아질 한국 야구의 미래를 내다봤다"고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아시안게임에 이어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던 류중일 감독은 "그동안 한일 양국의 격차가 벌어진 상태였는데, 이번 대회로 조금만 더 기본기를 지키면 앞으로 대등한 경기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돌아봤다.
또 류 감독은 "이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전임 감독제가 도입된다면 대회 때만 모이는 게 아니라 자주 모여서 훈련과 경기를 해야 한다. 그렇게 팀을 만들어야 한다는 걸 허구연 총재님이 말씀하셨다. 누가 감독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자주 모였으면 한다"며 대표팀의 지속적인 성장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끝이 아닌 시작이다. 갈 길은 멀지만, 희망은 있다. 반전을 위한 노력은 2024년에도 계속돼야 한다.
사진=연합뉴스, KBO
유준상 기자 junsang98@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