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현정 기자) 데뷔 25주년을 맞은 뮤지컬 배우 민영기는 인터뷰하는 동안 ‘무대를 지킨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에게 무대는 특별하면서도 일상과 같은 곳일 터다.
물론 그도 과거 무대가 아닌 곳으로 외도(?)를 한 적도 있다. 2002년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 출연 후 단숨에 주연으로 급부상한 민영기는 이후 CF와 뮤직비디오 촬영에 섭외됐다. 하지만 카메라 앞에 선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웠단다. 이후 무대 외 섭외를 거절하고 뮤지컬 무대에만 주로 올랐다.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게 쉽지 않고 그 안에서 연기하는 게 부끄러워 못 보겠더라고요. ‘내가 뭐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내 것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후에 섭외가 와도 거절하고 스스로 무대를 즐기는 사람이라고 낙인을 찍었죠.”
광고와 드라마 등의 섭외를 뿌리치고 뮤지컬에만 매진할 수 있다는 건 돈과 유명세에 초연하다는 말일 수도 있지 않을까. 민영기는 “아내와 그런 부분이 잘 맞는다”라며 끄떡였다.
“예를 들어 100억이 있다고 했을 때 아내와 소소하게 돈가스를 먹으러 가도 이게 과연 맛있을까 해요. 스테이크를 사줘도 가방을 사줘도 자신도 살 수 있는 것이니 감흥이 떨어지지 않을까요. 돈을 쫓는다기보다는 가치를 따지는 것 같아요. 유명해져서 가장 높은 개런티를 받으면 내 삶이 달라지고 행복할까 하는 거죠.
너무 유명해지고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지금에 만족해요. 개런티가 조금 올라가고 작품 회차가 많아지면 너무 행복하고요. (웃음) 작은 것에서 더 큰 행복을 찾아요.”
무대를 지켜야 하는 마인드 때문에 SBS 금토드라마 ‘7인의 탈출’ 출연 제의가 왔을 때도 고사했다. 그런 그의 결심을 바꾸게 한 건 다름 아닌 아내를 비롯한 주위 사람들이다.
"무대만 25년간 지켜온 사람인데 무대를 배신한 것 같더라고요. 매체, 방송은 못하겠다고 고사했어요. 연기자 선배인 아내(이현경)에게 말했더니 왜 안 한다 하냐고, 엄기준 씨와 같이 하는 건데 왜 안 한다고 했냐면서 적극적으로 해보라고 했어요.
공교롭게도 데뷔 25주년에 김순옥 작가님이 ‘무조건 민영기여야 한다’라며 러브콜을 해주셨어요. 주변에서도 이제는 세상이 달라졌다고, 외길을 파서는 안 된다고 얘기해줘 도전했죠. 첫 회가 나오자마자 유준상 형님에게 전화 와서 너무 잘한다고 자연스러웠다고 칭찬해줬어요.”
‘7인의 탈출’ 촬영을 다녀오면 온몸에 멍이 들었지만 결과물에 만족한다는 그는 앞으로 좋은 작품을 할 기회가 오면 출연할 생각이 있다며 미소 지었다.
데뷔 25주년에 하게 된 뮤지컬 ‘레베카’ 10주년 공연도 남다르게 다가온다.
민영기는 막심 드 윈터 역으로 무대에 오르고 있다. 2014년 재연, 2016년 삼연, 2017년 사연, 2021년 육연에 이어 올해 칠연에서도 열연하고 있다.
“막심은 여러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예요. 재밌고 스윗하고 유머러스한 사람인데 사건으로 딥해지고 우울해요. ‘나’를 만나면서 변해가는 과정이 생기잖아요. 연기의 폭이 아주 넓어 막심을 좋아해요. 무대에서 마음껏 화내고 슬퍼하는 것 같아 애정해요.”
민영기는 인하대 토목공학과를 중퇴하고 한양대학교 성악과를 졸업했다. 너무도 다른 길을 택했지만 후회는 없다고 했다. 직업이 무엇이든 그에게는 ‘가족’이 있어서다.
“아버지가 평범한 회사원이었어요. 퇴근길에 치킨과 과자를 사오시는 걸 동경했고 아빠 같은 자상한 남편, 아빠가 돼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고등학교 때 합창단을 하면서 노래를 처음 접하고 고2 때 정기 연주회 때 첫 솔로를 맡으면서 나를 향한 박수 소리를 처음 들었어요. 그때 희열을 느꼈고 노래로 표현하고 박수 받고 돈벌이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막연하게 생각했죠.
성적에 맞춰 학교에 갔는데 내가 원하는 게 과연 이걸까 질문이 들었어요. 20대 초반이니 한 살이라도 젊을 때 해보고 싶은 걸 해보자는 생각이 갑자기 들어서 노래로 진로를 바꿔 지금까지 왔는데 후회는 없어요. 이 삶을 살면서도 자상하고 가정적인 남편, 아빠가 될 수 있거든요.
25년 간 휴식기가 거의 없었어요. 작품이 끝날 때 일주일이라도 쉴 때 아내와 아이와 머리 식히러 어디든 가려고 해요. 아이가 어린 만큼 날씨가 좋으면 캠핑도 가고 최대한 가족과 시간을 보내요.”
민영기는 1998년 오페라 ‘돈 죠반니’로 데뷔해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다. '로미오와 줄리엣', '지킬 앤 하이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싱글즈', '화성에서 꿈꾸다', '삼총사', '살인마 잭', '모차르트!', '엘리자벳', '노트르담 드 파리', '영웅', '레베카', '그날들', '웃는 남자' 등 다양한 작품에서 활약했다.
건강이 허락하면 80세여도 무대에 서겠다는 그다.
“무대를 지키면서 세월의 무게도 많이 느끼고 어깨도 무겁지만 그래도 나름 열심히 잘해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25주년을 새로운 발판으로 삼고 싶고 앞으로의 25주년을 기다리지 않을까 합니다.”
사진= EMK뮤지컬컴퍼니, SBS 방송화면
김현정 기자 khj3330@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