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1.06.15 10:05 / 기사수정 2011.06.15 10:05
[엑스포츠뉴스=김준영 기자] 점점 더 타이트하고 급해진다.
지난 13일 두산 김경문 전 감독의 자진 사퇴는 만 이틀이 지난 현재까지도 그 충격 여파가 가시지 않고 있다. 불과 5~6개월 전이었던 작년 12월 30일 선동열 현 삼성 운영위원의 감독 경질 여운도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야구계의 충격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두 명장의 연이은 충격적인 퇴장은 한국 야구계에 분명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 사라진 인내의 미학
프로 세계에서 인내라는 말은 참 통용되기가 쉽지 않은 단어다.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는 경쟁 무대서 인내란 어쩌면 사치일 뿐이다. 매년 호성적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는 8개 구단도 이와 다를 바 없다. 부진한 선수들도 한 해가 다르게 잘려나가는 판에 감독은 응당 파리목숨이요, 잘리기 위해 고용된 운명이라는 말이 맞다.
그러나 야구라는 매커닉을 대입하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야구는 일견 단순하지만 한편으로 매우 복잡한 스포츠다. 알면 알수록 어려움에 빠져들고 그 맛에 팬들도 야구를 사랑한다. 이는 야구 팬들이 야구라는 스포츠의 매력을 알아가는 것처럼 필연적으로 인내를 수반한다. 선수들에겐 신체조건 못지않게 기술이 중요하고, 감독들에겐 기술 못지않게 거대한 조직을 다루는 지혜가 중요하다.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다. 그래서 프로야구단의 정상 등극은 천리길, 추락은 한순간이다. 때문에 감독이든 선수든 야구단이라는 조직에 들어와서 적응을 하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최근 들어 순위 싸움의 열기가 유례없이 높은데다 일부 감독의 계약 만료 기간까지 겹치며 구단이나 감독이나 선수나 다들 급해지고 있다. 물론 국내에서 프로야구단을 운영하는 건 기업의 이미지와 방향성 등 고려해야 할 것이 한, 둘이 아니다. 성적이 나오지 않고 구단이 원하는 방향으로 야구단이 굴러가지 않는 걸 무작정 두고 봐서도 안 된다. 과감할 때는 과감한 선택을 하는 게 승부수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잇단 감독 사퇴는 결국 팀 성적에 대한 극심한 스트레스와 그럴 수밖에 없는 주변 분위기 형성이 씨앗이 됐다고 봐야 한다. 2기 계약 첫 해 세대교체 된 선수들을 추슬러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성과를 거둔 삼성 선동열 운영위원이 계약 기간을 4년이나 남기고 사실상 구단으로부터 경질을 당한 게 그 예다. 두산 김경문 전 감독의 경우 구단의 압력은 전혀 없었지만, 어쨌든 우승 만능주의의 폐해에 사로잡혀 적지 않은 부담감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올 한 해 7위로 부진하다고 해서 김 전 감독을 무능한 사령탑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후폭풍
야구는 다양성의 스포츠다. 그러나 SK 김성근 감독의 색채가 최근 프로야구 트렌드를 장악하면서 다른 팀들도 이에 따라가고 있는 게 사실. SK가 흔히 쓰던 방식의 총력전과 선발진의 계투 변칙 투입 등 깜짝 작전은 이제 변칙이 아니라 일견 당연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쁜 건 아니다. 좋은 건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그 사이 개성과 인내가 사라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서 최근 몇 년간 전력도 엇비슷해졌고 더욱 빡빡한 승부가 많아졌으며 지난 시즌 후 삼성과 올 시즌 두산의 사례를 계기로 나머지 7개 구단의 사령탑들은 당장 적지 않게 흔들릴 가능성이 생겼다.
무리한 선수운용과 변칙 작전의 잦은 사용이 장기적으로 독이 될 위험성을 내포하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더더욱 순위 싸움이 뜨거워지면서 또 다른 오판이 생길 수도 있다. 당장 올해 성과를 내지 못하면 감독의 입지가 흔들리는 시대다. 선 운영위원과 김 전 감독의 사퇴로 그러한 양상은 더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성과를 위한 성과, 보여주기 식의 뭔가에 집착해 또 다른 무리수가 양산될 가능성이 생긴 셈이다.
인간 선동열과 김경문의 감독 6개월 시간차 퇴장은 또 다른 야구 모델 발견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 그 과정 속에서 두 전직 사령탑도 더욱 성숙해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감독을 향한 사라진 인내는 또 다른 감독들을 급하게 해 누군가에게 원치 않는 비극을 부를 가능성을 야기한다는 점에서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포스트 선동열 김경문 시대의 감독 정국은 과연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사진=김경문 전 감독 ⓒ 엑스포츠뉴스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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