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5.02.19 18:13 / 기사수정 2005.02.19 18:13
현 K리그에는 이운재, 서동명, 조준호 등과 같은 정상급의 기량을 과시하는 골키퍼 들이 있다. 그 이전으로 거슬러가면, 10여년 동안 단 한 선수만의 독보적인 맹활약이 빛났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에 K리그 최고의 골키퍼로 군림한 타지키스탄 국적 출신의 귀화 골키퍼 신의손(45)이 있었다. 골수 축구팬들에게는, 사리체프라는 귀화 전 이름으로도 익숙하다.
신의손은 얼마전 소속팀 FC서울과의 재계약 포기 이후, 은퇴하여 현역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1999년을 제외한 12시즌(1992~2004년)동안 K리그에서 활약, 통산 320경기에 출전하여 356실점을 기록한 K리그 최고의 골키퍼 출신이다. 비록 노쇠화로 인하여 2003년부터 출전 기회가 줄었지만, 그 이전까지 활약은 단연 독보적 이었다. 40대의 시기를 보낸 2000년 대에는, 노장 투혼을 발휘했다.
신의손은 K리그 최초로 한국에 귀화한 용병 출신이다. 2000년대 이전까지 사리체프라는 이름으로 K리그에서 활약하던 시절을 포함하여, 10여년간 K리그 최고의 골키퍼로 꼽혀왔다. 10여년의 세월동안 최고의 자리를 지킨 선수는 드물다. 최고는 단 하나뿐 이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신의손이 쌓은 업적은 현재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길이길이 빛날 것이다.
1992년에 일화천마(현 성남일화)에 입단한 사리체프는, 40경기에서 31실점을 기록하는 0점대 실점률의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1993년부터 1995년까지 0점대 실점률을 기록하여 맹활약 펼친 사리체프는, 일화의 K리그 최초 정규리그 3연패를 이끈 주역이 되었다. 여러차례 뛰어난 선방을 과시하면서 자신의 진가를 더욱 발휘했고, 일화는 사리체프가 골문을 튼튼히 지킨 든든함 속에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사리체프는 뛰어난 순발력과 반사신경 등을 통한 괴물같은 선방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당시에는 '신의 손' 등과 같은 말까지 생길 정도로, 자신의 명성을 더욱 높이면서 화려한 경력을 계속 쌓아갔다. 일화가 K리그에서 승승장구 할수록, 사리체프의 신들린 선방이 더욱 빛났다. 당시 132경기 무교체 출전이라는 진기록도 세웠다. 사리체프는 신태용, 고정운 등과 함께 일화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사리체프가 K리그에서 꾸준히 맹활약 펼치자, 다른 K리그 구단들은 골문을 든든히 지키기 위해 용병 골키퍼들을 영입하기에 이르렀다. K리그 내에서 용병 골키퍼들이 주전으로 기용하는 경우가 부쩍 늘어났다. 이는, 국내 골키퍼들이 주전으로 출전할 수 있는 기회가 대폭 줄어드는 역효과로 이어졌다.
결국, 1996년부터 용병 골키퍼 출전을 3분의 2이상 넘기지 않는 규제가 생겼다. 그러더니, 출전 규제가 더욱 강화되어 1998년에는 용병 골키퍼 출전 및 영입을 금지했다. 1996년부터 출전 기회가 줄어든 사리체프는, 1998년에 단 5경기만 출전하고 K리그를 떠났다. 만약 사리체프가 K리그에서 실패했다면, 이같은 규제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규제가 생길 정도로, 사리체프의 존재감을 실감케 했다.
사리체프는, 40세인 2000년에 신의손이라는 한국 귀화명으로 다시 K리그 그라운드를 밟았다. 이번에는 안양LG(현 FC서울)의 붙박이 주전 골키퍼로 활약했다. 40대에도 불구하고, 노장 투혼을 발휘하여 전성기 시절의 감각을 충분히 발휘했다. 결국, 최용수 등과 함께 안양의 정규리그 우승을 이끄는데 큰 역할을 했다.
2001년에는 35경기에 출전하여 29실점을 거둔 0점대 실점률을 기록했다. 34경기 출전에 27실점을 거둔 1995년 이후, 6년만에 0점대 실점률을 기록한 것이다. 2001년 정규리그에서 2위를 차지한 안양은 2000년 이전까지 몇년간 하위권에 뒤쳐져 있었지만, 신의손이 골키퍼로 돌아온 2000년 이후에 다시 K리그의 명문 자리를 되찾았다.
하지만 최정상급의 기량을 과시한 선수라도, 노쇠화를 피해갈 수 없었다. 2002년 정규리그 후반부터 순발력이 떨어지기 시작한 신의손은, 서서히 노쇠 기미를 드러냈다. 2002년 11월 13일 라이벌 수원전에서는 4실점을 기록하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안양은 이 경기 이전까지 수원전 정규리그 9연승을 기록했지만, 1:4의 패배로 수원전 정규리그 10연승 달성에 실패했다.
2003년 정규리그 초반에 맹활약 펼쳤지만, 5월 11일 성남전 및 5월 18일 수원전 3실점이 화근이 되어 자신보다 21세 어린 박동석에게 붙박이 주전 골키퍼 자리를 내줬다. 여름에 다시 붙박이 주전 골키퍼로 활약했지만, 또 다시 박동석에게 밀렸다. 2003년에는 18경기 출전에 그쳐, 35경기 출전한 2002년에 비해 출전 기회를 절반 잃었다. 2004년에는 단 7경기만 출전했다.
40대 중반까지 현역 선수로 활약한 신의손은, 1992년부터 1996년까지 5년 연속 K리그 BEST 11 GK 부문에 선정 되는 영광을 안았다. 그리고 2000년부터 2001년까지 귀화 선수로서 2년 연속 K리그 BEST GK 부문에 선정 되었다. 1992년부터 2001년까지 10시즌 동안 7차례의 K리그 최고의 골키퍼로 선정된 것이다. 이 기간동안 각각 1차례씩 K리그 최고의 골키퍼 자리에 오른 국내 골키퍼는 신범철과 김병지, 이운재 뿐이다.
소속팀의 정규리그 우승에 결정적인 역할도 했다. 1993년부터 1995년까지, 2000년에 각각 일화와 안양의 정규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팀 공헌도 또한 절대적 이었다.
비록 신의손은 은퇴했지만, 그가 K리그에서 남긴 업적은 이렇게 대단했다. 아직까지 신의손보다 더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K리그 골키퍼는 없다. 10여년 동안 맹활약 펼쳐왔던 신의손은 K리그를 발전 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던 선수들 중에 한명이다. 신의손의 이러한 공로는, 앞날에 더욱 좋게 인정 받을 수 있다. 신의손은 K리그를 사랑하는 축구팬들에게, 영원한 K리그 최고의 골키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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