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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경기(22) 멋쟁이 복서 VS 집념의 유도인

기사입력 2005.02.08 11:40 / 기사수정 2005.02.08 11:40

김종수 기자






2004년 12월 31일 'K-1 PREMIUM 2004 Dynamite'

프랑소와 '더화이트' 버팔로 보타 VS 아키야마 요시히로 (Akiyama Yoshihiro·추성훈)

전 프로복싱 IBF헤비급챔피언 출신이라고는 허나 늦깎이에 K-1에 데뷔해 8전 2승 6패의 저조한 성적을 올리고있는 사나이 대 일본의 유도국가대표 출신의 대결.

얼핏보면 국내팬들 입장에서는 그다지 흥미를 가질만한 카드가 별로 아니었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관심을 끌만한 요소는 얼마든지 있었고, 그 결과 많은 국내언론들은 다른 어떤 경기보다도 이 두 선수의 대결에 주목했었다.

역시 가장 큰 이유는 아키야마 요시히로 선수가 사실상 한국계인 추성훈이라는 사실이었고, 상대적으로 비중은 낮지만 보타 선수가 지난 'K-1 그랑프리'에서 4강까지 진출하며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 '멋쟁이 복서' 프랑소와 '더 화이트' 버팔로 보타

전 프로복싱 IBF헤비급챔피언 출신이라는 지명도를 가지고 K-1무대에 뛰어들었지만, 그동안의 전적은 썩 좋지 않은 편이었다.

'마르세이유의 악동' 시릴아비디(Cyril Abidi)에게 World Grand Prix 2003 Opening Round와 World Grand Prix 2003 Final에서 한번은 실격, 한번은 판정으로 연속적인 패배를 당했고, 이후 후지모토 유스케(Yusuke Fujimoto), 아지지 카토우(Aziz Khattou), 레미본야스키(Remy Bonjasky)에 이르기까지 무려 5전 전패를 당했다.

이쯤되면 '요코즈나' 출신의 아케보노와 비교해서도 그다지 나을게 없는 성적이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서도 보타는 항상 당당한 모습을 유지했고 "난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조금만 기다려봐라. 곧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해주겠다"는 식의 발언으로 조금도 위축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쩌면 허풍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으나 그는 실제로 경기마다 마지막 라운드까지 끌고 가는 투지를 보여주었고, 한번도 TKO패를 당하지 않으며 절반의 실천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그는 진짜로 사고를 치고 말았다.
WORLD Grand Prix 2004 Opening에서 '하이퍼 배틀 사이보그' 제롬 르 밴너(Jerome Le Banner)에게 모두의 예상을 깨고 첫 승을 따내며 파이널에 진출하더니, 8강전에서는 '20세기 최고의 킥복서' 피터 아츠(Peter Aerts)를 물리치며 4강에 진출한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제롬 르 밴너가 정상적인 컨디션이 아니었다는 점과 피터 아츠가 공격 중 다리를 다쳐 경기를 진행할 수 없었다는 행운도 뒤따랐지만, 이들은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사나이들인지라 그런 이유만으로 보타를 평가절하 하기에는 결과가 너무나도 좋았다.

준결승에서 비록 패하기는 했지만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 레미 본야스키를 패배 일보 직전까지 몰아가는 모습에서, 이제 보타는 패배를 밥먹듯이 하는 예전의 그 선수가 아니라는 것을 팬들은 알 수 있었다.

72년생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와 복싱 외에는 공격 기술이 없다는 것이 단점이지만 뛰어난 적응력을 바탕으로 킥복서들의 로우킥이나 가라데 출신들의 앞차기를 막아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많은 커버가 되고 있다.

항상 자신만만한 모습에 뛰어난 패션감각, 멋진 등장음악 등으로 많은 여성 팬까지 보유하고있는 '멋쟁이 복서' 보타, 그러나 이번 상대는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유도선수, 그것도 최고수준의 관절기를 구사하는 강적이다.

이에 대해 보타는 "내가 그와 같은 상대를 경험해 보지 못했다고는 하지만, 그런 면에서는 상대 역시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기술이 들어가기 전에 빠른 스텝과 강한 펀치로 제압해버리면 된다"며 특유의 자신감을 잃지 않는 모습이었다.
과연 보타는 그만의 뛰어난 적응력을 이번에도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 아키야마 요시히로 (Akiyama Yoshihiro·추성훈)

한국명 추성훈으로 더 유명한 일본의 유도스타 아키야마 요시히로.
이같이 뛰어난 자질을 가진 선수가, 그것도 고국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가지고있는 사나이가 일본국적을 가지고 활약한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서 일장기를 달고 금메달을 딴 추성훈은 사실 누구보다도 한국에 대한 사랑이 간절했던 선수로 알려져 있다.

오사카 출신인 그는 일본에서 받는 차별이 싫어 모국에서 국가대표를 꿈꾸지만 실력이 출중함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제일동포라는 이유로 역 차별을 당하며 결국에는 운동환경이 좋은 일본으로 돌아가, 귀화 후 국가대표 자격을 얻게된다.

일부에서는 한국 국적을 버린 그를 비판하기도 하지만 추성훈의 일본 국적 선택은 어쩌면 모국에서마저 차별 받은 선수의 마지막 선택이었을 것이다는 점에서 씁쓸함을 금치 못하게 하고 있다. 그를 비판하기 전에 한국스포츠 구조의 고질적인 문제점들을 다시 한번 뒤돌아보는 것이 옳지 않을까 생각된다.

외국의 경우는 잘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는 실력 외에도 학연, 지연 등이 아직도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아테네올림픽 대표 선발에서 떨어져 4년 후 베이징올림픽을 기다려야 하는 처지였으나, 낙담한 그에게 오사카 시절 선배이자 일본최고의 야구 명문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스타플레이어 기요하라 가즈히로가 다가왔고, 그의 권유로 추성훈은 프로격투가로서의 새로운 인생을 결심하게 된다. 유도선수 시절부터 `반골`이란 말로 대표된 그의 스타일은 어쩌면 격투기쪽이 더 잘 어울렸는지도 모르겠다.

◇ 전일본 학생 체중별 2위(1996)
◇ 동아시아 경기 대회 유도 81킬로급 우승(2001)
◇ 전일본 실업 유도 개인 선수권 81킬로급 우승(2001)
◇ 코우도관배 일본 유도 선수권 81킬로급 우승(2001)
◇ 일본 국제 유도 대회 81킬로급 우승(2002)
◇ 파리 국제 유도 대회 81킬로급 우승(2002)
◇ 부산 아시아 대회 유도 81킬로급 우승(2002)
◇ 전일본 선발 유도 체중별 선수권 대회 81킬로급 우승(2003) 
◇ 세계 유도 81킬로급 일본 대표(2003)

아직도 충분히 올림픽 금메달을 노려볼 수 있는 나이와 몸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유도의 경력들을 뒤로 한 채 추성훈은 험난한 종합격투기의 세계로 몸을 던졌다.

첫 데뷔전은 K-1 2004 그랑프리 이후 새로운 강자로 부상하고있는 보타!
추성훈의 유도실력은 격투기무대에서 얼마만큼이나 통할 수 있을까…?

■ 경기시작

입식타격이 유리하다, 그라운드가 유리하다를 떠나서 일단 경험적인 부분에서는 추성훈이 많이 불리한 것은 사실이었다. 보타는 그동안 꾸준히 링에 적응하며 발전을 거듭해왔던 케이스였고 추성훈은 기량자체를 떠나 이번이 첫 데뷔전이 아니던가…

더욱이 아무리 보타가 거구라지만 명색이 프로복싱 헤비급챔피언 출신인지라 발놀림과 주먹의 속도에서도 추성훈이 앞서기는 쉽지 않은게 사실이었다.

땡!
공이 울리기 무섭게 추성훈의 몸이 시위를 떠난 활처럼 앞쪽으로 쏘아져 날아갔다. 기습적인 태클공격에 보타는 맥없이 링 바닥으로 나뒹굴었고, 복싱기술을 써볼 사이도 없이 벌어진 상황인지라 짐짓 당황한 듯 보여졌다.

아무리 보타가 적응력이 뛰어나다지만 처음 겪어보는 스타일, 그것도 국가대표급 유도선수와 넘어져서 싸운다는 것은 대단히 불리하다 말할 수 있겠다.

잠깐 여기서 하나만 짚고 넘어가자면 보타가 기댈 수 있는 부분도 하나 있었다.

이번 경기를 위해 특별히 제정된 룰인데, 조르기 등 관절기술에 걸렸을 때 로프를 잡으면 심판이 "그만!"을 외치며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다. 매번 그런 것은 아니고 단 한번만 써먹을 수 있다. 파이터들끼리의 대결에서 이 한번의 특권이 얼마나 큰 것일지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불문가지(不問可知)한 일일 것이고, 두 선수다 쓸 수는 있겠지만 아무래도 보타 쪽에 좀더 유리한 규정이라 말할 수 있겠다.

로프를 의식한 탓인지 일단 추성훈은 바로 관절기에 들어가지 않고 올라타서 파운딩 공격을 감행하기 시작했다. 맷집이 좋은 상대에게 큰 충격을 줄만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일단 당황한 보타는 양발을 구르듯이 차대며 필사적으로 응전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첫 경기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추성훈은 침착했다.
넘어진 보타의 주변을 뱅뱅 돌며 파운딩 공격을 감행하던 그는, 상대가 자신을 밀어내려고 팔을 쭉 뻗어오자 지체 없이 암바(Arm Bar)에 들어갔고, 완벽하게 걸린 기술에 보타는 더 이상 저항하지 못하고 바닥을 치고 말았다.

1라운드 1분 54초만의 승리였다.

단 한 게임에 불과하기는 하지만, 이날의 통쾌한 승리로 추성훈은 종합격투계 최고의 '유도아이콘' 요시다 히데히코(35, 요시다도장)를 이을 후계자로까지 꼽히고 있다고 한다.
앞으로 이 선수의 행보를 지켜보는 것도 종합격투기를 즐기는 또 다른 재미로 작용할 듯 싶다.

 



김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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