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오전(한국시각),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이 5주간의 길었던 전지훈련을 끝마치고 시리아와의 아시안컵 1차 예선을 위해 시리아로 입성했다. 비록 아시안컵 1차 예선이긴 하지만, 지난 전지훈련의 연장선상에 있는 대표팀은 계속 될 포백 라인의 점검과 최상의 선수 조합을 놓고 마지막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지난 1월 15일 장도에 올라 UAE를 시작으로 사우디 홍콩 미국 등을 돌며 마지막 경기였던 멕시코전과 비공개로 진행되었던 미국과의 경기를 포함, 모두 9차례의 평가전을 치른 대표팀은 5승 1무 3패라는 비교적 만족스러운 성적표를 손에 쥐었다.
이 기간 동안 대표팀은 한국에겐 아직 시기상조란 평가를 받았던 포백 수비 라인을 구사해 새로운 전술에 대한 가능성을 이끌어 냈고, 조원희 이호 백지훈 같은 젊은 피를 수확했으며 단 시일 내에 대표팀의 전력 파악과 조련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우려했던 아드보카트 감독에 대한 능력도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렇듯 비교적 무난한 전지훈련을 치르고 나서였는지 축구팬들은 그동안 아드보카트호에 비교적 관대한 평가를 내렸다. 지난 UAE 전에서는 다소 충격적인 패배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시작이다 조금 더 지켜보자.'라는 관망세가 우위를 점했고, 코스타리카나 덴마크전에서의 패전도 '배울 것이 많았다.'라는 분위기였다.
아드보카트 감독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축구팬의 반증이라고 할 수도 있겠고, 조금씩 성숙해지는 우리네 축구 문화의 발전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또, 전임 감독들이었던 코엘류와 본프레레를 좀 더 지켜보지 못한 것에 따른 조심스러움일 수도 있다. 여하튼, 축구팬들이 과거와 달리 하나의 경기 결과에 일희일비하며 흔들리지 않았다는 점은 분명하다.
헌데 이런 축구팬들도 선수 개개인의 평가에 대해서는 차갑고 냉정했다. 그리고 정확했다.
이동국과 이천수에 대해 180도 달라진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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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국 선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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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엑스포츠뉴스 남궁경상 |
최근 가장 많이 축구팬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선수가 있다면 이동국과 이천수 그리고 박주영일 것이다. 아무래도 최근 대표팀이 치른 전지훈련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세 사람이라 화두의 중심에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평가와 이야기들은 사뭇 달라졌다. 1년 전, 아니 전지훈련을 떠나기 바로 전과 비교해도 확연히 달라졌다.
우선 더 이상 추락하지 않고 다시 비상한 이동국과 이천수에 대한 호평과 기대감은, 지난 5주 동안 이 두 선수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팬들에게 보여주었는지 가늠케 한다. '추락하지 않은 천재'로 불리며 다가오는 독일 월드컵에 대한 기대를 한껏 부풀리고 있는 이동국과 이천수는 각종 사이트 평점과 팬들의 평가에서 가장 꾸준히 상위 점수를 받으며 아드보카트 호의 '믿을맨'으로 부상했다.
이동국은 본프레레 전 감독 시절 대표팀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으며 활약했지만, 팬들의 평가는 그가 넣었던 골 수와 비례하지 않았다. 늘 따라다녔던 '국내용'이란 오명이 가시지 않았으며 그를 비판할 때 가장 많이 나오는 '게으름'도 항상 빠지지 않았다. 이천수도 마찬가지다. 톡톡 튀는 언행과 욕심 많은 그의 플레이 스타일은 언제나 팬들에게 지적을 받았으며, 뭘 해도 미움을 받기 일쑤였다.
하지만, 지난 5주간의 전지훈련에서 이 두 선수에 대한 평가는 확연히 달라졌다. 비판과 지적보다 호의적인 평가가 조금씩 많아지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유럽에서 뛰고 있는 안정환과 박지성의 경쟁 상대로도 인정할 정도이다. 일부 축구팬들은 '이천수가 윙 포워드로 좋은 모습을 보여 박지성을 마음 놓고 중앙 미드필더로 뛰게 할 수있다.'라며 반기고 있다.
축구팬의 이런 변화는 두 선수가 지난 9차례의 경기와 전지훈련에서 최고의 기량을 뽐내서였다기 보다는 '전과는 달라졌다.'라는 부분에 동의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포지션에 따른 실력을 떠나 이동국에게는 보다 많은 활동량과 적극성을, 이천수에겐 동료와 패스를 활용하며 이기적이지 않고 성실한 플레이를 원했던 팬들이 그런 변화를 받아들이기 위한 두 선수의 노력에 인정을 했다는 것이다.
냉정한 축구팬들, '박주영 정신차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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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주영 선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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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엑스포츠뉴스 남궁경상 |
반면 지난해 '천재' 열풍을 몰고오며 프로와 국가대표팀에 화려하게 데뷔한 박주영의 경우는 조금 풀이 죽었다.
지난 2005년 1월, 카타르 8개국 초청 청소년 축구대회에서 보여준 빼어난 기량과 죽음의 원정 2연전으로 불리며 한국의 월드컵 본선행에 최대 고비였던 우즈벡-쿠웨이트전에서 보여준 그의 득점력은 가공할만했다. 박주영의 발끝 때문에 본선행 티켓을 거머쥐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K-리그에서도 박주영은 신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놀라운 경기력과 득점포를 이어가며 K-리그 최고의 흥행 아이콘으로 급부상했다. 그동안 그가 보여준 충분한 가능성과 기량 때문에 박주영에 대한 기대는 그만큼 크고 높았다. 하지만 아직은 어린 그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기 때문일까? 이번 전지훈련에서 박주영이 보여준 것들은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았다.
딱히 나쁜 움직임을 보여줬다기보다 박주영은 어딘지 모르게 정상적이지 않았다. 지난해부터 쉴 틈 없이 이어지는 경기와 심리적인 압박의 연속이어서 일수도 있고, 상대적으로 약해 보이는 체력적인 한계여서 일수도 있다. 이유야 어쨌든 박주영은 이번 전지훈련과 평가전에서 팬들의 기대치에 접근하지 못했고, 이런 박주영에게 팬들은 충고와 지적을 아끼지 않았다.
'물에 빠진 사람 구해줬더니, 이제 와서 비난한다.'라며 박주영을 믿고 응원하는 팬들도 아직 많지만, 대부분의 축구팬은 박주영의 현재 모습에 최소한 문제점을 느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헌데 박주영에게 향하는 축구팬들의 날카로운 지적과 시선은 지난 시절 이동국과 이천수가 받았던 그런 비난과는 조금 다르다.
이동국과 이천수가 조금은 억울한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면 박주영에겐 진심 어린 충고와 더불어 또 한 번의 도약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본인도 답답해할 만큼 이름 모를 슬럼프에 시달리고 있는 박주영이 빨리 깨어나서 한 단계 더 성숙해져야, 대표팀이 독일에서 좋은 경기를 펼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박주영에 대한 비판이 비난을 위한 맹목적인 비판이 아니고 건설적이고 진심 어린 충고라는 점과, 그토록 비판하고 홀대했던 이동국과 이천수에 대해 과정과 결과에 따른 충분한 박수를 쳐주는 우리 축구팬들은 분명 한 단계 더 성숙해졌고 더 날카로워졌다.
축구팬은 냉정하고 정확하다. 곧 다가올 시리아전과 3월 1일 벌어질 앙골라와의 평가전에서 많은 축구팬은 다시 한 번 대표팀 선수들의 면면을 유심히 관찰하며 그에 상응한 박수와 꾸지람을 동시에 줄 것이다. 대표팀, 긴장의 끈을 놓칠 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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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