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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6강 플레이오프에서 만난 악연의 데자뷰

기사입력 2007.10.23 01:22 / 기사수정 2007.10.23 01:22

박영선 기자

[엑스포츠뉴스=박영선 기자] 데자뷰, 낯설지 않은 냄새, 언젠가 보았던 적이 있는 듯한 풍경, 과거의 재현을 보는 듯한 착각. 10월 21일 울산 문수경기장을 찾았던 대전 시티즌의 원정 팬들은 눈앞에서 목도해야 했던 장면들에 데자뷰를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곳에서는 그들이 예전에 경험해 보았던 것들이 줄줄이 열 지어 다가오고 있었다.

2004년  8월 21일 삼성 하우젠 컵 마지막 날, 대전은 성남으로의 원정 길에 올랐다. 대규모의 무료단관이 계획되어졌고, 당시 대전시의 시장이었던 염홍철 시장까지도 함께 대전의 우승을 축하하기 위해 버스에 함께 동승하였었다.

그러나 결과는 K리그 팬들이 모두 익히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대전의 패배. 그리고 준우승. 무승부만 해도 우승컵을 가져갈 수 있었던 대전은 뼈아프게도 종료 직전 김도훈에게 1실점을 내주며, 승리와 함께 우승컵을 성남에 빼앗기게 되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K-리그 팬들의 기억에 이날의 경기가 기억될만한 특별한 경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후 투척과 경기장 난입으로 인한 경기지연이 있었다.

대전 벤치에서는 김도훈의 골에 대한 오프사이드 항의가 있었지만, 심판진은 이에 대한 설명 대신, 함구와 묵살로 판정에 대한 의구심을 돋고 왔으며, 우승컵은 눈앞에서 놓친 팬들의 반응은 격렬했었다. 

2007년 10월 21일 울산 문수경기장에서도 비슷한 광경이 연출되었다. 원정팀의 반대편에서 자신의 팀의 득점이 오프사이드 판정으로 무효가 되었고, 상대팀 골키퍼의 태도에 자극을 받은 원정 팬들의 투척과 그라운드 난입은 2004년의 그날보다는 강도가 약했지만, 다시금 그날의 사태가 재현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를 낳기에는 충분하였다. 

전반전 오프사이드 판정과 함께 경기 중 울산 수비수들의 파울이 눈앞에서 인정되지 않는 상황에 대해 S석의 뇌관은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팬들의 항의를 습관성이라고 인식하는 심판들도 많지만, 항의를 위해 항의하는 관중은 일부다. 다수가 그 일부에 동조하여 군중심리가 발동되는 데에는 공통의 가치관을 자극하는 요소가 필요하다. 2007년 10월 21일 울산 문수경기장에서는 김영광 골기퍼의 행동이 그 촉매제가 되었다.

2004년 12월 21일 창원 종합경기장에서는 대전과 전남 간의 FA컵 8강전이 열리었다. 낮 12시 경기에 창원 종합경기장의 드넓고 황량한 관중석은 원정 온 양팀의 팬들의 약간 명으로 채워져 있었다. 

이날, 전남의 골기퍼는 현 울산의 김영광이었다. 김영광 골기퍼가 대전 원정석쪽 골대를 맞게 되자, 그를 향한 야유가 경기장에 퍼졌다. 관중이 없어 적막한 공기로 가득 차 있던 경기장은 그를 향한 야유를 다른 때보다도 크게 울리게 했다.

이에 자극받은 김영광은 대전 원정 팬들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 욕을 올렸고, 이에 분개한 대전팬들의 야유는 더욱 강도를 높였다. 경기가 시작되었음에도 사과하라는 요구가 계속되었지만, 데드볼 상황에서도 대전팬들에 대한 김영광의 사과는 없었다.

또한, 이날의 경기 판정을 맡은 주부심 역시 팬들의 원성을 외면한 채 경기 진행에만 몰두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그러한 태도는 팬들의 분노를 더욱 자극했고, 대전팬들 역시 자신의 분노를 삭힐 생각이 없었다.

경기가 시작되고, 대전의 공격과 위기상황이 몇 번쯤 오가자 김영광 개인에 대한 대전팬들의 야유도 조금씩 잦아들었지만, 그렇다고 아주 끊어지지도 않았다. 그러던 중 한 가지 변수가 생기었다. 창원 종합경기장 주변에 학교에서 오전 수업을 마치고, FA컵의 위상을 위해 단체 관람을 왔던 것이다. 학생인원으로 일반석이라 불리는 W, E석이 가득 차고 원정석이라 불리는 S, N석의 대전과 전남 양팀의 팬들 옆으로도 학생들이 자리를 잡았다.

그러자 갑자기 김영광은 경기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뒤로 돌아, 대전 팬들을 향해 고개를 숙여 사과하고 대전의 원정 팬들을 향해 박수까지 쳐주는 제스처를 취했다. 하지만, 대전 원정 팬들에게는 진심이 담겨있지 않은 사과로 받아들여졌다. 오히려 자신들을 조롱하는 태도로 오해를 산 것이다. 김영광의 의도가 어떠하였건, 실제로, 김영광의 태도에 비난을 하던 대전 원정팬과 이전 상황을 모르던 창원의 관중들과 약간의 충돌과 비난을 받아야 했다. 

서로 간에 앙금은 남았지만, 짧은 해프닝으로 끝났던 그날의 사건과는 달리, 10월 21일 울산 문수경기장에서는 같은 류의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선수는 퇴장을 당했고, 팬들은 상대팀 선수는 물론이고, 자신의 팀 선수들에게까지도 위해가 될 만큼, 과격한 투척이 이뤄졌었다. 무엇이 달랐던 것일까? 

우선은 전용경기장과 종합경기장이라는 차이가 있었다. 창원 종합경기장에는 피치와 관중석 사이에 널따란 트랙이 존재한다. 설사 투척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선수가 위협을 느낄 수 없을 만큼의 거리가 존재한다. 관중석과의 거리가 멀다 보니, 선수가 관중석의 반응에 동요하는 정도도 낮다.

종합경기장들에 트랙이 있다면, 전용구장들에는 그러한 대체물로 해저드를 파놓고 있다. 하지만, 김영광의 사태에서 보듯이, 투척 시에 해저드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 전용구장의 구조적인 한계이다. 



대전의 전용구장인 대전월드컵 경기장은 울산 문수경기장보다도 피치와 관중석의 거리가 짧다. 관중석이 반응이나 행동이 피치에 전달되기 더 좋은 구조다. 하지만, 경기 당일 날 대전 구단에서는 전경을 배치하고, 관할 경찰서에서도 경기장의 안전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전경의 배치는 공권력을 상징하는 특정한 행위를 하지 않아도, 군중심리에 휩쓸린 폭력행동은 자제시킬 수 있는 거름 장치가 된다.

그러나 경기장에 전경을 배치하는 것은 어찌 보면, 관중들을 잠재적인 범죄자 혹은 폭도로 전제하고 있는 듯해, 관중에게 불쾌함을 전달할 수도 있다. 때문에 전경들과는 별도로 배치된 안전요원들의 태도가 매우 중요하다. 자신들은 관중의 안전을 유지하고 보호하기 위한 존재라는 어필은 안전요원들의 친절함에서 설득력이 있게 된다. 안전요원들이 강압적인 태도로 관중을 통솔하려 들 때에 오히려 이에 대한 반발로 관중의 폭력성이 자극될 수도 있다.

안전요원들이 가르쳐 들려 하지 않아도, 관중은 자체 정화가 가능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피치로 물병이 쏟아지고 있을 때도, 대전 팬들의 일부가 '대전 시티즌'구호를 외치며, 응원을 유도해, 투척을 자제시키려 했고, 이에 함께 대다수의 팬이 구호를 따라하며, 투척이 조금 잦아드는 기미도 있었다.

대전 원정팬들 사이에서도 '던지지 말라'는 외침이 함께였지만, 안타깝게도 전반전 오프사이드 판정과 김영광에 대한 대전팬들의 앙금은 쉽게 가라앉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다만, 선수와 관중에 대한 시스템적인 개입으로 관중이 냉정을 찾는데 조금이나마 힘을 실을 수 있었더라면, 사태가 더욱 악화되는 것까지는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박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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