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9-22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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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수가 변하고 있다.

기사입력 2006.01.24 08:33 / 기사수정 2006.01.24 08:33

손병하 기자
지난 18일과 21일, 두 차례의 평가전을 가졌던 한국 축구대표팀에서 가장 눈에 띄는 선수는 이천수였다.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해야 할 정도의 경기력을 보인 것은 아니었지만, 그를 주목하게 된 이유는 플레이 스타일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부평고 시절부터 언론과 축구팬들의 많은 관심을 받아왔지만, 이후 그는 '기량이 발전하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 주지 못했다. 워낙 어린 시절 부터 '천재'소릴 달고 산 까닭에 그의 플레이에 대한 기대감이 커서였을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자기 중심적인 그의 플레이 스타일 때문이었다.

이천수 변해야 산다

▲ 이천수 선수
ⓒ 울산 현대
이천수는 드리블을 좋아한다. 중앙 미드필드에서건 터치라인에서건 이천수가 원 터치 혹은 투 터치 이내에 패스를 하는 장면은 좀처럼 보기 힘들다. 공을 잡으면 습관처럼 드리블 후 경기장을 보거나 패스 슈팅 등의 이후 판단을 결정했다. 물론 이천수는 드리블과 패싱력 슈팅까지 모두 수준급을 자랑하지만 항상 그 타이밍이 문제였다.

단체 운동인 축구에서 개인의 기량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조직력이다. 동료 선수 간의 패스와 움직임 등 조직력이 모두 잘 맞아떨어져야 득점을 하기 위한 좋은 기회를 만들 수 있는 것. 헌데 이천수는 지금까지 플레이의 우선순위가 '자신' 혹은 '드리블'이다 보니 기회를 맞이해도 그 타이밍을 놓쳐 무산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지난 2002년 월드컵 독일과의 4강전 당시 0-1로 뒤지고 있던 후반, 이천수는 박지성의 패스를 받아 역습 기회를 잡았다. 우리 대표팀의 공격수는 4명이었고 독일은 단 두 명의 수비수만이 있었던 상황. 이천수는 동점을 이룰 수 있었던 좋은 기회에서 노마크 상태에 있던 안정환에게 패스하지 않고 자신이 끝까지 드리블해 황금 같은 기회를 날려버렸었다. 이천수의 욕심과 판단 미스가 가져온 대표적인 예다.

헌데, 이런 이천수가 지난 18일 펼쳐졌던 UAE전과 21일 열렸던 그리스전에서 많이 달라진 모습을 선보였다. 공격 일변도로 경기에 치중했었던 과거와 달리 전방에서의 적극적인 수비는 물론이고, 상대 수비수의 오버래핑시 끝까지 따라붙으며 끈질김을 보여주었다.

또, 자신의 드리블과 슈팅에 연연하지 않고 동료에게 기회를 만들어주는 모습도 많이 눈에 띄었다. 지난 21일 열렸던 그리스전에서도 전반 초반 두 세 차례의 개인 돌파 이후엔 장학영과 중앙의 이동국 등에게 공간을 내주는 패스와 움직임을 선보이며 팀 플레이에 적응하려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기본이 어느 정도 갖추어진 이천수가 동료와 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창의적인 축구에 조금씩 다가서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었다.

이천수의 변화, 대표팀에게도 플러스 효과

이러한 이천수의 변화는 이천수 개인의 업그레이드뿐 아니라 대표팀 전체 전투력을 상승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 가장 큰 효과는 대표팀의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서 나타날 수 있다.

현재 대표팀은 중앙 공격수에 이동국 안정환 조재진 정조국, 왼쪽 측면 공격수에 박주영 정경호 설기현, 오른쪽 측면 공격수에 이천수 최태욱 박지성 정도로 압축할 수 있다. 최근 설기현이 소속팀인 울버햄튼에서 오른쪽 공격수로도 뛰면서 경쟁 구도는 더욱 복잡해 졌지만, 기본적인 구도는 스리톱에 위치한 해외파와 국내파로 나눌 수 있다.

이런 경쟁 구도에서 조금 무게감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았던 오른쪽 측면에 이천수가 살아난다면, 박지성을 마음 놓고 중앙 미드필더로 기용할 수 있는 이점을 누릴 수 있다. 중앙 미드필더 자리에 김두현이나 백지훈 등이 경합하고는 있지만, 아직 박지성과 경기력의 차이는 현격하다. 이천수가 살아나 오른쪽 책임져 주고 활동량이 많은 박지성이 중앙으로 이동한다면 대표팀의 공격력은 더욱 다양화될 수 있을 것이다.

또, 대표팀에서 톱을 다툴 정도의 정교하고 수준 높은 킥은 지난 그리스전에서 보여주었듯이 대표팀의 공격력을 배가시킬 수 있다. 특히 우리보다 전력이 앞서는 강팀과의 대결에서 득점하기 위해서는 세트 플레이 상황을 노려야 하는 만큼 이천수의 킥은 또 다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물론, 이 모든 가정은 이천수가 지금까지의 플레이 스타일에서 완전히 벗어나 새로운 선수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전제하에 가능하다. 지난 2000년 당시 보여주었던 현란한 드리블과 슈팅력만 갖고는 세계무대는 고사하고 대표팀에서도 살아남기 힘들다. 자신의 장기인 드리블과 스피드를 사용할 시점을 정확하게 선택하고, 주변 동료와 공간을 활용하는 플레이에 더 눈을 떠야 독일 월드컵에서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지난 두 차례의 평가전에서 보여준 이천수의 경기는 그러한 가능성을 충분히 선보였다. 남은 전지훈련 기간에서 얼마만큼 어린 이천수의 티를 벗고 좀 더 성숙한 이천수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지, 그의 화려한 변신이 기대된다.


손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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