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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승원과 박종훈, 지루한 여정을 시작합니다 [조은혜의 슬로모션]

기사입력 2021.07.09 10:00 / 기사수정 2021.07.09 05:55


(엑스포츠뉴스 조은혜 기자) SSG 랜더스 팬들에게 '문박' 두 글자는 많은 의미를 가진다. 한때는 애증이었고 곧 자부심이 됐다면, 지금은 그리움일지 모르겠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또 성실하게 공을 던진 선수들이었다. 이제 문승원과 박종훈은 그 모습 그대로 다시 마운드에 오르기 위한 인내의 시간을 시작한다. 다시 그라운드를 밟는 날까지 남은 건 지루한 여정 뿐. 하지만 어떤 노래 가사처럼, 이들은 벌써 많은 것을 넘었다.

땅을 치다

5월 28일 대전 한화전, SSG 랜더스가 앞서있는 상황에서 선발 박종훈은 아웃카운트 하나면 승리 요건을 갖출 수 있었다. 모든 게 순조로워 보였던 그때, 박종훈이 주저앉았고 땅을 세차게 내리쳤다.

홀로 순조롭지 않은 싸움을 하고 있었다. 몸의 이상 신호는 일찌감치 눈치챘다. 작은 문제가 아니라는 건 느낌으로, 심지어 소리로도 알 수 있었다. 그래도 던졌다. 이대로 시즌이 끝날 수 있다는 생각이 스치자 더 멈추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었을 때, 박종훈이 느낀 것은 물리적 고통만이 아니었다. 땅을 치던 그때 박종훈은 생각했다. '하나만 잡으면 되는데. 이것도 못 참나.'

결국 팔꿈치 인대 수술이 필요하다는 소견을 받고 미국행이 결정됐다. 박종훈의 첫 수술이었다. 박종훈은 "선수단에 다녀오겠다고 인사하고, 감독님께 죄송하다고 얘기하니 네가 왜 미안하냐고, 건강히 갔다 오라고 하시더라. 뭐라 할 말이 없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김원형 감독님은 어릴 때부터 너무 좋아하고 존경하고, 또 가장 무서워했던 분이다. 그런 분이 감독님으로 오셨고, 나도 마냥 어린애에서 팀의 주축이라는 얘기를 듣는 위치가 됐다. 끝까지 열심히 하고 잘하는 모습만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아픈 게 좋은 모습은 아니니까 죄송스러웠다. 나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났다"고 얘기했다.



잠 못 이루다


문승원은 5월 30일 등판을 마치고 새벽까지 잠이 오지 않았다고 했다. 6이닝 1실점으로 잘 던진 후였다. 문승원은 "오후 2시 경기였는데 새벽까지 너무 아파서 잠을 못 잤다. 다음날 점심을 먹고 소파에 앉는데, 머릿속에서 '아, 도저히 못 하겠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트레이닝 파트에 검사를 받아보고 싶다고 했고, 결과가 나오면서 급박하게 미국까지 갔다. 한 3일 만에 결정이 된 것 같다"고 돌아봤다.

지난해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을 당시 알게 된 인대 손상이 문제였다. 그렇게 8개월 만에 다시 수술대에 올랐다. 첫 수술 후 당연한 단계라고 여겼던 순간들이 있었다. '그래, 적응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겠지.' 몸 상태가 완전하지 않은데도 문승원은 올 시즌 10경기를, 그것도 '잘' 던지고 있었다.

문승원은 "구단에서 신경 써주셔서 일사천리로 진행이 됐다. 감사하면서도 팀한테, 선수들한테 미안했다. 잘하고 있지 않았나. 내가 있다고 더 잘하는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같이 고생하고 노력하고 있는데, 두 명이 빠진 상황에서 내가 또 빠져버리니까 미안했다"고 말했다. 그런 문승원을 향해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은 "지금까지 못 쉬고 야구만 했으니 이번 기회에 마음 편하게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라" 격려했다.


"형까지 오면 어떡해?"

박종훈과 문승원은 2015년과 2016년부터 선발 로테이션을 돌기 시작했다. 두 투수 모두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매해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고, 2017년부터는 나란히 4년 연속 규정이닝을 소화했다. 여기에 좋은 성적까지 거두며 팀은 물론 리그를 대표하는 선발투수로 자리매김했다. 두 선수가 한 시즌마다 책임진 이닝이 도합 300여 이닝. 꾸준하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평가를 받을 만한데, 매 시즌 눈으로 보이는 발전까지 거뒀다. 이 두 선발이 동시에 빠진다는 건 상상도 못한 날벼락이었다.


너무 열심히 한 탓밖에 없었다. 문승원은 "많이 던졌으니까 수술하는 건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많이 썼으면 닳는 게 당연하고, 오히려 생각보다 그 시점이 늦게 왔다고 본다. 그래서 트레이닝 파트에 감사한 부분이 있다"고 전했다. 

박종훈은 "난 단점이 장점보다 많은 투수였다. 어려서부터 컨트롤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었고, 더 많이 던져야 좋아질 줄 알았다. 그래서 남들보다 뭐든 더 많이 하려고 했다. 지금 돌아보면 조금 더 쉴 걸 하는 생각도 든다. 그 단점을 보완하려고 무리를 했나 싶기도 하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승원이 형이 없었다면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하지 않았을 것 같다"고 말한다. 박종훈은 "승원이 형이랑 정말 친하다. 야구 그만둬도 평생 가려고 한다"고 웃으면서 "형은 정말 계획적이고 열심히 하는 사람이다. 나도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형은 더 열심히 한다. 그럼 난 어떡하나.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고 얘기했다.

시즌이 한창인 6월, 이 시기에 비행기를 타고 혼자 미국에 간다는 것 자체가 생소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도착한 미국에서 문승원의 소식을 들었다. 전화를 걸어 물었다. '형이 왜? 형까지 오면 어떡해?'

문승원은 첫 수술인 박종훈이 걱정이었고, 박종훈은 박종훈대로 1년도 채 되지 않아 두 번째 수술을 받는 문승원이 우려스러웠다. 박종훈은 "승원이 형은 내 걱정을 많이 했다. 형은 내가 한 번도 쉰 적이 없다고, 2015년부터 풀타임 뛰다가 이제 한 번 쉴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라고 조언했다"고 회상했다. 문승원은 자신이 들은 격려를 동료이자 동생인 박종훈에게 고스란히 전했다.

두 투수의 새로운 페이지

미국 LA의 켈란 조브 정형외과에서 수술을 받은 두 선수 모두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문승원은 "무통 주사가 없었는데도 통증이 거의 없었다. 깨끗한 상태가 됐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새 팔이 됐다'는 말에 그는 "맞다. 근데 새 팔이 됐다고 실력도 옛날처럼 새로 될까봐 그게 걱정"이라며 웃었다.

박종훈도 "이제 평균 구속이 140km/h이 될 수도 있다"며 미소지었다. 언더핸드인 박종훈의 평균 구속은 130km/h 초중반대였다. 박종훈은 "의사가 15년은 더 쓸 수 있게 해준다고 했으니 마흔여섯까지 야구 해야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수술 전후 미국에서도 SSG 경기는 챙겨봤다. 16시간의 시차였지만 새벽 알람을 맞췄고, 한밤중에 실눈을 뜨더라도 결과는 확인했다. 자신들이 빠진 팀을, 그런데도 버티는 동료들을 진심으로 응원했다. 박종훈은 "'제발 이겨라' 하면서 봤다. 선발 들어오는 선수들 '제발 잘해라' 하면서. 또 늘 나 때문에 불펜이 과부하라고 했었는데, 불펜 던지는 걸 보면서 마음 아프면서도 고마웠다. 정말 멋있는 불펜이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마음을 전했다.

"종훈이와 팀 얘기를 많이 했다"고 돌아본 문승원은 "너무 잘한다, 안 질 거 같다는 말을 했다. 시차가 다른데도 새벽에 깨서 야구를 보게 되더라. 중계 보고 있으면 지고 있어도 역전할 것 같았다"는 소감을 얘기했다. 역설적이게도 팀의 강한 모습은 아쉬움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시차를 뛰어넘은 메시지도 오갔다. 문승원은 "특히 어린 동생들에게도 생각보다 메시지가 많이 와 놀랐다. 후배들한테는 안 올 줄 알았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와서 정말 고마웠다"고 전했다. 화이팅 해라, 노력해줘서 고맙다, 너희가 기회다. 박종훈 본인이 표현하길 '꼰대 같은' 말들도 한국으로 향했다. 애정이 듬뿍 담긴 말들이었다.

파도가 끝나는 곳까지

수술은 더 늦게 받았지만 2주 자가격리가 없던 문승원이 지난 3일부터 먼저 강화에서의 운동을 시작했다. 문승원은 "봉합한 부위의 조직이 많이 망가져 있어 이걸 계속 풀어주면서 딱딱하지 않게 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쉬지 않고 바로 나가고 있다. 7월은 출퇴근을 하다가 8월부터는 합숙을 할까 해 구단에 요청해놨다. 그때부터는 재활을 더 강도 있게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내다봤다. 문승원이 목표로 잡은 날짜는 5월 1일이다.

백신 2차 접종 후 2주가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출국해 자가격리를 해야 했던 박종훈도 8일 격리가 해제되면서 본격적인 재활에 나설 예정이다. "한 달이면 쉴 만큼 쉬었다"는 박종훈은 "내년 6월에는 복귀해서 10승 하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올 시즌 10승을 하면 김원형 감독의 머리 염색을 돕겠다는 약속도 내년으로 미뤘다.

당분간은 이 둘과 SSG 팬들은 서로가 없는 낯선 경험을 해야 한다. 박종훈은 팬들에게 "걱정과 응원 많이 해주셨는데, 그 걱정과 응원 덕분에 수술이 정말 잘 됐다. 매년 발전하는 선수가 된다고 했는데 되돌아보면 그러지 못한 것 같다. 다음에 진짜 발전하고, 더 좋아진 모습으로 열심히, 그리고 빨리 돌아오겠다고 말하고 싶다"고 전했다.

문승원도 비슷한 마음이다. 그는 "팬들에게는 죄송한 마음밖에 없다. 원래 시즌이 끝나면 한 해 던진 걸 리뷰하는데, 올해는 아직 시즌이 끝나서 돌아보기가 좀 그렇더라. 그런 걸 생각하지 않고 잠시 일시정지 해놨다"며 "최대한 빨리 복귀해서 잘하는 게 제일 좋은 선물이 아닐까 한다"고 건강한 복귀를 다짐했다.

사진=SSG 랜더스, 엑스포츠뉴스DB

조은혜 기자 eunhwe@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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