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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스포츠 15人 ⑬] 박찬호, '새로운 출발점' 앞에 서다

기사입력 2010.12.27 08:58 / 기사수정 2010.12.27 08:58

최세진 기자


- [2010 스포츠 15人 ] 박찬호 편

[엑스포츠뉴스=최세진 기자] '다사다난'했던 한해였다. '코리안 특급' 박찬호(37)의 2010년은 그가 메이저리그에서 17년간 걸어온 길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축소판이었다.

2009년 월드시리즈 우승팀 뉴욕 양키스에서 '월드시리즈 우승'이라는 큰 꿈을 안고 시즌을 시작했지만 부상과 부진으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팀에서 사실상 방출되는 아픔을 겪었다.

어려움 속에서도 박찬호는 '내셔널리그 최약체' 피츠버그 파이어리츠로 이적, 존 러셀 감독의 든든한 지원 속에 피츠버그에서 2승을 더 추가하며 마침내 '아시아 최다승' 투수로 올라섰다.

'월드시리즈 우승' 숙원, 끝내 못 풀었다



박찬호가 2010시즌을 앞두고 내건 두 가지 목표는 '아시아 투수 최다승 기록 경신'과 '월드시리즈 우승'이었다. 이 두 가지 목표는 고난 속에서도 박찬호를 일으켜세운 버팀목이었다.

2008년 월드시리즈 우승팀 필라델피아 필리스에서 생애 처음으로 월드시리즈 무대까지 밟았던 박찬호는 월드시리즈 상대였던 양키스로 이적, 월드시리즈 우승이라는 자신의 오랜 꿈에 도전장을 던졌다.

2년 연속 전년도 월드시리즈 우승팀에서 뛸 기회를 잡았지만,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가는 길목은 생각보다 험난했다. 소속팀 양키스는 메이저리그 30개팀 가운데 승률 1위를 다툴 만큼 거칠 것이 없었지만, 그 속에서 박찬호의 입지는 점점 좁아졌다.

박찬호는 개막 이후 3번의 등판 만에 햄스트링 부상으로 부상자 명단에 올랐고, 부상자 명단에서 돌아온 이후에도 좀처럼 제 페이스를 찾지 못했다. 조 지라디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의 신뢰도 날이 갈수록 옅어졌다.


결국 박찬호는 트레이드 데드라인을 앞두고 양키스에서 지명 할당 조치를 받았고, 내셔널리그 중부지구 최하위팀 피츠버그로 팀을 옮기면서 월드시리즈 우승의 꿈을 일찌감치 접었다.

노모 히데오의 123승을 넘어 '아시아 최다승' 투수로 우뚝



양키스에서 27경기에 등판, 2승 1패에 평균자책점 5.60으로 부진했던 박찬호는 피츠버그 이적 후 치른 첫 5경기 중 4경기에서 실점하며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다.

피츠버그에서 꾸준한 등판 기회를 얻은 박찬호는 이후 8경기 연속 무자책 행진을 펼치며 시즌 후반부로 갈수록 안정적인 투구를 선보였다. 9월 13일 경기에서는 팀의 짜릿한 3-1 역전승으로 승리 투수가 되며 아시아 최다승 타이기록(123승)을 작성했다.

시즌 마지막 등판이었던 10월 2일, 플로리다 말린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마침내 역사는 새로 쓰여졌다. 박찬호는 피안타 없이 삼진 6개를 곁들이며 3이닝 무실점의 완벽투를 선보였고, 시즌 4승째이자 통산 124승째를 달성했다.

박찬호는 이날 승리로 노모 히데오를 넘어 아시아 최다승 투수로 우뚝 섰다. 미국 진출 후 476경기(선발 287경기) 만에 이룬 값진 쾌거였다.

'끝없는 도전'…새로운 무대에 도전장



우여곡절 많았던 시즌을 마친 박찬호는 시즌 후 일본프로야구(NPB) 퍼시픽리그 오릭스 버팔로스 입단을 공식발표, 새로운 무대에 도전장을 던졌다.

이로써 17년간 몸담았던 메이저리그 무대와는 아쉬운 이별을 고하게 됐다. 아시아 최다승 달성 경기는 메이저리그 팬들에게 마지막으로 선보이는 고별전이 됐다.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아이콘인 박찬호와 이승엽의 만남이 이루어진 오릭스에서 박찬호는 2011년, 선발 투수로 또 다른 도전에 나선다.

[사진 = 박찬호 ⓒ 엑스포츠뉴스 DB, OBS 제공, Gettyimages / 멀티비츠]

최세진 기자 press@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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