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7.05.15 00:49 / 기사수정 2007.05.15 00:49
[엑스포츠뉴스 = 박형진 기자] 06-07시즌 프리미어리그 대장정이 그 막을 내렸다.
조금 이르게 우승팀이 결정되면서 프리미어리그의 마지막 경기는 강등팀들의 환호와 좌절로 대미를 장식하였다. 극적으로 강등 위기를 벗어난 웨스트햄과 위건은 챔피언보다 더 큰 전율을 느끼며 환호했고, 한 시즌 만에 다시 챔피언십으로 돌아가게 된 셰필드 유나이티드의 선수들은 그라운드에 쓰러져 눈물을 흘려야 했다.
하지만, 시즌이 마무리된 이 시점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다름 아닌 첼시의 행보다.
6000만 파운드(한화 약 1100억 원)에 가까운 이적자금을 쓰며 전례없는 '쿼드러플'을 노렸던 첼시는 리그 3연패에 실패하며 2위로 리그를 마쳤다. 고대하던 챔피언스리그에서도 결승진출에 실패한 첼시는 최악의 경우 칼링컵 트로피만을 안은 채 이번 시즌을 정리할지도 모른다. 과연, 첼시에겐 이번 시즌 무슨 일이 있었는가?
1000억원의 도전 : 첼시판 갈라티코의 시작
첼시는 아브라모비치 구단주가 팀을 인수한 후 꾸준히 선수 영입에 엄청난 투자를 해왔다. 포르투를 챔피언스리그 우승으로 이끈 무리뉴 감독의 지휘 하에 첼시는 1955년 이후 50년 만에 잉글랜드 최강자로 군림했다. 2004/5시즌과 2005/6시즌 프리미어리그 2연패를 달성한 첼시에게 프리미어리그 3연패는 당연한 듯 보였다.
하지만, 첼시는 프리미어리그 타이틀로 만족할 팀이 아니었다. 4억 파운드를 넘게 투자한 아브라모비치 구단주가 원한 것은 유럽 최강자의 자리, 즉 챔피언스리그 트로피였다. 그리고 그는 좀 더 이름있는 선수들이 자신의 팀에서 뛰는 걸 보고 싶어했다.
유럽 최고의 이적료 기록을 경신한 셰브첸코(3000만 파운드)가 첼시의 유니폼을 입은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전문가는 주저 없이 발락(자유 이적), 불라루즈(1200만 파운드 추정), 애슐리 콜(500만 파운드 + 갈라스) 등을 영입한 첼시를 프리미어리그와 챔피언스리그의 우승후보 1순위로 꼽았다. 하지만, 첼시의 이러한 행보가 달갑지 않은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다름 아닌 첼시의 감독, 무리뉴였다.
새로운 전술 : 무리뉴의 역발상인가, 어쩔 수 없는 선택인가?
2006년 여름 이루어진 이적은 대부분 무리뉴 감독의 의사와 관계없이 진행되었다. 갈라스와 애슐리 콜의 트레이드는 무리뉴 감독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성사되었고, 불라루즈는 아르네센의 주도에 의해, 셰브첸코는 아브라모비치의 의사에 의해 첼시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특히 발락과 셰브첸코의 영입은 무리뉴 감독의 머리를 매우 아프게 했다. 첼시는 이미 램파드와 드록바라는 검증된 공격형 미드필더와 스트라이커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발락과 셰브첸코의 영입은 둘 중 하나가 벤치에 앉아있어야 함을 의미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자신이 후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이적을 요구할 수 있는, 확고한 주전급 선수들이었다.
결국, 무리뉴 감독은 지난 시즌 '막강 첼시'의 포메이션인 4-3-3을 버렸다. 무리뉴 감독은 지난 시즌 대활약한 로벤, 더프, 조 콜 등의 윙 플레이어를 포기하고 중앙을 두텁게 하는 전술을 채택한 것이다. 이 전술은 셰브첸코와 드록바, 발락과 램파드를 모두 기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로벤과 조 콜 등 첼시에 크게 기여한 윙 플레이어들이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긴 했지만.
부상 악몽 : 천재(天災)인가 인재(人災)인가?
첼시의 새로운 포메이션은 어색하긴 했지만 어쨌든 첼시에게 승리를 가져다주었다. 셰브첸코와 발락이 적응에 어려움을 겪긴 했지만 드록바와 에시앙이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주며 팀에게 계속 승리를 안겨다주었다. 체흐와 쿠디치니 골키퍼의 연이은 부상도 첼시의 경기력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듯 보였다.
진짜 문제는 존 테리의 부상이었다. 존 테리가 허리 부상으로 빠지기 전까지 첼시는 이번 시즌 2점 이상 실점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테리가 빠지자 첼시는 리그 4경기 연속 2실점을 하며 레딩, 풀럼 등에 발목을 잡혔다. 테리가 없는 12월과 1월 사이 첼시는 승점 쌓기에 실패하며 라이벌 맨유의 독주를 허용하고 말았다.
감독에게 선수 부상은 어쩔 수 없는 '천재(天災)'이다. 그러나 첼시의 경우는 달랐다. 우선 존 테리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불라루즈의 경우 프리미어쉽 적응에 완전 실패하며 '믿을 수 없는 선수'로 분류되었다. 불라루즈는 첼시의 우승 여부를 결정하는 아스날전에 출장하였으나 전반 43분 퇴장당하면서 팀의 우승 가도에도 찬 물을 끼얹었다.
갈라스 대신 애슐리 콜을 영입한 것 역시 결국 '테리 공백'을 막지 못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갈라스는 중앙수비와 윙백을 모두 소화할 수 있었던 반면, 애슐리 콜은 왼쪽 윙백만 전문적으로 보는 선수였기 때문이다. 더욱이 전문적인 윙포워드를 두지 않는 첼시의 전술상 윙백의 공격가담이 필요했지만, 애슐리 콜은 갈라스와 같은 공격가담을 하는 선수가 아니었다. 갈라스가 지난 시즌 알토란 같은 골을 터뜨리며 팀을 구한 데 비해, 애슐리 콜은 단 한 골도 터뜨리지 못했다.
새로운 준비 : 무리뉴냐, 아브라모비치냐?
첼시로서는 1000억 원을 투자하며 야심하게 준비했던 시즌이 허망하게 끝나가고 있다. 이제 첼시로서는 심기일전하여 다음 시즌을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 과연 첼시는 이번 시즌 드러난 문제점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그 방향은 무리뉴의 거취에 달려있다. 시즌 중 첼시가 부진에 빠지면서 무리뉴 경질설이 몇 차례 불거졌고, 쿼드러플 달성에 실패한 현재 무리뉴의 자리 역시 안전하지 못하다. 무리뉴 감독과 불화를 겪고 있는 아브라모비치 구단주로서는 무리뉴를 경질할 수 있는 충분한 명분을 갖게 되었다.
만약 무리뉴가 떠나고 새로운 감독이 부임한다면, 이번 시즌 새로이 영입된 선수들이 잔류한 상황에서 팀이 재정비될 확률이 높다. 아브라모비치 구단주는 자신에게 순응적인 감독을 원하며, 셰브첸코 등 자신이 원하는 선수들을 계속 첼시에서 보고 싶어한다. 신임 첼시 감독은 셰브첸코와 발락이 중심이 되는 팀으로 새롭게 리빌딩을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시즌 첼시의 실패는 대부분 무리뉴가 원하지 않는 이적으로 인한 것이며, 무리뉴가 경질될 경우 존 테리, 램파드와 같은 선수들이 그를 따라 팀을 떠날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무리뉴와 아브라모비치가 극적으로 화해하고 다음 시즌을 준비할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셰브첸코는 팀을 떠날 것이 확실시되며, 좀 더 실속있고 빠른 선수들을 중심으로 '무리뉴 스타일'의 첼시가 재탄생할 것으로 보인다.
첼시의 험난한 한 시즌이 끝나가고 있다. 과연 다음 시즌 우리는 어떤 첼시를 보게 될지, 또 누가 첼시의 유니폼을 입고 쿼드러플의 꿈에 도전할지, 시즌 막바지에 다시 가슴이 설레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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