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이슬 기자] 지주연이 독립운동가 석주 이상룡의 생가에 방문했다.
15일 방송된 MBN '아는척쌀롱-스라소니 아카데미'에서는 지주연이 독립운동가 석주 이상룡의 생가에 찾아 역사를 돌아봤다.
이날 방송에서 지주연은 "4월은 특별히 기억해야 하는 달"이라며 '99칸 대저택 미스터리'에 대해 입을 열었다. 지주연은 "우리나라 대한민국 상해 임시정부가 수립된 날이 4월 11일이다"라며 광복의 순간까지 26년간 독립운동의 구심점을 했던 임시정부를 설명했다.
지주연은 '99칸 대저택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경상북도 안동을 찾았다. 지주연은 "제가 역사에 대해 조금 알아서 저보다 훨씬 많이 아시는 분을 모셨다"라며 역사학 교수 홍성화를 소개했다.
허름한 굴다리를 지나 한옥 대저택 임청각에 간 두 사람은 초대 국무령 이상룡 생가를 방문했다. 김소영은 국무령을 지금의 국무총리 수상이라고 쉽게 정의했다.
민간에서는 100칸 이상은 사용하지 못 했던 조선시대에 99칸 집은 굉장한 갑부의 집이었다. 하지만 임청각은 그 정도로 큰 규모의 집은 아니었다.
홍성화 교수는 철길 때문에 집이 다 잘려나갔다며 "이 곳에서는 이상룡을 필두로 11명의 독립운동가가 나왔다. 일제가 그 민족적 정기를 끊기 위해 여기에 철길을 놓았다"라고 밝혔다. 철길로 먼지, 소음, 진동 때문에 망가진 임청각을 조선총독부는 철도국 직원들의 숙소로 사용하며 무참히 훼손했다.
안동의 부유한 양만 가문이었던 이상룡 집안은 의병 활동까지 지원하며, 정신적 물직적 지주가 되었다. 또 1910년 국권이 침탈당하자 만주로 떠나며 "공자와 맹자는 국권을 다시 찾은 뒤에 읽어도 늦지 않다"라는 말을 남겼다.
떠나면서 아들 이준형을 시켜서 임청각을 팔며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며 당시 2천 원, 보통 살림집 20채의 비용을 모두 독립운동에 투자했다. 또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이상룡은 후학 양성에도 힘을 쓰며 나라 독립에 헌신했다.
김상중은 임청각 바로 앞에 생긴 철길을 보고 "그들은 우리에게 굉장한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라며 일제의 만행에 분노했다.
임청각 안에 있는 노비문서에는 파격적인 이야기가 숨겨져있었다. 만주로 떠나기 전 이상룡 일가는 노비 문서를 찢고 노비들을 해방시켰다. 해방된 노비들은 이상룡과 함께 만주로 떠나며 독립군이 되기로 선택했다.
이상룡은 1932년 독립을 보지 못하고 만주에서 순국했다. "죽으면 독립된 나라에서 묻어달라"는 유언에 45년 만에 독립된 조국의 땅으로 돌아왔다.
이상룡이 죽자 남은 가족들에게는 친일을 강요하는 세력이 다가왔다. 이에 아들 이준형은 독립 3년 전에 자결을 택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임청각의 종부 허은은 가족들과 함께 독립군을 도왔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지주연은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며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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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 기자 dew89428@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