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0.12.15 08:49 / 기사수정 2010.12.15 08:49
[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3관왕에 오르면서 전성기를 맞이했죠. 하지만, 그 이후로 슬럼프에 빠지면서 도하의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했습니다. 극심한 슬럼프가 계속되면서 베이징올림픽에도 출전하지 못했어요. 이번 광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다시 부활해 만족하고 있습니다"
한국 트랙 사이클의 간판 장선재(26, 대한지적공사)가 돌아왔다. 지난 11월 열린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장선재는 자신의 주 종목인 남자 4km 개인추발과 단체추발에서 2관왕에 올랐다. 2006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3관왕에 등극한 장선재는 26세의 나이에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5개나 획득했다.
"올해는 다른 대회를 포기하고 오로지 아시안게임에만 집중했습니다. 봄에 열린 아시아선수권과 국가대표 선발전, 그리고 아시안게임 전초전 격이었던 전국체전에만 출전했어요. 아시안게임을 대비해 정말 많이 준비해서 그런지 자신감이 넘쳤고 순위보다는 아시아 신기록을 세우는 것이 진정한 목표가 됐습니다"
베이징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한 아픔 날려버린 아시안게임 2연패
올림픽 출전의 좌절을 맛본 장선재는 끊임없는 훈련에 매진했다. 국내는 물론, 국제대회를 합해 1년에 출전할 수 있는 사이클 대회는 10개가 넘는다. 장선재는 이 대회 중, 상당수의 대회를 포기했다. 오로지 아시안게임에 전념하기 위해서였다.
지난해부터 재기에 성공한 장선재는 올 초에 열린 국가대표선발전에서 전 종목을 휩쓸었다. 그리고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열린 전국체전에서도 8연패에 성공했다. 끊임없는 훈련으로 자신감을 얻었고 남자 4km 개인추발에서 아시아신기록을 세우며 정상에 올랐다.
그 다음에 벌어진 단체추발도 우승을 차지했지만 아시안게임 3관왕 2연패의 꿈은 사라졌다.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메디슨 경기(두 선수가 2인 1조가 돼 시합을 펼치는 종목)는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메디슨은 중국이 상대적으로 약합니다. 그래서인지 이번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이 경기를 포함시키지 않았어요. 비록, 3관왕의 꿈은 사라졌지만 개인추발에서 아시아신기록을 세웠기 때문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22세의 어린나이에 도하아시안게임에서 3관왕에 올랐던 장선재는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5개나 획득했다. 처음에는 태극마크를 다는 것이 꿈이었지만 어느새 집안에 있는 아시안게임 금메달은 6개이다. 5개는 장선재가 딴 것이고 나머지 1개는 아버지인 장윤호(49, 국가대표 총감독, 대한지적공사 감독)가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에서 획득한 것이다.
사이클 국가대표 출신인 장윤호 감독은 아들인 장선재가 자신과 똑같은 길을 걷는 것을 반대했다. 사이클이 얼마나 힘든 운동인지를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영과 태권도를 하며 운동에 소질을 보인 어린 장선재는 자연스럽게 사이클을 타게 됐고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로 거듭났다.
"아버지의 반대가 워낙 심하셔서 사이클을 쉽게 접하지 못했어요. 수영과 태권도만 5년 정도 했는데 어느 날 아버지가 사이클을 타보라고 권해주셨죠.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아서인지 다른 어느 종목보다 사이클이 제게 적합했고 오늘까지 오게 됐습니다"
기술적인 훈련도 중요했지만 체력적인 부분을 강화한 점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도하아시안게임 전까지는 체력훈련에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인 장윤호 감독의 조언으로 체력훈련에 60~70%를 투자하고 나머지는 사이클 훈련에 전념했다.
"근력과 체력이 강해야 힘을 쓸 수 있죠. 외국 선수들은 기어를 무겁게 쓰는데 국내선수들은 가벼운 것을 선호합니다. 하지만, 힘과 체력이 좋아져서 무거운 기어를 쓰니 속력이 빨라졌고 아시아신기록을 세우게 됐어요"
강한 체력은 물론, 체지방을 없애기 위해 식이요법도 철저히 했다. 장선재는 "사이클 선수에게 라면은 꿈의 음식"이라고 강조했다.
"아시안게임이 끝난 뒤, 일주일동안 라면과 짬뽕, 그리고 햄버거만 먹었습니다. 평소에 워낙 접해보지 못한 음식이서 그런지 너무 먹고 싶었는데 일주일이 지나니 별로 입에 당기지 않더군요(웃음)"
결혼을 앞둔 예비 가장, '가족'을 위해 2014년까지 페달 밟는다
"원래는 이번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끝으로 태극마크를 반납하고 팀에만 전념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내년이면 한 가정의 가장이 된다는 사실에 더욱 책임감을 느끼게 됐죠. 우선은 2년 뒤에 열리는 런던올림픽 출전에 주력할 예정이고 그 다음은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이클의 장점은 선수생명이 길다는 점인데 지금이 저의 최전성기인 것 같아요"
국가대표가 되는 것이 목표였던 장선재의 꿈은 시간이 지날수록 공기가 들어가는 풍선처럼 커져갔다. 현재는 아버지가 획득한 금메달까지 합쳐서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10개 소장하는 것이 장선재의 꿈이다. 또한, 장선재는 지금까지 9번의 한국 신기록을 갱신해왔다. 한 번 더 갱신하면 홀로 10번의 한국 신기록을 세우게 된다.
그리고 버릴 수 없는 목표는 '올림픽'이다. 지금까지 한국 사이클이 올림픽에 출전해 메달을 획득한 적은 없었다. '백전노장' 조호성(36, 서울시청)이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4위에 올랐던 것이 한국 사이클이 기록한 최고의 성적이었다.
"트랙 사이클 최강 국가는 영국입니다. 그리고 호주도 막강하죠. 세계의 벽은 결코 쉽지 않지만 기록을 조금씩 줄여가고 있으니 분명 올림픽 메달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끝까지 도전해볼 생각입니다"
장선재는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에서 '마린보이' 박태환(21, 단국대)과 함께 '유이한' 3관왕이었다. 그러나 박태환을 환호하는 이들은 많았지만 장선재를 기억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비인기종목에서 활약하는 설움도 많았지만 장선재는 "그 와중에서도 관심을 보내준 이들에게 항상 감사하다"는 말을 남겼다.
아시안게임 2연패를 이룩한 장선재는 결혼식을 올린 뒤, 더욱 사이클에 매진할 예정이다. 사랑하는 예비 신부와 내년 7월에 탄생할 예정인 2세에게 부끄럽지 않은 남편과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다.
"2011년 1월 21일에 열리는 월드컵 대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대회에서 5위권 안에 들어야 2월 말에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할 수 있어요. 2014까지 선수생활을 계속해 아시안게임 3연패에도 도전할 생각입니다. 물론, 올림픽도 꼭 출전해야겠죠(웃음)"
[사진 = 장선재 (C) 엑스포츠뉴스 조영준 기자, Gettyimages/멀티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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