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17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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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되어가고 있다" 박철우 작심발언, 전체에 울리는 경종이다

기사입력 2021.02.19 05:50 / 기사수정 2021.02.19 02:08


[엑스포츠뉴스 안산, 조은혜 기자] "가라앉혔던, 간신히 가라앉혔던 흙탕물 같은 것들이, 모래가 다 가라앉아 있는데 그걸 누가 와서 막대기로 젓는 느낌. 그래서 전 되게 뿌예진 느낌. 진정으로 변하셨고, 사과하셨다면 이런 감정이 남아 있었을까요? 좋은 지도자가 되셨다면 이런 감정이 남아 있을까요?" 

작심을 하고 인터뷰실에 들어온 박철우의 말투는 덤덤했다. 격앙되지 않았고, 감정에 호소하는 일도 없었다. 차분하게, 하지만 막힘 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말들을 꺼냈다. 12년 동안 속으로만 곱씹고 다시 삼키길 반복했을 이야기였다.

2009년 9월 17일 태릉선수촌, 아시아남자배구선수권대회를 준비하던 박철우는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상렬 당시 코치에게 폭행을 당했다. 이상렬 코치는 이 일로 무기한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지만 2년 만에 한국배구연맹 경기운영위원으로 복귀했고, 경기대 감독과 해설위원을 거친 뒤 2020년 KB손해보험 스타즈 사령탑에 올랐다. 그렇게 박철우는 자신이 가장 강해야 할 공간에서, 자신에게 씻지 못할 상처를 남긴 사람과 마주해야 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만날 수밖에 없는 이 상황 자체가 부조리였다. 박철우는 "그분이 감독이 되셨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도 너무 힘들었는데, 경기장에서 마주칠 때마다 정말로,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박철우는 "그래도 참고 조용히 지내고 싶었다"고 했지만, 결국 돌아보고 싶지 않은 기억을 떠올려야 했다. 최근 배구계 학교폭력 이슈로 이상렬 감독에게도 관련 질문이 들어오면서 이 감독은 '경험자'라는 단어를 써 답변했다. 박철우는 "기사를 보고 나니까 종일 손이 떨리더라. '아, 이건 아니다' 생각이 들었다"고 얘기했다. 박철우 입장에서는 '피가 거꾸로 솟는다'는 표현도 부족할지 몰랐다.

"이미 고등학교 때부터 유명하신 분이었다. 0-2로 지고 있으면 얼굴이 붉어져서 나오는 선수들이 허다했다. 그게 다 내 친구고, 동기들이었다. 몇 명은 기절한 선수도 있었고, 고막이 나간 선수도 있었다. 근데 그게 과연 한 번의 실수, 한 번의 감정에 의해서였을까. 말이 안 되는 소리인 것 같다. 누군가 그러더라. 맞을 짓 했으니까 맞았지. 그럼 모든 맞은 선수들이 맞을 짓을 한 건가. '사랑의 매'도 어느 정도여야 한다. 인터뷰에서 '내가 해봤다' 식으로 말하는 건 말이 안 된다."

박철우는 2009년 사건 당시 이상렬 코치에 대한 형사고소를 했다 취하했다. 그는 "그 일이 있었을 때 나도 고소를 취하했고, 정말 반성하고 좋은 분이 되시길 기대했다. 근데 선수들에게서 '박철우가 아니었으면 넌 처맞았어' 이런 말이 들려오고, 주먹으로 못 때리니 모자로 때렸다. 대학팀에서도 그런 얘기를 하셨고, 불과 몇 년 전에도 들었다"며 발언을 하는 것에 대해 "정말 이렇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 안 좋은 이미지가 될 수도 있고, 어떨지 모르겠지만 정면돌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모 선수가 그 얘기를 해주더라. 더 힘들어지면 나한테 힘이 되어주겠다고." 다른 피해 사실들에 대한 시사였다. 박철우는 "나는 아무것도 원한 적이 없다. 사과를 바라지 않는다. 처벌을 원하지도 않았다. 근데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발언을 하고 싶었던 거다. 정당화가 되는 것처럼, 자신을 포장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못다 한 이야기를 다 하라는 말에 박철우는 "첫째 아이도 이미 이런 일에 대해 알고 있다"고 말하며 "더 강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왔다. 숨지 않고, 강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인터뷰를 했다"고 덧붙였다.

개인과 개인의 이야기인 듯한 이 사무치는 말들은 아직도 폭력이 용인되고, 정당화되는 스포츠계 전체에 대한 경종이었다. 박철우는 폭로를 하면서도 "제일 미안한 건 순위 경쟁을 하고 있는 KB손해보험 선수들"이라고 말했다. 2009년에도 후배들을 위해, 실상을 알리려고 기자회견을 열었던 박철우였다. 그때와 지금은 과연 얼마나 달라졌을까. '달라져야 한다' 호소한 수많은 목소리가 잊혔다. "프로배구가 이런 식으로 오르내리는 것이 싫다"고 말하는 박철우의 애정이, "이번에 뿌리 뽑혀야 한다"고 말하는 박철우의 용기가 이번만큼은 헛되지 않아야 한다.

eunhwe@xportsnews.com / 사진=엑스포츠뉴스DB

조은혜 기자 eunhwe@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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