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0.11.25 07:57 / 기사수정 2010.11.25 07:57
[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신치용 감독이 이끄는 한국남자배구대표팀이 '숙적' 일본에 충격적인 역전패를 당했다. 적어도 4세트까지의 흐름만 보면 당연히 이길 것 같던 게임이라 그 충격은 더욱 컸다.
특히, '돌도사' 석진욱(34, 삼성화재)이 무릎 부상으로 물러난 뒤, 순식간에 당한 패배라 아쉬움이 더욱 컸다.
남자배구대표팀은 23일 저녁, 중국 광저우 광야오체육관에서 열린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남자배구 준결승전에서 일본에게 2-3(27-25, 25-21, 19-25, 20-25, 12-15)으로 패했다. 지난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과 2006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2연패를 달성한 남자배구는 3연패 도전에 실패했다.
한국이 광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을 위해 가장 경계할 팀은 일본이 아닌 이란으로 꼽혔다. 힘과 높이를 자랑하는 이란은 유럽식 배구를 추구하는 팀이다. 높이와 블로킹에서 우위에 있는 일본이 한결 쉬운 상대로 여겨졌다.
이번 대회 8강 라운드에서 처음으로 만난 일본을 한국은 3-1로 꺾었다. 무패행진으로 준결승전에 진출했지만 가장 중요한 고비처에서 일본의 벽을 넘지 못했다.
한국 배구의 과제는 석진욱과 신영수의 '차이점'
대표팀의 맏형으로 출전한 석진욱은 팀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기량이 뛰어난 선수들은 수비에 전념하지 않고 공격에만 열중하는 것이 한국배구의 현실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수비가 안 되는 '반쪽 선수'들이 늘어나고 서브리시브에 능한 레프트 공격수들은 보기 힘들어지고 있다.
석진욱은 국내에서 서브리시브와 기본기가 가장 탄탄한 선수로 손꼽힌다. 국내 정상의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는 삼성화재의 힘은 석전욱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장신의 공격수가 즐비한 대표팀에서 가장 필요한 존재는 서브리시브와 궂은일을 도맡아 줄 수 있는 '살림꾼'이었다. 34세의 노장인 석진욱이 태극마크를 다시 달고 이번 대회에 출전한 점은 이러한 선수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석진욱을 제외한 레프트 공격수인 문성민(현대캐피탈), 김요한(LIG손해보험), 그리고 신영수(대한항공) 등은 모두 서브리시브가 좋지 못하다. 석진욱과 리베로인 여오현(31, 삼성화재)이 없을 경우, 한국 팀의 리시브는 매우 위태롭게 변한다.
이러한 우려는 일본과의 준결승전에서 극명하게 나타났다. 리시브가 안정되게 이루어진 한국은 빠르지는 않지만 다양한 세트플레이로 일본을 공략했다. 여기에 높이와 블로킹에서 우위를 보인 한국은 1,2세트를 연속적으로 따내며 결승 진출에 단 한 세트만 남겨뒀다.
그러나 4세트 중반, 수비를 하던 석진욱이 무릎을 붙잡고 고통스러워하는 장면이 나타났다. 이미 고질적인 무릎 부상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했다. 석진욱 대신 투입된 신영수(28, 대한항공)는 몸이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급하게 코트에 들어섰다. 코트에 들어서자마자 서브리시브 범실 2개를 범한 신영수는 두 번의 공격을 시도했지만 모두 일본의 블로킹에 가로막혔다. 여기에 서브범실까지 더해 혼자서 무려 5점을 헌납했다.
197cm의 좋은 신장을 지닌 신영수는 공격은 좋지만 수비와 기본기에서 늘 문제점이 나타났다. 수비에는 열중해 본적이 없는 라이트 공격수 출신인 그는 중요한 고비처에서 한국의 '구멍'이 되고 말았다.
'제2의 석진욱'이 나타나지 않는 한, 한국배구의 미래는 어둡다
석진욱이 코트에서 물러나자 분위기는 급반전됐다. 가장 중요한 4세트에 투입됐던 신영수는 단 한 점도 올리지 못하고 일본에 5점을 내줬다. 그러나 결코, 신영수 때문에 패한 경기는 아니었다. 신장은 작아도 한국보다 좋은 기본기와 수비 능력을 지니고 있었던 일본은 시간이 흐르면서 더욱 강해지고 있었다.
위기관리 능력에서 일본은 한국보다 한 수 위의 전력을 갖추고 있었다. 서브리시브를 전적으로 석진욱에 의존하고 있던 한국은 기복이 심했다. 그리고 일본의 주공격수인 시미즈 구니히로(파나소닉)과 '주포' 대결을 펼친 박철우(삼성화재)와 문성민(현대캐피탈)도 결정적인 상황에서 득점을 올리지 못했다.
190cm 후반대의 높은 신장을 지난 한국 공격수들은 180cm대의 일본 공격수와의 경쟁에서 패하고 말았다. 단신의 약점을 빠른 발과 점프력으로 대체하고 있던 일본은 시간이 흐르면서 전세를 역전시키기 시작했다.
석진욱은 187cm의 단신이었지만 탄탄한 기본기와 끈질긴 수비력으로 '배구 도사'란 호칭을 얻었다. 이러한 선수가 석진욱 단 한명 뿐이었던 한국은 끝내 무너지고 말았다.
이번 대회를 통해 한국은 아시안게임 3연패에 실패했지만 값진 교훈도 얻었다. '제2의 석진욱'이 꾸준히 배출되지 않는다면 한국배구의 미래는 어둡다는 점이다.
특정 선수가 물러난 뒤, 팀 자체가 급격히 무너졌다는 점은 많은 부분을 시사한다. 선수들의 장신화에 집착하지 않고 기본기 훈련에 충실해야 한다는 점이 이번 아시안게임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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