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노트북]에서는 그 동안 인터뷰 현장에서 만났던 배우들과의 대화 중 기사에 더 자세히 담지 못해 아쉬웠던, 하지만 기억 속에 쭉 남아있던 한 마디를 노트북 속 메모장에서 다시 꺼내 되짚어봅니다. [편집자주]
[엑스포츠뉴스 김유진 기자]
"(연예계 생활의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했을까요, 제가?(웃음)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다 별일이 아닌데…. 그 때만큼은 절체절명이라는 생각이 들잖아요. 저는 그냥, 스스로 견뎠던 것 같아요. 술로 치유할 수 있는 건 절대 아니고, 위험하기도 하고요. 저는 일로 치유했던 것 같아요." (2019.11.25 '나를 찾아줘' 인터뷰 중)
'버티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다'라는 이야기가 있죠.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적용될 수 있는 말이지만, 그만큼 어떤 하나의 일을 오랫동안 꾸준히 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뜻으로도 읽힙니다.
배우 이영애는 특히나 다사다난하기로 유명한 연예계에서 31년을 꾸준히 버텨내고 있습니다. 또 그렇게 버티면서 최고의 자리까지 변함없이 지키고 있죠. 1990년 광고 모델로 데뷔해 어느덧 이만큼의 시간이 흘렀지만, '이영애'라는 이름은 그 자체만으로도 여전히 많은 이들의 관심을 얻고, 또 사랑받는 존재입니다.
2019년 11월, 이영애는 14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이었던 '나를 찾아줘'로 관객들을 만났습니다. 작품 활동만 놓고 봐도 2017년 방송된 SBS '사임당 빛의 일기' 이후 3년 여 만이었기에 이영애를 향한 반가움이 더욱 컸던 때였죠.
이영애와 만난 때는 10월과 11월, 故설리와 故구하라의 사망 소식이 들리며 안타까움을 자아냈던 시간이었습니다.
인터뷰 전날 게스트로 출연한 예능 '집사부일체'를 보던 중 뉴스로 구하라의 소식을 접했다고 얘기한 이영애는 작품 이야기에 이어 자연스럽게 후배들을 향한 애도의 마음을 전하며 "너무 마음이 아팠다"고 말을 이었습니다.
"너무 일찍 데뷔를 하면, 금방 흔들릴 수가 있잖아요"라고 다시 입을 연 이영애는 "저는 연예인들을 '풍선 같은 존재'라고 표현해요. 사람들이 '멋있다, 멋있다' 하면서 하늘로 올려 보내잖아요? 아래에서는 그 끈을 잡고 있어야 하는데, 본인의 존재감을 스스로 느끼지 못할 나이에 그렇게 하늘에 띄워져만 있게 돼요. 그러다, 아무것도 아닌 바늘 하나에 터져버릴 수 있는 존재가 되는 사람이 저희들인 것이죠"라고 담담하게 얘기했습니다.
20대 초반 연예계 생활을 시작했던 이영애는 "아직 스스로 추스를 수 있는 마음이 정립이 안 됐을 때인데,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나오는 스트레스를 피할 수는 없잖아요. 특히 연예계는 더 힘들기 때문에…. 스스로를 곧추세울 수 있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아요"라고 조심스레 조언을 전했습니다.
자신은 그들처럼 어린 나이에 데뷔하지는 않았지만, 사회생활의 시작이 이 곳이었기에 이른바 '질풍노도의 시기'를 이 때 다시 겪게 됐다고도 덧붙였죠.
30년을 버틸 수 있던 힘은 의외로 단순한 곳에 있었습니다. '일에서 받은 힘듦은 일로 푼다'는 마음이었죠.
이영애는 '일을 하며 힘든 시간들이 있었을 때 어떻게 버텼냐'는 물음에 특유의 온화한 미소와 함께 "글쎄요. 어떻게 극복을 했을까요, 제가?"라고 취재진에게 되물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다 별일이 아닌데…. 그 때만큼은 절체절명이라는 생각이 들잖아요. 저는 그냥, 스스로 견뎠던 것 같아요. 술로 치유할 수 있는 건 절대 아니고, 위험하기도 하고요. 저는 오히려 일로 치유했던 것 같아요."
30년 동안 보고 듣고 직접 경험하며 축적해왔던 시간들을 어떻게 다듬어나가야 할지 꾸준히 고민했던 결과물이었습니다.
이영애는 "추천하고 싶은 것은, 많이 걸으시라고 얘기하고 싶어요"라며 결혼 후 아이들을 키우며 8년 여간 생활했던 경기도 양평 문호리에서의 전원생활을 떠올렸습니다. "자연으로 치유를 많이 했어요. 명상이라고까지 하기엔 무거울 수 있지만, 걸으면서 생각을 비워내고, 다시 재부팅할 수 있더라고요. 그게 스트레스 해소법이었던 것 같아요"라며 차분하게 자신의 생각을 전했죠.
힘들었을 수 있었던 모든 시간들을 일일이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또박또박 자신의 생각을 전해주는 이영애에게서 30년을 버텨왔던 조용한 내공이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이 직업이 제게는 행운이에요. 제 기준에서는 참 만족스럽고 감사한 일이죠"라고 되짚은 이영애는 2011년 얻은 쌍둥이 딸이 연예인을 희망하면 지원할 것이냐는 물음에 "제 입장에서는 추천할만한 직업이지만, 가장 중요한건 본인이 좋아해야하니까요. 견딜 수 있어야 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아이의 생각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라며 웃음 지었습니다.
다사다난했던 2020년이 마무리되고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됐습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코로나19 바이러스 여파로 인해 예년 같지 않은 연말연시를 보내며 모두 올해는 지난해보다 더 좋기를, 나아지기를 저마다 바라고 있겠죠.
무심해 보이는 말이지만, 때로는 이영애가 말한 대로 '지나고 나면 별 것 아니다'라는 마음으로 생각을 비워내는 것도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다 싶습니다. 올 한 해는 코로나19 종식부터, 궂긴 소식보다는 기쁘고 행복한 소식을 더 많이 듣게 되길 가장 많이 바라게 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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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 기자 slowlife@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