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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오파트라의 남자들, 남동생·카이사르·안토니우스 (설민석의 세계사) [종합]

기사입력 2020.12.20 00:29 / 기사수정 2020.12.20 00:29


[엑스포츠뉴스 김현정 기자]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가 클레오파트라를 파헤쳤다.

19일 방송된 tvN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는 6000년 역사를 지닌 고대 문명의 발상지 이집트와 클레오파트라에 대한 강연이 펼쳐졌다. 

클레오파트라는 이집트를 대강국으로 만든 천재 지략가, 마지막 파라오, 이집트뿐만 아니라 고대 로마의 운명을 뒤흔든 인물이다. 설민석은 "이 사람의 코가 조금이라도 낮았다면 세계의 역사가 달라졌을 거다"라는 말을 언급했다.

한국 생활 8년차인 이집트인 새미 라샤드는 "이집트 클레오파트라들 중에 제일 유명하다. 7명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설민석은 "고대 로마인들은 미친 여왕이라고 했다. 구역질나는 더러운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발작을 일으켰다. 근친상간으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후예, 이 불경한여자는 두꺼운 화장에 가려진 요부"라고 설명했다.

클레오파트라는 젊음을 부활시키는 매력적인 여자로 불렸다. 동전 속 클레오파트라의 실제 모습이 공개됐다. 이혜성, 은지원, 존박 등은 예상과 다른 얼굴에 술렁였다. 알베르토는 "생각보다 안 예쁘다"라고 했다. 새미는 "동전으로 외모를 알 수 없다"라고 해명했다. 이혜성은 "코가 그렇게 높은 것 같지는 않다"라며 의아해했다.


클레오파트라는 뛰어난 지성을 지녔다. 어릴 때부터 9개 국어를 했다. 설민석은 "알렉산더 대왕은 세계 곳곳 식민지에 자기 이름을 딴 도시를 세웠다. 알렉산드리에라는 거대한 도서관을 만들었는데 70만권이 있었다. 어린 클레오파트라의 놀이터였다. 책을 통해 지식을 얻고 학자들과 토론했다"라며 환경을 언급했다.

클레오파트라는 세 남자를 손아귀에 쥐고 역사를 바꿨다.

첫번째 남자는 남동생 프톨레마이오스 13세다. 프톨레마이오스 13세가 10살 때 클레오파트라는 18살이었다.  당시 이집트의 법도는 여자가 파라오가 되려면 남녀 공동 통치만 가능했다.

설민석은 "자기들의 권력을 공고히 하려고 근친혼을 한 거다. 권력 앞에 형제는 남보다 못하다. 기근이 들어 곡물 수확이 안 되고 화폐 가치는 떨어졌다. 경제관념이 얼마나 뛰어나냐면 떨어진 가치를 더 떨어트렸다. 수출을 늘리고 시민들에게 국채를 발행한다. 시민들의 돈이 중앙정부로 돌아오고 행정적인 일을 할 수 있었다"라고 말해 감탄을 자아냈다.

이어 "클레오파트라의 명성이 올라갈수록 프톨레마이오스 13세는 불안했다. 누나가 예쁘고 인기가 많으니 염문설을 가짜 뉴스로 뿌렸다. 로마의 고위 관리와 정을 통했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적국 로마의 관리와 여신이 바람이 났다? 이집트 백성들이 분노해 내쫓았다. 하루아침에 여신 파라오에서 도망자가 됐다. 위기에 좌절하지 않고 칼을 갈았다. 첩자를 심고 귀를 귀울였다. 이때 클레오파트라의 두번째 남자가 이집트로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라고 덧붙였다.

클레오파트라의 두번째 남자는 유럽을 평정한 로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시저)다. 1년을 365일로 만든 사람이다.

설민석은 "로마는 공화정이었다. 3명의 군부가 이끄는 삼두정치였다. 짱이 폼페이우스였다. 스파르타쿠스의 난을 진압한 사람이다. 카이사르는 떠오르는 신성이다. 카이사르가 폼페이우스를 넘기 위해 갈리아 북방 원정을 떠났다. 9년을 전쟁하고 차지한다. 끈끈했지만 폼페이우스가 어느덧 위기의식을 느꼈다. 로마 귀환시 무장 해제를 하고 들어오라고 했고 카이사르는 함정임을 알았다. 군사를 모아 로마로 갔다.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말이 여기에서 나왔다. 카이사르는 루비콘강을 건넜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말도 여기에서 나왔다. 폼페이우스는 이집트로 도주했고 카이사르도 따라갔다. 오른팔인 안토니우스에게 로마를 맡겨놓고 잡으러 간 거다. 클레오파트라는 숨어 있었다"라고 강의했다.

이어 "프톨레마이오스 13세는 폼페이우스를 잡아 카이사르에게 넘겨주면 신임을 얻겠다고 생각했는데 폼페이우스의 목을 치는 경망스러운 행동을 한다. 엄청나게 오열했다고 한다. 은지원과 문희준 같은 관계인 거다. 애증이 있다. 폼페이우스의 승복을 받아내려고 했는데 네가 뭔데 목을 잘라 보내? 이건 거다. 클레오파트라는 이때다 싶어 카이사르를 이용하려고 결심했다. 논리, 눈빛, 아우라, 음성에 심장이 녹았다. 클레오파트라는 22세, 카이사르는 51세였다. 둘은 건널 수 없는 루비콘강을 건넜다. 프톨레마이오스는 분노해서 왕관을 집어 던지고 오열하며 뛰쳐나갔다. 클레오파트라가 동전을 만들어서 다 뿌렸다. 열받은 프톨레마이오스 13세가 군대를 모아 아내를 치려했다. 카이사르의 군대가 승리하고 프톨레마이오스 13세는 시체로 발견됐다"라고 이어갔다.

설민석은 "카이사르는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라며 로마로 돌아갔다. 독재관을 해 보니 너무 좋은 거다. 원래는 6개월인데 10년을 하겠다고 했다. 클레오파트라가 아이를 가졌다는 서신이 왔다. 아들을 낳았다. 로마와 이집트 다 난리가 났다. 독재관의 아들이 후계자가 되면 로마는 이집트의 속국이 될까 우려했다. 이집트 입장에서는 여신이 적국인 로마의 남자와 아이를 낳은 거니 난리가 났다. 클레오파트라는 아들 이름을 프톨레마이오스 카이사르라고 지었다. 줄여서 카이사리온(작은 카이사르)으로 불렀다. 로마로 떠나기 전 신전에 자신과 아들을 새기고 '로마와 이집트는 우리의 것'이라며 로마로 간다"고 했다. 

카이사르는 클레오파트라의 동상을 세웠는데 그것도 비너스 여신 동상 옆에 세웠다. 살아있는 이집트 여왕을 여신으로 칭송하며 비너스 동상 옆에 세워 로마 사람들이 분개했다. 원로원에서는 음탕한 동방의 왕가라고 한다.

카이사르는 독재관을 10년이 아닌 종신 독재관을 선포했다. 분노한 원로원에서 음모를 꾸몄다. 카이사르가 점을 봤는데 3월 15일을 조심하라고 했다. 점쟁이의 경고를 무시했고  한 젊은이가 쪽지를 건넸다. 원로원 의원들이 암살하려고 그를 기다리고 있다고 적혀 있었는데 대수롭지 않게 여겨 보지 않았다. 원로원에 거의 다 와 점쟁이를 또 봤다. 점쟁이에게 3월 15일인데 멀쩡하다고 했고 점쟁이는 "아직 멀쩡하시네요"라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이후 원로원 의원들 모두 카이사르에게 칼을 휘둘렀다. 1대 100으로 싸우다 지칠 무렵 그는 왼팔 브루투스의 칼에 찔렸다. 이어 23번의 칼에 맞고 죽었다.

이혜성은 "어딜 가나 독재자의 최후는 비슷한 것 같다"라며 고개를 끄떡였다.

카이사르의 유언장이 있었다. 클레오파트라는 카이사리온이 후계자가 될 것을 확신했다. 하지만 안토니우스가 있었다. 로마인들의 많은 사랑을 받은 권력자 안토니우스는 자신의 이름이 유언장에 새겨져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유언장에는 옥타비아누스라고 써 있었다. 카이사르의 누나의 손자다. 당시 나이가 18세였다. 클레오파트라는 배신감에 충격을 받고 이집트로 돌아갔다.

이후 클레오파트라는 안토니우스를 성대하게 맞이했다.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의 배짱에 반했고 둘은 사랑에 빠졌다. 카이사르처럼 안토니우스는 이집트에 눌러앉았다. 전쟁은 안 하고 파티를 즐겼다.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에게 로마의 책 20만권을 갖다 바쳤다.

클레오파트라는 안토니우스의 쌍둥이를 낳았다. 안토니우스는 원정을 가 동방 지역을 차지했고 클레오파트라에게 바쳤다. 옥타비아누스는 이집트의 지원을 받는 안토니우스의 행보를 불안해했고 전쟁이 벌어졌다. 바로 악티움 해전이다. 클레오파트라는 전략적 후퇴를 택하고 안토니우스도 도망갔다. 돌아와 이집트에서 군대를 모으려 했는데 병사들이 다 도망갔다. 두 사람은 완전히 위기에 빠졌는데 옥타비아누스에게 "내 가족을 지킬 수 있다면 장군직을 내려놓고 평민으로 살겠다. 제발 그만해 달라"라며 협상했다. 그러나 옥타비아누스는 "클레오파트라는 파라오에서 내려와라. 안토니우스는 처형하겠다. 받아들이면 전쟁을 계속하겠다"라고 말했다. 

이때 클레오파트라가 갑자기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안토니우스는 자신의 배를 칼로 찔렀다. 그런데 그때 헛소문이라는 걸 알았다. 클레오파트라는 죽음을 앞둔 안토니우스를 보고 달려왔다.

설민석은 "자신을 정말 사랑하는지 시험을 해보려고 죽었다고 거짓말을 했다는 설이 있다. 죄책감 때문에 너무 슬퍼 무릎을 꿇고 자신의 얼굴로 피를 닦았다. 오열을 하면서 피멍이 들도록 자신의 가슴을 쳤다. 죽어가던 안토니우스는 마지막 유언으로 목숨을 부지하라고 말하고 클레오파트라의 품에서 숨을 거뒀다. 클레오파트라도 39세의 나이에 뱀이 자기 몸을 물게 해 떠났다. 어떻게 죽었는지 지금도 모르지만 가장 정실로 여기는 이야기다"라고 밝혔다.

khj3330@xportsnews.com / 사진= tvN 방송화면

김현정 기자 khj3330@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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