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7.03.27 05:07 / 기사수정 2007.03.27 05:07
[엑스포츠뉴스=서영원 기자] 최근 일본 열도가 귀화한 한 축구 선수로 뜨겁다. 바로 그 주인공은 22살의 청년 이충성.그는 일본 올림픽 대표팀의 첫 예선 경기인 말레이시아 전에서 결승골을 기록하며 세간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지난달 9일 일본에 귀화한 다음날, 바로 올림픽팀 명단에 이름을 올렸던 이충성은 일본 축구의 엘리트-코스를 이어나가고 있는 기대주다. 일본 현지에서도 앞으로 꾸준한 활약을 이어나가면 A대표팀 발탁은 시간문제로 보고 있을 정도다.
엘리트 코스를 밟은 인재
재일교포 4세, 도쿄조선제9소급학교 졸업, 요코가와 15세팀 입단, FC도쿄 18세팀 입단. 일본 귀화, 올림픽대표팀 발탁 지금까지 걸어온 이충성의 약력이다.
특히 이충성은 유스시스템으로 유명한 FC도쿄시절에 2004년 레알마드리드 아시아투어에도 출전한 바있는 '기대주'였다. 이러한 활약상이 한국에도 알려져 2005년에는 한국청소년대표팀에서 선발되는 행운을 얻었다.
하지만, 당시 청소년 팀에는 양동현, 김승용,박주영, 신영록등 팽팽한 경쟁이 이뤄지고 있었다. 게다가 한국어 한마디 할줄 모르는 이충성에게 '한국대표팀'이라는 명함은 그다지 끌리지 않았다. 일본으로 돌아와 가시와로 자리를 옮기고 그는 본격적인 축구 인생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애매한 한국 국적보단 '그동안 살아온 일본으로 귀화'
한국말을 하지 못하는 그는 그렇게 새 소속팀 가시와에서 전념했지만, 문제가 생겼다. J리그 제한' 3명 보유 3명 출전' 규정으로는 오랫동안 살아남기 힘들어 보였기 때문. 당연히 구단 입장은 비슷한 돈으로 브라질 용병하나 건져오는 게 당연지사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낳아주고 길러준' 나라 일본에서 한국 국적은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었다.
어쩌면 인생이 걸린 중대 사항을 그렇게 고민하던 그는 과감히 귀화라는 히든카드를 뽑아든다. 홍명보 대표팀 코치와도 면담해봤지만 "말 안 통하는 곳에서 축구시합을 해봤자 호흡도 안맞고 헛발질만 할 것" 이라는 의견을 밝히며 당당히 귀화를 선택했다.
그의 귀화 소식을 들은 일본 올림픽 대표팀 소리마치 감독은 바로 다음날 "리 타다나리(이충성의 일본명)는 내가 찾는 선수" 라고 말하며 바로 올림픽 팀에 합류시켰다. 그 뒤 이충성은 연습경기, 평가전을 통해 소리마치 감독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했고, 3월15일 말레이시아와의 원정 경기에서 결승골은 뽑은 후에는 "나를 인정해 준 우리 국민에게 보답하고 싶었다"며 일본을 '우리' 나라로 부를 수 있는 일본인으로 태어났다.
누가 이충성에게 돌을 던지랴
일본에는 많은 재일 한국인(한국-조총련 총괄)들이 살고 있다. 그 중 일부는 한국인임을 숨기고 일본인임을 자처하고 살고 있다. 일본 스포츠계에도 재일 한국인이 많다. 축구에서는 북한대표팀 리한재(히로시마)가 대표적이며 부산에서 활약하는 안영학도 실은 일본에서 성장한 케이스.
야구에서는 '일본야구 400승 신화' 김경언을 시작해서 O-L포의 O인 오가사와라 미치히로(요미우리), 개그 퍼포먼스로 유명한 모리모토히쵸리(니혼햄), 한신타이거즈의 산증인 가네모토도모야키, 일본야구대표팀 발탁을 거부한 사이토카즈미(소프트뱅크)까지 재일 한국인들이 활약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재일 한국인들이 그렇듯이 불이익을 받고 자랐거나 한국말을 아예 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 때문에 이충성과 같이 애매한 한국국적은 포기하는 게 났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우리가 이들에게 섭섭한 감정을 느껴선 안된다. 이들은 그저 일본에서 태어나고 일본에서 자란 '무늬만' 한국인인 일본인이기 때문이다. 이충성이 비록 재일교포 4세로서 일본이 남의 나라처럼 느낀다 해도 이미 조국에 그의 자리는 없었다. 그런 이충성에게 새 나라에서는 무운이 따르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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