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노트북]에서는 그 동안 인터뷰 현장에서 만났던 배우들과의 대화 중 기사에 더 자세히 담지 못해 아쉬웠던, 하지만 기억 속에 쭉 남아있던 한 마디를 노트북 속 메모장에서 다시 꺼내 되짚어봅니다. [편집자주]
[엑스포츠뉴스 김유진 기자]
"1년에 한 번 행복하면, 그 행복한 순간을 머릿속 가슴속에 두고 그걸 향해서 사는거죠, 그 나머지의 시간들을." (2015.07.24. '베테랑' 인터뷰 중)
배우 유아인은 올 한 해도 그야말로 쉴 틈 없이 일하고 있습니다. 6월 개봉한 영화 '#살아있다'는 코로나19 바이러스로 뒤숭숭했던 여름, 극장가에 활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흥행에도 성공했죠. 4개월 뒤인 10월에는 '소리도 없이'로 다시 관객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역할을 위해 15kg를 증량하고, 한 마디의 대사도 없지만 인물의 감정을 누구보다 생생히 표현해냈다는 극찬을 얻었죠.
올해만큼이나, 5년 전인 2015년은 '배우 유아인'이라는 이름이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됐던 시간이었습니다. 열여덟 살이던 2003년 데뷔 후 꾸준하게 차곡차곡 필모그래피를 더해왔던 시간. 30대의 시작이던 2015년, 유아인은 그 해에만 '베테랑'과 '사도' 두 편의 영화를 한 달 간격으로 내놓으며 각각 1341만 명, 624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 배우 반열에 올라섰고, '사도'로는 그 해 청룡영화상에서 남우주연상 트로피를 거머쥐기도 했습니다.
'베테랑'으로 유아인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던 때가 생각납니다. 목적이 뚜렷한 인터뷰라는 자리가 마냥 편하지만은 않겠지만, 적어도 '기자들과의 대화를 싫어하지는 않는구나'라는 첫인상이었죠. 거침없이 말하는 듯 하지만 곱씹어보면 어느 질문 하나에도 가볍게 답하지 않았던, 그리고 무엇보다 어떤 말이라 해도 잘 들어보려고 하는 모습에 질문을 하면서도 늘 긴장을 놓을 수 없었던 시간으로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인터뷰 말미, 영화 이야기를 지나 친한 동료들과 함께 꾸려가고 있는 문화공간 스튜디오 콘크리트에 대해 물었습니다. "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하면서 즐겁게 사는 것 같다. 행복하냐"고요. 물음을 던져놓고 순간 '아차!' 싶었습니다.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도 낯간지러워 물어보지 않는, 뜬구름 잡는 듯한 '행복하냐'는 물음이라니요. 아마 일로 유아인이라는 배우를 직접 만나기 이전, 학창시절부터 꽤 오랜 시간 TV나 영화로 '연예인 유아인'을 보며 호기심을 느끼고 또 가져왔던 여러 생각들이 '지금 행복하냐'라는 아주 추상적인 물음으로 그렇게 밑도 끝도 없이 나왔던 듯 합니다.
유아인의 답이 이어지기까지, 짧은 그 시간이 꽤 길게 느껴졌습니다. 이내 유아인은, 특유의 반달 눈웃음을 지어보이며 한 톤 올라간 목소리로 "대단히 즐겁지 않아요"라고 말했죠. "하고 싶은 일이고, 보람을 느끼는 일들을 하는 것이에요. 하고 싶은 일을 한다고 마냥 행복하진 않죠. 1년에 한 번 행복하면, 그 행복한 순간을 머릿속 가슴속에 두고 그걸 향해서 사는 거죠, 그 나머지의 시간들을. 연기를 하는 것도 마찬가지고요"라며, 추상적인 물음이었지만, 그는 자신만의 화법으로 또 그렇게 이야기를 풀어줬습니다.
코로나19라는 유례없는 일을 겪으며 '행복할 일이 더 줄어들었다'는 말에 반박할 수 없는 지금, 이 말이 유독 더 많이 떠오릅니다. 그가 말한 것처럼, 누구나 1년에 한두 번쯤은 행복한 순간들을 마음속에 품고 있을 것입니다. 지금이야말로, 비록 적더라도 그렇게 행복한 순간들을 만들고, 힘들고 화나는 때가 있을 때마다 그 때를 떠올리며 견뎌내야 하는 시기가 아닐까 싶고요. 아직 인터뷰로 조금 더 가까이에서 그를 만나본 적이 없다는 주위 동료나 후배들에게, 또 '행복하지 않다'는 고민을 토로하는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면서도 유아인의 이 말을 모범답안처럼 전하곤 했습니다.
유아인은 '그럼 어느 순간에 가장 행복하냐'는 말에 "아무 생각 없을 때"라고 특유의 소년미 넘치는 웃음으로 농담처럼 말을 던졌습니다. 이미 충분히 즐겁다면 다행이지만, 5년 전 이 말을 한 그도 그렇게 자신만의 행복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지금의 시간들을 보내고 있길, 조심스레 바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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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 기자 slowlife@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