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0.07.06 17:08 / 기사수정 2010.07.06 20:01
[엑스포츠뉴스=김경주 기자] 남아공 월드컵이 거의 막바지에 다다른 가운데 '인민 루니' 정대세의 국적에 대한 관심 또한 뜨거워졌다.
한국 국적을 가진 그가 북한의 국기가 달린 유니폼을 입고 흘러나오는 북한 국가에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두고 네티즌의 설왕설래도 이어졌다.
'자이니치'라는 이름으로 대변되는 축구선수들을 만나 '우리가 보지 못했던 우리 선수(리명옥 옮김, 왓북)'를 펴낸 신무광씨도 역시 재일교포 3세다.
누구보다 그들의 이야기를 잘 아는 저자는 일본과 한국, 더 나아가 북한까지 오가며 활약하는 재일교포 3세 선수들과 그들의 선배인 재일 축구인 얘기까지 빼곡히 적혀있다.
도쿄에서 태어나 모든 교육과정을 도쿄 내 민족학교에서 배우고 자란 저자는 국적은 한국이지만, 북한을 내 조국이라 배우며 자랐다.
민족학교에 다니는 대부분의 재일교포가 그렇듯 저자도 어려서부터 북한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축구는 조선의 국기'라는 말을 듣고, 66년 월드컵 8강은 '조선 축구의 빛나는 승리'라고 배운다.
2002한일월드컵을 취재하면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재일교포 선수들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 저자는 정대세를 비롯해, K-리그에서도 뛴 적이 있는 안영학, 박강조 등을 취재해 나갔다.
그가 취재한 8명의 재일교포 선수는 모두 '한국'이라는 뿌리를 잃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북한대표팀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느냐는 저자의 질문에 정대세는 "우문"이라고 대답한 뒤 "일본 대표로 뛴다면 '혼의 포효'가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재일교포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선수만 취재한 것은 아니다. 책의 말미에는 축구를 위해 재일의 삶 대신 일본인으로 귀화한 이충성에 대한 이야기도 실려있다.
이충성의 현재 이름은 '리 타다나리' 그는 축구를 위해 재일 대신 일본 국적을 선택했다. 하지만, 통명인 오야마 대신 성인 '이(리)'를 선택했다. 자신이 재일임을 잊지 않기 위함이다.
2004년 U-20 대표에 선발됐던 이충성은 다른 선수들의 선입견에 의해 쉽게 적응하지 못한 채 일본으로 돌아왔다. 당시 J리그에서 뛰던 이충성은 프로의 높은 벽과 함께 고국의 벽도 함께 느꼈고, 결국 귀화를 결심했다.
저자는 재일인 사이에서도 큰 충격이었던 이충성의 귀화를 두고 취재를 해야 하나 고민도 됐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새로운 삶이다"라는 말에 취재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아직도 자이니치라 불리는 재일교포들은 완벽한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채 살아가고 있다. 축구를 통해 세상에서 받는 설움을 풀고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재일교포들에게 희망을 주는 그들의 그라운드는 그래서 더 행복한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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