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0.06.24 09:24 / 기사수정 2010.06.24 09:24
[엑스포츠뉴스=박문수 기자] 우승 후보를 자청했던 '축구 종주국' 잉글랜드가 졸전 끝에 슬로베니아를 제압하며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잉글랜드는 23일 밤(한국시각) 넬슨 만델라 베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0 FIFA 남아프리카공화국(이하 남아공) 월드컵 C조 조별 예선 최종전에서 저메인 데포의 결승 득점에 힘입어 1-0으로 승리했다. 이로써 잉글랜드는 종료 직전 결승골로 알제리를 1-0으로 제압한 미국에 이어 조 2위로 16강에 진출했다.
이날 잉글랜드는 전반 초반부터 매서운 공격으로 슬로베니아를 압박했다. 지난 2경기에서 승점 2점을 획득하며 조별 예선 통과가 불투명했던 잉글랜드는 경기 초반부터 공격을 주도했다. 또한, 잉글랜드의 파비오 카펠로 감독은 선수들을 대거 전진 배치하며 공격 위주로 경기를 운영했다.
결국, 잉글랜드는 전반 23분 제임스 밀너가 오른쪽에서 올려준 크로스가 쇄도하던 저메인 데포의 발에 맞으며 득점에 성공했다.
지난 2경기에서 카펠로는 루니의 파트너로 에밀 헤스키를 내세웠다. 그러나 헤스키는 제공권 장악 이외에는 위협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며 데포에 자리를 내줬다. 카펠로의 선택은 탁월했다. 발 빠른 데포는 팀의 공격을 좀 더 역동적으로 바꿨으며 기동력에서 안 좋은 모습을 드러낸 잉글랜드에 속도를 불어넣었다.
데포 뿐 아니라 밀너의 활약도 돋보였다. 애스턴 빌라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뛰는 밀너는 이날 오른쪽 측면 미드필더로 경기에 나섰다. 이날 밀러는 자신의 날카로운 킥력을 활용해 데포의 득점을 도우며 팀을 살렸다. 이후에도 몇 차례 위협적인 크로스로 팀의 오른쪽을 책임졌다.
그럼에도, 잉글랜드가 보여준 모습은 이게 다였다. 그들은 경기를 지배했지만, 위협은 가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상대에게 역습을 허용하며 위기에 몰렸다. 특유의 뻥 축구는 여전했으며 중원에서의 압박도 전혀 없었다. 만일 상대가 좀 더 날카롭고 안정적인 팀이었다면 패했을 가능성이 컸다.
애초 잉글랜드는 자국 언론에서 EASY(England, Algeria, Slovenia, Yankee를 뜻하며 잉글랜드의 조 편성에 대한 만족감을 직접적으로 드러냄)라는 표현과 함께 이번 남아공 월드컵 C조를 최고의 조라며 호평했다.
게다가 우승 청부가 파비오 카펠로 감독의 부임으로 안정적인 경기운영에 대한 기대치까지 높았다. 예선에서는 승승장구했으며 가레스 배리의 등장은 홀딩 미드필더의 부재로 중원에서 힘을 쓰지 못한 팀을 구할 것 같았다. 하지만, 정작 잉글랜드는 월드컵 본선에서 기대에 못 미치는 경기력으로 실망감만 안겼다.
- 제라드와 램파드의 공존은 결국 실패?
잉글랜드의 부진 중 하나는 스티븐 제라드와 프랭크 램파드의 공존 실패다.
제라드와 램파드는 축구에 관심이 조금만 있는 사람이라도 누구나 알 수 있는 유명한 선수이다 .게다가 두 선수 모두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이하 EPL)의 강호 리버풀과 첼시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세계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 중 하나로 불린다. 강력한 중거리 슈팅은 물론이고 위기 상황의 팀을 구해내는 능력은 보는 이로 하여금 설렘까지 느끼게 한다.
그러나 정작 대표팀에서 이들은 1+1=1의 효과를 낳고 있다.
전통적으로 잉글랜드는 4-4-2를 기반으로 경기에 임한다. 이날 슬로베니아와 경기에서도 잉글랜드는 4-4-2시스템으로 경기에 나섰지만, 제라드를 왼쪽 측면과 중앙에서 움직이도록 했으며 램파드를 배리와 함께 중앙 미드필더로 출장시켰다. 즉, 기존의 포메이션과 다소 차이를 부여한 것이다.
그럼에도, 두 선수는 최악의 호흡을 보여줬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들을 받쳐줄 수 있는 가레스 배리라는 홀딩 미드필더가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부상에서 갓 복귀한 그는 공격과 수비의 연결고리로서 중원의 활력소를 넣어줘야 했지만, 자신의 위치를 제대로 잡지 못하며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이는 중원에서의 무뎌진 압박을 일으켰다.
이 때문에 잉글랜드는 한 수 아래인 슬로베니아를 상대로도 경기를 완벽하게 장악하지 못했다. 제라드가 측면에서 중앙으로 빠져 들어가는 모습으로 고군분투했지만, 그의 원래 포지션이 중앙 미드필더임을 고려할 때 램파드와의 공존이 옳은 것이지 의문이 들었다.
설상가상 지난 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에서 원톱의 역할을 무난하게 소화했던 웨인 루니가 제 컨디션이 아닌 점도 한몫했다. 루니는 최전방에서 상대 수비진을 무력화할 수 있는 선수다. 즉, 전방에서 수비진을 휘저으면서 뒤에 있는 제라드와 램파드에게 공격적으로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다. 게다가 투 톱으로 나선다면 두 명의 공격수를 넣기 때문에 미드필더 조합에서 홀딩의 부재가 드러나지만, 원톱의 역할을 소화하면 공격수 한 명을 미드필더 한 명으로 대체할 수 있음을 뜻한다. 그러나 이날 경기에서 루니는 2선으로 내려와 데포를 뒷받침하는 쉐도우 포워드로 경기에 나섰다.
- 하나의 팀으로서는 위협이 되지 못한 조직력
전통적으로 잉글랜드 대표팀은 스타 군단으로 불린다. 개개인을 살펴보면 EPL에서 내로라하는 선수들이며 각자의 포지션에서 모두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정작 이들이 하나로 뭉쳤을 때는 오합지졸의 모습을 보여준다. 마치 클럽에서 느끼는 라이벌 의식이 대표팀에서도 느껴지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이날 경기에서도 그들은 짧은 패스워크를 통해 상대를 공략하기보다는 횡적으로 벌여주는 긴 패스에 의존했다. 기본적으로 투박한 선수들이 대거 포진했다는 단점이 있지만, 뻥 축구로 불리는 그들만의 긴 패스는 연결 과정에서 문제를 드러내며 전진을 막는다. (단기 공을 멀리 보낸다고 해서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존 테리의 불륜 사건과 더불어 데이비드 베컴의 부상이라는 악재까지 겹쳤다. 팀에서 주장의 역할을 막중하다. 그는 팀의 기강을 바로잡으며 선수들에게 사기를 불어주는 임무를 담당한다. 그러나 잉글랜드의 주장은 클럽과 대표팀에서 같이 뛴 선수의 부인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 게다가 이에 대한 대처도 미숙했다.
남아공 월드컵 토너먼트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게다가 잉글랜드는 경기력에 상관없이 16강 진출에 성공하며 사기가 오른 상태이다. 카펠로 감독의 역량 또한 뛰어난 만큼 토너먼트에서 진가를 드러낼 가능성도 있다. 선수들이 컨디션을 회복한다면 그들의 자랑인 짠물 수비와 결합해 승리와 안정된 경기력이라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사진=잉글랜드-슬로베니아전 (C) Gettyimages/멀티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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