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6.10.20 07:33 / 기사수정 2006.10.20 07:33
[엑스포츠뉴스 = 손병하 축구 전문기자] 운동선수로 꿈꿀 수 있는 최대의 꿈은 무엇일까? 아마도 나라를 대표해 가슴에 국기를 달고 각자의 종목에서 세계 최고의 기량을 가진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국가대표’가 모든 운동선수들의 최후이자 최대의 목표일 것이다.
수많은 선수 가운데서 오직 하나, 혹은 둘만이 뽑히는 국가대표란 자리는 그 자체만으로도 그 분야에서 최고라는 타이틀을 딴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즉 국가대표는 일인자라는 의미와도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모든 선수들이 최고를 향해 달리는 꿈을 국가대표라고 불러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종목에 비해 국가간 대결인 ‘A매치’가 상대적으로 많아서 국가대표란 성스러움의 크기가 조금 흐려지긴 해도, 축구에서의 국가대표 역시 모든 축구선수들의 꿈이자 목표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모든 이들의 선망인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것이 그리 달갑지 않은 선수들도 있을 수 있다. 팀의 이적이나 부상 부위의 치료 등 개인적인 문제부터, 차출을 꺼리는 소속 팀과의 불화를 만들기 싫어서 일수도 있다. 또, 너무 오랜 기간 그리고 또 너무 많이 국가의 부름에 응한 탓에 국가대표에 매력을 느끼지 못해서 일수도 있다.
그리고 무차별한 대표팀의 부름에 몸이 망가지면서 더 높이 날 수 있는 날개를 접어야 할 수도 있다. 이런 경우는 특히 축구에서 많이 나타난다. 어린 유망주들은 유소년부터 존재하는 각급 대표팀에 불려다니며 혹사를 당해야 하고, 부상 부위를 숨기면서 경기에 출전하는 무리수를 둘 때도 있다. 그리고 이런 악순환은 결국 선수 생명을 단축하게 하고, 남은 재능마저 빼앗는 슬픔으로 되돌아오기도 한다.
무리한 일정이 부른 인재
19일, 설기현이 속해있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레딩 FC의 팀 닥터는 ‘설기현의 오른쪽 발목의 뼈에 멍이 들어있고, 인대 손상도 우려된다.’라는 진단을 내놓았다. 자연스레 22일 열리는 아스널과의 리그 경기 출전은 어렵게 되었고, 한창 상승 가도를 달리던 설기현에게는 반갑지 않은 휴식이 찾아올 것으로 보인다.
지난 9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하고 있던 박지성은 오른쪽 발목 인대 파열로 3개월간 결장이 불가피 하고, 이영표도 발목 부상을 당하며 리그 경기와 UEFA컵 경기에 모두 출전하기 어려워지면서 프리미어리그 3총사가 모두 부상자로 등록될 위험에 처했다. 특히 이들 모두가 특별한 부상을 당한 것이 아니라 피로누적에 의한 자연 손상이라는 점에 많은 팬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고 있다.
사실, 지난해 9월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새로 한국 대표팀에 취임하면서 멀리 유럽에서 뛰고 있었던 이들 세 선수는 혹사를 당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감독이 취임하면서 모든 선수들의 기량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했고, A매치 데이에 열리는 친선 경기와 월드컵 예선 등에 박지성과 이영표 설기현 등은 빠짐없이 등장하며 한국 축구의 구세주 역할을 해왔다.
특히 박지성과 이영표는 빡빡하고 틈 없는 리그와 소속팀 일정은 물론이고, 비행시간만 11시간이 넘는 시차를 극복하고 국가대표팀에도 참여해 경기를 치르곤 했다. 굳이 이들이 없어도 상관없을 경기에서도 대표팀 감독을 이들을 불렀고, 해외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의 여건은 고려하지 않은 선수 구성으로 경기를 치르곤 했다.
박지성은 월드컵에서도 피로가 누적된 다친 발목을 이끌고 경기에 출전하다, 최근 부상 부위를 수술받고 3개월간 개점휴업 하고 있는 상태다. 소속팀에서 라이언 긱스와 C.호날두 등과 경쟁하며 한창 주가를 올려야 할 시기에 무리한 출전으로 부담스러운 공백을 맞고 있는 상황이다.
이영표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8일과 11일에 펼쳐질 경기를 앞두고 대표팀의 부름을 받았던 이영표는 귀국 전부터 발목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베어벡 감독은 11일 시리아와의 아시안 컵 예선에서 이영표를 출장시켜 풀타임을 소화하게 했고, 결국 소속팀으로 돌아가서는 발목의 상태가 악화되어 엔트리에서 제외되기까지 했었다.
소속팀인 토트넘이 측면 수비수들인 아수-에코토와 파스칼 심봉다를 영입 하면서 경쟁이 심화된 상황인데, 출전 선수 명단에 들지 못하는 것은 고사하고 부상으로 엔트리에서도 탈락하고 말았다.
박지성과 이영표의 부상에 이어 설기현마저 피로 누적에 의한 발목 부상이 터지면서, 무책임하고 대표팀만을 위한 선수 운영과 행정에 우려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다. 특히 이영표와 설기현이 출전했던 시리아와의 경기에서는 며칠 뒤 바로 잉글랜드로 복귀해 주말 경기를 치러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에 대한 배려 없이 90분을 모두 소화하게 하기도 했다.
가장 최근에 부상이 불거진 설기현도, 주중 서울에서 A매치를 치르고 주말에 바로 첼시와의 런던 홈경기에 출전한 무리한 일정이 결국 화근이 되었던 것이다. 특히 설기현의 부상은 장기화의 우려마저 나오기 있는 실정이라, 최근 그의 활약을 생각할 때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이들도 국가대표로서 최고의 플레이를 펼치며 정상에 서는 것을 마다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선수들이 꿈꿀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이다. 하지만, 국가대표로서의 활동이 도를 지나쳐 혹사로 이어진다면, 선수 개인은 물론이고 한국 축구 전체를 놓고 봐도 큰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이영표와 설기현의 경우 이번 시리아와의 경기를 치르면서 부상이 악화되긴 했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누적되어온 피로가 지금에서야 폭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만약, 이 부상으로 전성기가 길지 않은 축구 선수 생명에 지장을 준다면 그 책임을 누구에게 물을 것인가? 그리고 그로 인해 약해질 대표팀 전력에 대한 책임은 또 누가 질 것인가?
박지성과 이영표 설기현 모두 한두 경기를 뛰었다고 오는 부상이 아니라는 점에 심각성을 두어야 한다. 무리한 대표팀 차출로 인한 피로함에서 오는, 막을 수도 있었던 그런 부상이었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더군다나 이들은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희망이자 이끌어가는 엔진들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들이 부상을 당했다는데 그치지 않는다. 국가대표팀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과 당장의 경기 결과만을 중시하는 근시안적인 태도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박지성과 설기현이 계속 나올 수 있다. 그리고 그럴수록 한국 축구의 발전은 더뎌질지도 모를 일이다. 선수 개인이 곧 한국 축구의 미래라는 생각으로 좀 더 멀리 보고 넓게 볼 수 있는 시각의 전환이 필요한 때이다.
'당신의 꿈을 이뤄 드립니다' 스포츠기자 사관학교 <엑스포츠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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