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0.05.14 05:10 / 기사수정 2010.05.14 05:10
[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지난 10일,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위치한 태릉 아이스링크에서는 차가운 긴장감이 흘렀다. 2009-2010 피겨 스케이팅 시즌을 모두 마감하는 '승급 심사 시험'이 열렸기 때문이다.
점프와 스핀, 그리고 프로그램을 충분히 소화해야 통과할 수 있는 승급 심사 시험은 실전 대회 이상의 긴장감이 흐른다. 승급심사 8급에 등장한 2명의 스케이터 유망주는 준비한 점프를 모두 소화한 뒤, 8급 시험에 합격했다. 피겨 스케이팅 등급 중, 가장 높은 급수가 바로 8급이다.
이 8급 과제를 통과한 2명의 스케이터는 김해진(13, 과천중)과 박소연(13, 강일중)이었다. 이들은 지금까지 거쳐 온 승급 심사 시험을 초고속으로 통과해왔다. 국제무대에서 '피겨 여왕' 김연아(20, 고려대)와 곽민정(16, 군포수리고)이 선전하고 있을 때, 김해진과 박소연도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었다.
특히, 김해진은 트리플 룹, 트리플 플립, 트리플 러츠, 그리고 트리플 룹 + 더블 룹 등을 모두 성공시키며 8금 승급시험에 합격했다. 김해진은 지난 시즌, 만 13세의 나이에 국내 피겨 정상에 올라섰다. 지난해 말, 트리플 점프 5가지를 모두 익힌 그는 '2009 꿈나무 대회'에서 트리플 점프 5가지를 실전 경기에서 모두 랜딩하며 파란을 일으켰다.
그리고 올 초에 열린 '제64회 전국종합남녀 피겨 스케이팅 선수권대회'에 시니어 선수로 출전해 여자 싱글 1위에 올랐다. 2위를 기록한 곽민정보다 14.55점이나 높은 점수로 우승을 차지했다. 또한, 지난 3월 초에 열린 슬로베니아 트리글라브 트로피 노비스 대회에 출전해 144.11점을 받았다. 129.15점으로 2위에 오른 미야하라 사토코(일본)와의 점수 차이는 무려 14.96점 차이였다.
"지난 시즌을 되돌아보면 트리플 점프 5개를 실전 경기에서 뛰었던 점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반면, 아쉬운 점도 많았어요. 프로그램을 좀 더 깨끗하게 하지 못했던 점이 아쉬웠죠"
올 시즌 초는 트리플 점프를 익혀가는 과정이라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안정감을 찾은 김해진은 승급시험에서 최고의 연기를 펼쳤다.
"각기 다른 트리플 점프 5가지를 골고루 뛰고 유지하는 점이 쉽지 않았어요. 특히, 러츠의 에지가 인으로 가는 것이 문제라서 계속 고치고 있습니다. 같은 기술이라도 깨끗한 점프를 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김해진의 장점은 점프의 성공률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지난 시즌, 김해진은 단 한 번도 빙판에 주저앉지 않을 만큼, 뛰어난 컨시 능력을 보여줬다. '점프의 질'도 시간이 지나면서 많이 향상됐다. 트리글라브 대회에서 대부분의 점프를 인정받았고 승급시험에서는 흠잡을 때 없는 트리플 룹 + 더블 룹 콤비네이션 점프를 구사했다.
우승과 값진 경험을 동시에 얻은 트리글라브 대회
매년 슬로베니아에서 열리는 트리글라브 대회는 국내 스케이터와 친숙한 대회다. 김연아는 물론, 윤예지(15, 과천중)와 이동원(14, 과천중) 등도 모두 이 대회 노비스 대회에서 정상에 올랐다.
국제대회 경험이 부족한 김해진은 좋은 경험을 쌓고 국제심판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출전했다. 점프는 물론, 스핀과 스파이럴 등도 뛰어났던 김해진은 144점대의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러나 현지 적응 훈련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에 걱정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이 대회의 장소지인 슬로베니아 예세니체의 링크는 보조 링크가 없었다. 참가한 선수들이 연습할 수 있는 링크가 부족했던 점은 큰 불편으로 작용했다. 현지 적응 훈련이 부족했던 김해진은 경기 당일에도 짧은 몸 풀기만 마치고 곧바로 실전 경기에 임했다.
많은 걱정이 따랐지만 큰 실수 없이 경기를 마쳤다. 그리고 일본에서 온 유망주 2명을 큰 점수 차이로 누르고 정상에 등극했다. 김해진은 "대회가 열리던 날, 많이 안 떨고 경기에 집중한 점이 좋은 결과로 나타난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 대회에서 위축되지 않고 연기할 수 있는 '자신감'을 얻은 점이 큰 수확이었다. 김해진의 어머니인 유공심 씨는 "실전 경기에서 긴장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긴장감을 이기고 경기에 집중하는 것인데 이런 점에서 해진이가 좋은 경험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경쟁자에 대한 의식보다는 내 연기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올 시즌, 국내 피겨계의 화두는 '97년생의 돌풍'에 있었다. 전국종합선수권대회에서 1위와 3위를 차지한 김해진과 박소연이 모두 1997년생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대회 주니어부분에서 정상에 오른 이호정(13, 서문여중)도 동갑내기 스케이터다.
김해진과 이호정은 어릴 때부터 과천아이스링크에서 함께 스케이트를 타온 '죽마고우'다. 또한, 같은 나이에 국가대표로 발탁된 박소연도 경쟁자이기 전에 매우 절친한 친구이다.
"(박)소연이와 (이)호정이에게 특별한 경쟁의식은 없어요. 빙판에 나가서 제 연기에 전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해진은 이번 트리글라브에 출전했을 때, 많이 외로웠다고 밝혔다. 성장하고 있는 동료가 모두 잘해서 함께 국제대회에 나갔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털어놓았다.
김연아가 닦아 놓은 길을 걷고 싶다
어린 유망주들에게 김연아는 멘토로 자리 잡았다. 특히,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이후, 김연아처럼 '토털패키지'의 길을 가겠다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김해진은 "점프도 중요하지만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스트로킹과 표현력에도 집중하고 싶다"고 밝혔다. 트리플 점프 5개를 완성하고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요소에 소홀해서는 안 된다고 말이기도 하다.
"제가 스케이팅과 프로그램 컴포넌트가 부족하다는 점을 알고 있어요. 이 점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번에 떠나는 전지훈련에서는 이 부분을 보완하고 싶습니다"
8급 승급시험을 통과한 김해진은 지난 11일, 미국 뉴저지로 전지훈련을 떠났다. 지도자인 한성미 코치와 2명의 동료와 함께 떠난 김해진은 다음달 25일에 귀국할 예정이다.
"다음 시즌의 목표는 전지훈련을 다녀와야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우선은 국내에서 많이 하지 못한 스트로킹에 주력하고 싶어요. 그리고 프로그램 컴포넌트 점수를 올리는 데에도 중점을 두려고 합니다"
13세의 나이에 비해 대범하고 성숙한 마인드를 지닌 김해진은 "아직은 많이 부족하고 배워야 할 게 많다"고 털어놓았다. 어린 나이에 국내 정상에 올라섰지만 아직도 배울 것이 많은 유망주의 자세로 다음 시즌을 준비하겠다는 각오도 남겼다.
"목동 아이스링크에서 올림픽 선전 기원 갈라쇼를 마친 뒤, 연아 언니의 경기를 봤어요. 완벽한 연기를 본 뒤 감격스러웠고 모든 것을 배우고 싶습니다"
김연아가 닦아놓은 길 중 하나는 기본적인 요소에 대한 중요성을 빼놓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장 고난도 기술 습득을 노리는 것보다는 스트로킹 같은 기본기에 충실하고 싶다는 김해진은 "전지훈련 기간 동안 호정이와 떨어지게 돼 허전할 것 같다"는 말도 덧붙었다.
[사진 = 김해진 (C) 엑스포츠뉴스 조영준 기자, 성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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