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0.03.17 11:28 / 기사수정 2010.03.17 11:28
[엑스포츠뉴스=신철현 기자] 얼마 전 우리나라 코미디계의 대부인 '비실이' 배삼룡이 오랜 투병 끝에 영면의 길을 떠났다.
그의 코미디를 보았던 기자에게는 작은 충격이었는데… 너나 할 것 없이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 배삼룡의 넘어지고, 엎어지는, 좀 모자란 캐릭터는 잘난 사람만 나와야 되는 줄 알았던 TV에 우리보다 못한 사람도 나오는구나 하며 어린 마음에도 정겨웠었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준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요즈음 젊은 세대는 알고 있을까.
힘들고 배고팠던 시절, 가난한 국민에게 잠시나마 모든 것을 잊고, 시름을 덜게 해준 바로 '박치기왕' 김 일이다.
스타의 홍수를 이루는 요즈음과는 달리 그 당시 6~70년대에는 스타란 글자 그대로 하늘의 별처럼 귀하고, 드물었는데 그 중심에 배삼룡과 김 일이 있었다.
별다른 오락거리가 없던 그때, 김 일의 프로 레슬링 시합은 최고의 구경거리였다. '우리 편'인 김 일은 항상 정직하게 시합을 했으나, '나쁜 편'인 상대선수의 못된 반칙 때문에 고전하다가, 마지막에 박치기로 역전승을 거두곤 했는데, 이 '김 일 표' 박치기는 절대 빨리 보여주지 않았다.
수세에 몰리다가 막판에 가서야 정의로운 박치기로 상대선수 -특히, 일본 선수가 많았다-를 추풍낙엽처럼 쓰러뜨리는 그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최고의 영웅이었다. 그리고 1970년대 중반 은퇴를 하게 되는데, 은퇴 후, 이 영웅의 사생활은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일본에서 벌인 사업에 모두 실패해 경제적으로도 어렵고, 그 멋졌던 김 일 표 박치기가 원인이 된 후유증으로 지병을 앓아 육체적으로도 어려웠던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1987년 아내는 백혈병으로 그의 곁을 떠나고, 사랑하던 막내아들도 군대에서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게 되었다.
우리들의 영웅은 그렇게 불행한 말년을 보내게 된 것이다.
그 후, 지병으로 병원에서 지내던 그가, 같이 역도산의 제자로 있었던 숙적 '안토니오 이노키'와 재회하는데, 말끔한 모습으로 늙고 병든 호랑이가 된 그를 찾아온 이노키가 은퇴 후, 국회의원도 역임하는 등 여유로운 말년을 보내는 모습을 보니, 물론 각자의 운명이겠지만, 하늘도, 세상도 너무나 무심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잠시 안타까워지기도 했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김 일이 아끼던 제자 '이왕표'는 고인의 뜻을 기리는 김 일 추모 대회인 '포에버 히어로'라는 대회를 개최함으로써, 고인을 잊지 않으려 노력함과 동시에 쇠락한 한국 프로 레슬링 부활의 실낱같은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제 영웅은 가고, 추억만이 남아 있다.
어쨌거나, 그를 알았던 사람들은 그가 우리나라 최고의 영웅이었음을 부인하지는 못할 것이다.
쇠락하여 겨우 명맥만을 유지하는 지금의 우리 프로 레슬링을 보며, 하늘에서 그는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
[사진ⓒ엑스포츠뉴스 변광재 - 백종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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