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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격 3관왕’ 삼켜버린 헐크

기사입력 2006.02.22 00:42 / 기사수정 2006.02.22 00:42

윤욱재 기자

팬들의 사랑 속에 무궁무진한 발전을 이뤄 온 한국프로야구가 어느덧 25년째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프로야구는 수많은 경기들을 통해 팬들을 웃고 울리는 동안 불세출의 스타들이 탄생하였고, 또 그것이 야구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엑스포츠 뉴스에서는 윤욱재 기자를 통해 스타 선수들의 화려했던 전성기를 찾아 떠나보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박철순부터 손민한까지 '그 해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선수'를 중심으로 집중 조명합니다. 앞으로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프로야구 25년 특별기획 - 나의 몬스터시즌 5] 1984년 이만수


‘사자 우리 재정비’ 한 단계 도약하는 헐크


1983시즌에서 제대로 ‘쓴맛’을 보았던 삼성은 선수 보강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판단, 이번엔 원년에 OB를 우승으로 이끌었던 김영덕 감독을 새로 선임하며 전력 보강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이것은 OB와의 감정싸움의 불씨가 되었다.) 이와 더불어 재일동포 투수 김일융을 스카우트하며 투수진 조각을 맞추는데도 성공했다.


막강한 삼성의 타선은 변함이 없었다. 83시즌부터 첫 선을 보였던 ‘타격의 달인’ 장효조와 찬스에 강했던 함학수, 그리고 그 중심에 이만수가 서있었다.


이만수는 비단 삼성 라이온즈의 간판스타만이 아니었다. 달구벌을 대표하는 스타인 것도 사실이지만 1983시즌 MVP 등극을 통해 전국구스타로 거듭난 그였다. 홈런하면 떠오르는 선수가 되어버린 이만수는 그렇게 한국프로야구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 그의 기량이 활짝 만개한 시즌이 바로 1984시즌이었다. 그는 완벽한 타자였다. 홈런왕 출신다운 파워는 그대로였고 찬스를 해결하는 클러치능력 역시 마찬가지. 여기에 정확도까지 최고조에 올랐다. 투수로선 가까이하기엔 너무 무서운 당신이었다.


한국프로야구 최초의 타격 3관왕


83시즌에 홈런, 타점, 승리타점 부문을 석권하며 3관왕에 올랐지만 그것은 ‘비공식’이었다. 야구에서 말하는 타격 3관왕이란 타격, 홈런, 타점 부문을 의미한다.


전형적인 파워히터인 이만수가 홈런과 타점 모두 발군의 기량을 발휘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지만 타격왕까지 차지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컴퓨터 타격을 자랑하는 전년도 타격왕 장효조(삼성)가 버티고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3번은 장효조가 쳤고 4번은 이만수의 몫이었다. 감독이라면 누구나 갖고 싶은 꿈의 중심타선.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이 환상적인 중심타선은 팀 타율 1위(0.270)로 이끌었고 삼성의 전기리그 우승에 결정적인 밑바탕이 되었다. ‘출루머신’ 장효조가 나가면 이만수가 불러들이는 아주 이상적인 형태였다. 때문에 개인 성적도 좋을 수밖에 없었다.


이만수의 84시즌을 종합해보면 홈런 수는 23개로 지난시즌보다 4개가 줄었지만 타점은 6개나 늘었고 타율은 무려 5푼 가까이 상승했음을 알 수 있다. 홈런, 타점 부문은 2년연속 1위를 수성하고 덤으로 타격왕까지 거머쥐었으니 가히 최전성기에 오른 아주 의미 있는 시즌이었다.


타격 3관왕. 아직까지 한국프로야구사에 이만수가 유일하게 달성한 기록이다. 이런 전인미답의 고지를 밟은 이만수가 더욱 대단하다는 것은 그의 포지션이 ‘3D 업종’이라 불리는 포수였기 때문이다.


당시 포수는 수비가 최우선이었기 때문에 이만수의 순도 높은 공격력은 신선해보일 정도였다. 프로야구사에 비춰보면 공격형 포수의 시발점이라 볼 수 있다. 그 뒤로 여러 선수들이 공격형 포수의 길을 따르고 있지만 이만수만한 위력을 발휘한 선수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이만수의 타격폼은 지극히 평범했다. 뚜렷한 특징을 발견하기 힘들 정도. 그래도 남들을 앞설 수 있는 비결은 따로 있다. 혹자는 당당한 체격 조건에 뿜어 나오는 파워를 연상한다. 물론 그것도 정답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만수의 남다른 노력이다. 선수 생활에 있어 이만수는 철저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기본에 충실했다. 술, 담배는 일절하지 않았고 야구에만 매진하려 했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것도 정신적 완성에 영향을 미쳤다. 즉, 야구선수로서의 마인드가 훌륭했다.


남모를 눈물 흘렸던 이유


화려한 영광 속에 남모르는 눈물을 흘렸던 사연도 있다. ‘타격 3관왕’이 시즌 MVP를 받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치열했던 타격왕 다툼을 벌이던 이만수와 홍문종(롯데)은 결국 1리 차이로 이만수가 타이틀을 차지하게 되는데 마지막 순간이 그리 깨끗하지 못했다.


OB와 앙숙이었던 삼성은 한국시리즈 파트너 고르기 프로젝트로 ‘져주기 게임’을 강행하는데 이와 더불어 개인타이틀 밀어주기를 병행한다. 김영덕 감독은 이만수를 일부러 경기에서 빼 벤치에 앉아 쉬게 하고 경쟁자였던 홍문종에겐 고의 4구를 지시해 더 이상 타율이 오르지 못하도록 술책을 썼다. 스포츠맨쉽이 결여된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비난은 짧지만 기록은 영원하다.”는 김 감독의 한 마디가 심히 걸작이었다. 그렇지만 이만수는 가끔 부끄럽고 당당하지 못했다는 말을 한다. 사실 이만수도 피해자다. 실력으로 당당히 타격왕 타이틀을 차지할 수 있었는데도 팀에서 봉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쌓아온 업적을 단 한 경기 때문에 쉽게 폄하할 수 없다.


한편 삼성은 파트너를 직접 선택했는데도 한국시리즈에서 또 한 번 무릎을 꿇고 말았다. 이만수는 84한국시리즈를 포함해 총 6번이나 한국시리즈에 나섰지만 모두 우승과 연결시키지 못했다. 아무래도 이만수와 한국시리즈는 영 인연이 아니었나보다.


이만수 (1984) → 23홈런 80타점 타율 0.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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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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