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27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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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번호에 숨겨진 이야기들

기사입력 2006.02.12 23:47 / 기사수정 2006.02.12 23:47

김성진 기자

어느 스포츠마다 등번호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특히 축구의 경우 번호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팀의 에이스를 상징하는 10번일 것이다. 단순히 공격수의 번호였을 뿐인 10번은 브라질의 수퍼스타 펠레에 의해서 그 상징성이 더해졌다. 만약 펠레가 10번이 아닌 다른 번호를 달았다면? 아마도 그 다른 번호가 현재 10번의 의미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20번을 단 황선홍은 어색해 보인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 18번과 20번, 국내 축구 선수들에겐 상징적인 번호

축구팬들에게 18번과 20번을 단 선수로 누가 생각나느냐고 물어본다면 열이면 열, 전부 황선홍과 홍명보를 대답할 것이다. 그만큼 이 두선수가 달았던 18번, 20번은 이들의 분신과도 같았다. 하지만 이들이 평생을 함께한 이 번호를 단것은 우연이었다. 처음 대표팀에 뽑혔을 당시 앞번호들은 선배들이 차지하였고 결국 이들에게 남겨진 번호는 이 두 번호였던 것. 어쩔수없이 달았던 번호였지만 이것이 결국 은퇴할때까지 따라갈 줄은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황선홍은 한때 홍명보의 번호였던 20번을 달았던 적이 있었다. 99년 J리그 득점왕을 차지했던 황선홍은 이듬해인 2000년 수원 삼성으로 이적을 했다. 그리고 달았던 번호가 친구 홍명보의 번호인 20번. 사람들은 분명 황선홍이 18번을 달 것이라 생각했지만 당시 18번은 박건하가 달고 있었다.(지금도 박건하는 18번을 달고 있다.) 황선홍은 후배의 등번호를 굳이 뺏고 싶은 마음이 없었고 비어있는 번호였던 20번으로 결정했다. 2000년을 맞이해서 새롭게 시작하겠다는 의미로 20번을 달았던 황선홍이었지만 여름이 채오기전에 팀동료 데니스와의 불화로 J리그로 다시 이적을 했던 안좋은 추억을 갖게 해준 번호이기도 했다.

이 두선수가 은퇴한 뒤로 18번과 20번의 후계자가 누가 될 것인지가 축구팬들의 관심사다. 일단 20번은 이동국의 차지가 되었다. 98년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하면서 홍명보의 번호였던 20번을 물려받은 이동국은 홍명보가 차출되지 않는한 각급 대표팀에서 20번을 달며 종횡무진 맹활약을 펼쳤다. 98년 가을 청소년 대표팀에 차출됐을 당시 이동국은 11번을 배정받았으나 몇일뒤 번호를 동료 설기현에게 넘기고 20번으로 바꿔 달았다. 20번에 대한 애정과 함께 자신의 팬들이 20번 이동국을 보고 싶다는 것이 그 이유.

그러한 이동국이 잠시 18번을 달았던 적도 있다. 바로 99년 나이지리아에서 열린 세계청소년대회에 참가를 위해서였다. 당시 대회는 1~18번으로 등번호를 정해놓았기에 이동국은 자신의 애정이 숨쉬고 있는 20번을 잠시 띄고 대선배 황선홍의 번호를 물려받았다. 18번을 단 이동국을 보며 팬들은 황선홍같은 활약을 해주길 바랬으나 청소년대표팀의 16강 진출을 이끌지 못한채 아쉽게 귀국했었다.

18번을 달고 활약했을 당시의 모습 ⓒ gkworldcup.com
- 등번호에서도 튀길 바랬던 김병지

국내 축구 선수중 가장 튀는 선수라 하면 역시 김병지(FC 서울)일 것이다. 꽁지머리라는 별명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튀는 헤어스타일과 하프라인까지 공을 몰고 나오는 겁없는 플레이는 일약 그를 대스타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유니폼을 통해서도 새로움을 보여주고 싶어했다. 98년 K리그 플레이오프에서 헤딩 골든골을 넣으며 일약 골넣는 골키퍼가 되었던 김병지는 2000년에 자신의 등번호를 1번에서 18번으로 바꾸었다.

국내에선 황선홍의 영향으로 18번은 공격수의 상징처럼 여겨왔고 김병지가 18번을 선택했다는 것은 그만큼 공격적 성향을 가진 새로운 골키퍼를 보여주겠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됐다고 할 것이다. 김병지는 목표대로 그해 2골을 넣으며 여느 수비수보다도 많은 득점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포항으로 이적한뒤 행운의 사나이가 되겠다며 구단측에 77번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던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올해 팀 후배 골키퍼인 박동석이 지난해까지 달았던 41번에서 국내 선수 최초로 99번을 달았는데 선배인 김병지만큼 톡톡 튀는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가 된다.

1+8번을 받은 사모라노 ⓒ skytv.it
- 9번을 너무나도 사랑했던 사모라노

칠레의 축구영웅 이반 사모라노는 누구보다도 등번호 9번에 대한 애정이 넘쳐나는 선수였다. 특히 인터 밀란에서 1+8번이라는 특이한 번호를 달고 선수 생활을 했던 것은으로도 유명했다.

1997년 9번의 사나이 호나우두는 프리메라리가 득점왕 타이틀과 함께 인터 밀란에 입단하게된다. 호나우두는 에이스의 상징인 10번을 받았지만 이듬해 팀의 용품 업체가 나이키로 변경되었고 나이키와 함께 자신의 이름을 딴 R-9 상품을 출시했다. 나이키는 상품의 광고를 위해 인터 밀란측에 호나우두의 등번호 변경을 요구했고 인터 밀란은 거액의 지원을 위해 등번호 변경을 결정한다.

게다가 이탈리아의 국민적 영웅이자 영원한 10번인 로베르토 바조가 인터 밀란에 입단하게 되면서 사모라노는 호나우두가 달던 10번을 바조에게 주게되었고 사모라노는 자신의 재치로 1+8번을 달게 되었다. 보는 이들에겐 즐거움을 선사한 사모라노였지만 그는 9번을 못단 아쉬움에 많은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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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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