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이덕행 기자] (인터뷰①에 이어)
타이틀 곡 'La Mer'는 제목처럼 바다를 품고 있는 듯이 잔잔하다가도 맹렬하게 부서지는 파도처럼 극적인 전개를 지닌 곡이다. 대자연의 광활한 바다에서 파도의 한 조각까지 훑어 내려가며 구석구석 가슴 아픈 일들을 치유하듯 어루만지는 선율이 인상적이다.
"작업하던 곳에서 문을 열면 테라스 아닌 테라스가 있고 그 앞이 바다다. 절벽이라 떨어지면 죽을 정도로 바로 바다가 보이는 그런 곳이었다. 그러다 보니 타이틀곡이 '바다'가 됐다. 사실 도착하고 밤에 창문을 닫아도 파도 소리가 들리니까 처음 이틀은 무서웠다. 어느순간 마음이 편해지더라. 이런 곳에서 사는 게 약간 심장 소리 같기도 했다"
평소에도 서핑을 하며 여러 바다를 갔다는 정재형은 바다를 보고 인생을 느꼈다. 이 속에서 정재형은 함께 응원하는 마음을 찾았다.
"잔잔하기도 하지만 들어가면 힘이 세서 밀려나기도 한다. 인생을 옆에서 지켜보며 서글프고 애쓴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러면서 '거칠고 힘들지만 잘살고 있어. 조금씩 앞으로 나가보자' 이런 마음을 담고 싶었다. 서핑을 할 때 처음에 도와주지 않으면 해변으로 밀려난다. 그런데 옆에서 도와주면 앞으로 나간다. 이런 게 인생과 비슷한 것 같았다. 서로를 응원할 수 있는 마음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곡을 만들었다"
정재형은 "싫은 곡은 뺐다"며 모든 곡에 애착을 드러내면서도 1번 트랙 'MISTRAL'과 4번 트랙 '안단테'에 깊은 애착을 보였다. 또한 일렉트로닉 소스가 결합된 8번 트랙 'WALTZ FOR EMPTINESS'를 작업하기 가장 어려웠던 곡으로 꼽았다.
"'안단테' 오케스트레이션을 들을면 저도 모르게 웃게 되더라. 수직것이 화성이라면 수평적인게 대위법적인 부분이 수려하게 이루어진 것 같다. 가장 어려웠던 곡은 마지막 곡이다. 전자 음향의 일렉트로닉 소스를 만들고 연주한 것인데 생각보다 어려웠다. 이런 상상을 안 한 사람은 없는데 그걸 만들어내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었다. 믹스만 이틀 동안 한 것 같다. 생각을 합치는 일이 굉장히 어려웠던 것 같다"
9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렸음에도 정재형이 다시 앨범을 낼 수 있었던 것은 특별한 영감보다는 꾸준하게 노력하는 끈기였다.
"음악을 하며 가장 중요한 것은 음악성, 영감보다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는 일인 것 같다. 누가 더 집중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게 가장 고마운 일 같다. 저만 포기 안 한 게 아니라 이사님과 연주자들도 끝까지 해내려고 다들 노력했다. 퀄텟같은 경우는 한 번 연습하고 여덟 시간을 녹음했다. 그런 수준의 사람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완벽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것들이 있어서 잘 맞았다. 녹음하는 이사님, 마스터링해주는 기사님까지 오로지 '완벽해야 한다'는 그런 게 있었다. 그런 열정들이 함께 했던 것 같다"
오랜만에 돌아온 정재형의 관심은 오롯이 대중들을 향해 있었다. 주변 동료들의 평가에 대해서는 "조무래기들은 신경 안 쓴다"며 너스레를 떤 정재형이지만 대중들의 평가에 대해서는 다른 면모를 보였다.
"곡을 쓰면서부터 끝날 때까지 '이게 어떻게 들릴까'하는 고민을 많이 했다. 제 지인들은 제가 음악을 많이 들려주는 편이다. 주변 사람들보다 대중들에게 어떻게 들릴까 하는 의심? 자기경멸 같은 게 많았다. 그래서 저를 의심하고 의심하고 의심했던 것 같다. 지인보다 중요한 건 지금까지 제 음악을 들었던 사람들이 어떻게 들을까하는 것이었다. 그런 부분에서 만듦새나 이런 것들이 완벽해야 했다고 고민했던 것 같다"
정재형은 지금까지도 '어떻게 들릴까'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며 직업인으로서의 음악가에 대한 고뇌를 털어놓았다.
"직업으로서 음악가는 확신을 하는 직업이 아닌 것같다. 계속 의심하고 나에 대한 불확신 속에 살아야되는 것 같다"
9년만에 앨범이 나온 만큼 다음 앨범도 9년이 걸리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앞섰지만 정재형은 "모르는 일이다"라면서도 "금방 해야죠"라며 팬들을 안심시켰다.
"모르는 일이다. 다음 앨범을 '이런 거 하자'는 생각은 잡혔다. 지금은 음악에 들어와 있는 상황이라 다음 앨범에 대해 환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다. 일렉트로닉 오케스트라 형태로 만들면 멋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컴퓨터 하나로 혼자 다 만드는 앨범을 생각해보고 있다. 마지막 트랙이 신호 같기도 하고 조금 더 전자 음악적인 성격의 오케스트라를 만들어보려고 한다. 갈 길이 멀어서 프로그램을 배워야 하나는 생각을 하고도 있다"
오랜만의 앨범 발매인 만큼 팬들에게 특별한 반응을 기대할 법도 하지만 정재형은 "해석은 청자에게 달려있다"며 덤덤한 모습을 보였다.
"제 선에서의 앨범은 끝난 것 같다. 이제는 완전히 청자에게 가 있는 것 같다. '정재형이구나'라는 반응을 받으면 좋겠다. 곡 하나하나마다 의도를 이야기는 할 수 있는데 그 의도대로 들어달라고는 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다만 음악 도슨트 형식으로 콘텐츠를 만들어볼까는 생각 중이다. '이런 느낌으로 만들었다'고 소개만 하고 해석은 청자에게 맡기는 것이다.
정재형이 말한 '정재형이구나'라는 말은 방송에서의 이미지가 아닌 그동안 음악을 통해 보여준 이미지였다.
"9년만 이니까 잘 모르겠다. 일렉트로닉도 했고 발라드도 하고 순정마초도 하고 그런 흐름대로의 정재형인 것 같다. 'Le Petit Piano'를 하는 음악 안에서의 정재형이라고 봐주시면 좋을 것 같다"
(인터뷰③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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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행 기자 dh.lee@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