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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바토크⑪] 주연보다 빛나는 조연, 작은 거인 호비뉴

기사입력 2010.01.21 08:31 / 기사수정 2010.01.21 08:31

박문수 기자

- 주연보다 빛나는 조연, 작은 거인 호비뉴

[엑스포츠뉴스=박문수 기자] 지난 삼바 토크 10편에서는 왼발의 달인 히바우두에 대해 논하였다.

히바우두는 호나우두라는 당대 최고 스타의 후광에 밀려 조연에 머물렀지만, 주연보다 빛나는 조연이란 명성이 아깝지 않을 만큼 제 몫을 해냈었다. 특히 2002 한일 월드컵에서 팀 동료와의 연계 플레이를 통한 도우미 역할과 결정적인 순간에 보여준 한 방은 대표팀의 우승에 일등공신 중 하나라는 평을 받게 했다.

히바우두가 과거라면 현재의 브라질에는 주연보다 빛나는 조연이 누가 있을까? 필자는 펠레의 재림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어린 나이에 디에고 히바스와 함께 브라질을 제패하며 기대주로 주목받았지만, 카카에 밀려 주연보다는 조연이라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호비뉴를 꼽을 것이다. [대표팀에서의 호비뉴는 카를로스 둥가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으며 공격의 에이스로 군림했지만, 카카에 비해 주목을 덜 받고 있다.]

호비뉴의 별명은 '제2의 펠레'이다. 펠레와 마찬가지로 산토스 유스 출신이며 산토스 소속으로 어린 나이에 브라질 리그를 평정한 슈퍼스타였다. (필자는 호비뉴의 스타일을 작은 새 가린샤와 가장 유사하다고 본다.) 강력한 피지컬을 바탕으로 상대를 압도하지는 않지만, 훌륭한 드리블 능력을 자랑하는 테크니션이며 브라질을 대표하는 슈퍼스타이다.
 
1984년 브라질의 상 파울루에 위치한 빈민가에서 태어난 그는 다수의 브라질리언이 그랬듯이 어린 시절부터 공과 함께 자라났다. 6살이 된 해에는 베이라마르 축구 아카데미에 다니며 축구 선수의 꿈을 키워나갔고 9세 무렵 참가한 풋살리그에서는 한 시즌 동안 73골을 집어넣게 된다. 이후 그는 10살 때 '펠레 축구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으며 2년 뒤에는 페레이라의 눈에 들어와 펠레의 산토스 유스팀에 입단하게 된다.

산토스 입단 이후 호비뉴는 캄페오나토 상파울루 U-17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이듬해 프로 선수로 화려한 데뷔를 가지게 된다. 데뷔와 동시에 그는 2002년, 2004년 소속팀 산토스를 2차례나 브라질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하도록 이끌었으며, 2004년에는 브라질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게 된다.

이러한 그의 순항은 레알 마드리드로 둥지를 옮기게 했다. 어린 나이에 세계 최고의 클럽인 레알 마드리드에 입성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호비뉴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었다. 레알로 이적한 호비뉴는 본래의 포지션과 달리 측면 미드필더의 임무를 부여받았다. 이 때문에 그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활약으로 팬들로 하여금 실망을 안겨 주게 되었지만, 2006-2007시즌과 2007-2008시즌에 레알 마드리드의 라 리가 2연패에 공헌하며 '뛰어난 재능'임을 입증했다.


- 작은 거인 호비뉴 (Robson de Souza)의 맨시티 입성

지난 2008년 8월 마지막 날, 필자는 여느 때처럼 대학교 고 학번이라는 악재에 맞서기 위해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고 있었다. 따스한 햇볕의 영향으로 날씨도 무더웠던 필자는 더위라는 적을 이기지 못하며 졸고 있었다. 그 순간, 평소 호비뉴의 열렬한 팬으로 알려진 필자를 위해서 누군가가 문자 메시지를 통해 ‘호비뉴, 맨시티 행’이라는 내용을 보냈다.

불과 하루 전만 해도 레알 마드리드에 잔류할 것이라는 뉴스를 접했는데 몇 시간 만에 맨체스터 시티(이하 맨시티)의 유니폼을 입은 호비뉴를 상상하는 것은 지옥이었다. 펠리페 스콜라리를 신임감독으로 임명한 첼시로의 이적은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갑작스런 맨시티 행은 반전이었다.

결국, 후배의 장난일 것이라는 문구만 머릿속에 떠올린 채 화장실을 간다는 핑계로 도서관 로비에서 컴퓨터를 켠 순간, 지옥은 현실이 되었다. 브라질 대표팀의 중심이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이하 EPL) 최고의 이적료를 기록하면서 맨시티 행을 선택한 것은 의외였다. 맨시티가 UEFA 챔피언스리그에 나가는 팀도 아니며 EPL 내에서 맨체스터의 주인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란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에 호비뉴의 선택에 대해 실망했었다.

자세히 알아본 결과, 호비뉴와 레알 마드리드와의 불화가 심각했으며 첼시와의 이적 협상이 결렬된 상황에서 막대한 오일 머니를 등에 업은 맨시티가 갈 곳 없는 호비뉴를 영입한 것이었다.

[물론 맨시티를 선택한 것은 호비뉴 본인을 위해서도 좋은 결정이었다. 레알 마드리드에 남아서 플레이하는 것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만을 원하는 당시 구단주 칼데론의 바람과는 거리가 멀었으며 본래의 포지션에서 나오지도 못한 상황은 그의 기량에 의문을 낳았으니 새로운 팀에서 자신의 진가를 발휘하는 것은 바람직해 보였다.]

그럼에도, 브라질 축구계의 유명 인사들은 호비뉴에 대한 비판을 시작하였다. 머나먼 이국 땅 사람들도 충격을 받았으니 그의 맨시티 행이 국가적 망신이라는 오명을 벗기는 힘들 것이라 생각했다. 게다가 호비뉴는 2007년 FIFA 올해의 선수상과 발롱드흐를 석권한 카카보다 대표팀 내에서 입지가 확고한 에이스였으니 상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호비뉴는 맨시티에서 데뷔 경기를 가졌는데 상대팀은 자신과의 협상에서 소극적인 첼시였다. 시티 오브 맨체스터에 모인 맨시티 팬들은 호비뉴의 등장에 환호했으며 호비뉴는 이에 보답하듯이 감각적인 프리킥으로 한 골을 기록했다. (물론 맨시티는 첼시에 패했다.)

작은 거인 호비뉴가 맨시티의 주축이 되어 그들의 순항을 이끌 수 있다는 상상은 그의 팬으로서 기뻤지만, 현실로 돌아오자면 맨시티와 호비뉴는 최악의 궁합이었다. 호비뉴가 리그 초반, 뛰어난 개인 기량을 통해 득점 순위 상위권에 오른 순간 맨시티는 강등권으로 떨어졌었고 그가 부상으로 이탈한 뒤 팀은 더 잘나갔다.

현재까지 호비뉴는 맨시티와의 불화설 때문에 이적설이 나오고 있으며 로베르토 만치니 감독은 호비뉴의 팬이지만, 그의 개인 플레이와 마인드는 맘에 들지 않는다고 경고하며 벤치 멤버로 전락시켰다. 몇몇 팀이 그의 영입을 노리고 있지만, 막대한 이적료와 주급은 부담이 되며 어느덧 한국 나이로 27살이 되었으니 선수 생활도 예전만큼 길지 못하다.

-  셀레상의 흑진주, 호비뉴

앞서 말했듯이 맨시티에서의 호비뉴는 기대 이하이다.

물론 호비뉴가 2005년 산토스를 떠나 레알 마드리드 행을 선택하며 유럽 무대에 진출한 이후, 클럽에서 제대로 활약을 해준 것은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2007-2008시즌 전반기가 전부이다. 레알의 에이스로서 전반기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며 역시 삼바 군단의 에이스라는 평가를 얻었던 그는 부상에서 신음하며 그라운드에서 이탈. 칼데론의 호날두에 대한 심한 애정 때문에 불화설에 시달리며 팀까지 옮겼다.

그럼에도, 브라질 대표팀에서의 호비뉴는 특별하다.

2006 FIFA 독일 월드컵에서 우승 후보 0순위로 불린 브라질은 5위라는 다소 초라한 성적으로 대회를 마감했다. 대표팀의 부진에 대한 비판은 당시 감독이었던 카를로스 파헤이라(現 남아공 감독)으로 쏠렸으며 이를 견디지 못한 그는 언론의 압박에 순응하며 대표팀 감독에서 물러났다.

이후, 브라질은 개혁의 의미로 주장 출신인 카를로스 둥가를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했었다. 부임 직후, 둥가는 대표팀의 세대교체의 중심인물로 호비뉴를 지목했으며 호비뉴는 둥가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으며 가장 브라질리언다운 플레이를 보여줬다.

호비뉴는 아드리아누, 호나우두, 호나우지뉴, 카카로 이어지는 마법의 4중주가 위력을 잃은 채, 대표팀에서 입지를 잃고 있는 과도기 상황에서 등장한 구세주였다. (오랜 기간 둥가의 플랜에 빠지지 않는 인물이란 점은 그의 능력을 대변해준다.) 특히 2007 코파 아메리카에서 호나우지뉴와 카카라는 당대 브라질을 대표하던 스타 플레이어가 없는 상황에서도 당당하게 대표팀의 우승을 이끌며 에이스의 입지를 다시금 굳혔다.

- 둥가의 브라질에서 호비뉴가 중요한 이유

브라질에서 호비뉴가 맡은 역할은 간단하다.

좌측에서 활발한 플레이를 선사하는 그의 능력을 고려한 둥가는 최전방 타겟형 포워드인 루이스 파비아누의 파트너로서 그를 기용한다. 정확히 말하면 쉐도우 포워드의 임무를 맡으며 공격에서의 원활한 공배급을 돕고 있다. 카카가 투 톱 아래에서 공격을 지휘하고 있다면 호비뉴는 직접적으로 득점에 가담하거나 파비아누에게 득점 기회를 만들어준다.

(카카가 종적인 움직임을 바탕으로 공격의 상하 움직임을 주도한다면 호비뉴는 횡적인 움직임을 바탕으로 측면에서 중앙으로 공격을 이끈다.)
 


여기서 우리는 지난 2009년 마지막 2차례의 평가전에서 잉글랜드와 오만을 상대로 이겼지만 만족스럽지 못했던 브라질을 회상해보자. 

컨페드컵에서 우승하며 최강의 자리를 회복했던 브라질이 잉글랜드와 오만을 상대로 이기고도 고전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공격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호비뉴가 부상 때문에 2번의 평가전에 나서지 못한 것이다. 이 때문에 브라질은 그라운드를 종횡무진 누빌 수 있는 카카와 호비뉴의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만일 호비뉴가 출전하지 않는다면, 브라질에서는 카카보다 전방에서 상대 수비진의 좌우를 벌리는 횡적인 움직임을 통해 공간을 창출하는 선수의 움직임이 없기 때문에 종적인 움직임에만 의존하는 뻥 축구를 구사하게 된다. 현재 브라질의 전술상 호비뉴가 중용될 수밖에 없는 극명한 이유가 드러난 것이다.

호비뉴는 뛰어난 드리블을 바탕으로 상대 수비수를 교란 시키며 이에 걸맞은 활동량을 자랑한다. 비록 카카에 밀리며 조연의 역할을 수행하지만, 주연보다 빛나는 조연으로서 작은 거인의 힘을 보여주는 호비뉴를 기대해보자.

[사진=브라질의 에이스 호비뉴 ⓒ FIFA, 호비뉴, 맨체스터 시티 공식 홈페이지 캡쳐]

[박문수의 삼바토크] "축구는 영국이 만들었지만, 브라질에 의해 완성되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축구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도 브라질이 세계 최고의 축구팀이란 사실을 쉽게 인정하며 무의식적으로 인식된 브라질 축구의 강력함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오래된 관습으로 자리매김했지요. '엑스포츠뉴스'는 매주 목요일 본지 박문수 기자를 통해 브라질 축구에 대한 깊이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연재물 '삼바 토크'를 연재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 드립니다.



박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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