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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리에A 톡] 이탈리아 축구의 상징, 판타지스타 (상)

기사입력 2010.01.18 08:48 / 기사수정 2010.01.18 08:48

박문수 기자



2010년 어느 날, 무료한 하루에 대한 보답으로 평소 열렬하게 좋아하던 영화 배우 조안의 파격적인 변신으로 주목받은 킹콩을 들다를 보기 위해 동네 책방에 갔었다. 날씨도 춥고 소파에서 편하게 영화를 본다는 기분에 들뜬 필자는 우연히 고교생활을 동고동락했던 미치테루 쿠사바의 일본 만화 환타지스타를 다시 접할 기회를 있었다. 

(물론 만화만 본 것은 절대 아니다. 본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영화도 봤다. 매일 밤 8시25분, 아무런 이유 없이 필자를 티비 앞에 앉게 해주던 여배우가 역도 선수로 변한 모습은 대단하다는 찬사를 주고 싶었지만, 이유 없이 슬펐다.)

본론으로 돌아와 이 날 하루종일 침대 위에서 읽었던 만화 환타지스타는 많은 생각을 가져다주었다. 고교 시절, 담임 선생님 몰래 야간자율학습시간 때 접했던 만화를 편하게 본다는 것에서 오는 행복과 별개로 환타지스타는 이탈리아 축구에 대해 잊고 있었던 몇 가지 사실을 상기시켜줬다.

만화의 내용은 단순하다. 일본 축구의 기대주인 쉐도우 포워드 사카모토 테뻬이가 이탈리아 세리에 A 무대에 진출하여 성공한다는 신데렐라 스토리가 전개된다. 일본 출신의 선수가 세계 최고의 플레이메이커가 된다는 점에서 현실과는 거리가 멀지만 (만화 속 사카모토는 아마도 에스파뇰에서 뛰는 나카무라 슌스케를 지칭하는 것 같다.) 사카모토는 AC 밀란의 10번을 달고 그라운드를 휘저으며 일본을 세계 최고의 팀 중 하나로 만든다. 그러나 이 만화는 사카모토의 일대기보다 만화 속에서 나오는 다양한 볼거리 때문에 더욱 재미있었다.

과거 축구 왕 슛돌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환타지스타는 일본인들의 세리에 A에 대한 사랑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렇다면, 전 세계 축구인의 로망으로 자리 잡은 이탈리아 축구를 상징하는 요소 중 하나인 환타지스타는 무엇일까? 물론 이탈리아 축구는 빗장수비로 불리는 카테나치오도 큰 볼거리이지만, 카테나치오에 대한 얘기는 잠시 접을 것이다.
 


환타지스타의 정식 명칭은 Fantasista이다. 판타지스타로 불리는 이 용어는 이탈리아 축구 진화 과정에서 필수적인 요소였다. 판타지아(창조성)라는 단어에서 오는 어감에서 보이듯이 필드 위에서 무엇인가 기대하게 해주며 남들보다 특별한 재능을 통해 팀을 이끄는 구심점의 선수를 뜻한다. 단, 공격형 미드필더를 뜻하는 3/4의 트레콰르티스타와는 다르다. 판타지스타는 투톱의 일원으로서 최전방 공격수를 보좌하는 쉐도우 포워드를 뜻한다. (세리에 매니아 닉네임 스마씨의 칼럼과 現 성남 홍보마케팅팀에 근무하는 이윤철씨의 ‘판타지스타에 대한 오해’ 참고)

지난 1994년 미국 월드컵 결승전 승부차기에서 공을 허공으로 날린 로베르토 바지오도 판타지스타였으며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 수비진을 농락했지만 아쉽게 퇴장을 당했던 프란체스코 토티와 2006 독일 월드컵 독일과의 4강전에서 감각적인 인프런트 슈팅을 보여줬던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도 마찬가지이다.

90년대 최고의 판타지스타 로베르토 바지오는 당대 스타 플레이어였던 로베르토 만치니, 지안루이카 비알리, 쥬세페 시노리보다 한 단계 앞선 이탈리아 내 최고의 선수였다.

피오렌티나, 유벤투스, AC 밀란, 인테르 밀란으로 대표되는 이탈리아 내 명문클럽에서 모두 활약한 이색적인 경력을 소유했으며 공격수가 지녀야 할 드리블, 슈팅, 패스이란 3박자를 고루 갖춘 완벽함 그 자체였다. 바지오는 어린 필자에게 축구에서의 우아함이란 어떤 것인지 알려준 인물이다. 174cm라는 운동선수치고는 작은 체구를 소유했던 그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마술사였다. 지난 94 미국 월드컵에서 불미스러운 실축 때문에 원성을 낳았지만, 아리고 사키의 이탈리아가 조별 예선에서의 부진을 만회하며 준우승이란 값진 성과를 얻은 것은 바지오의 마술 때문이었다.

애초, E조에 편성된 이탈리아는 아일랜드와의 첫 경기에서 0-1로 패했으며 노르웨이와의 2차전에서 1-0으로 이겼지만, 멕시코와 1-1로 비기며 힘겹게 조 2위로 16강에 진출했었다. 16강 상대는 아프리카 돌풍의 핵이었던 나이지리아였으며 예선에서 부진했던 바지오는 교체 멤버였다.

예선에서부터 이어진 부진한 공격력으로 고전했던 이탈리아는 결국 교체 투입된 로베르토 바지오의 2골에 힘입어 2-1로 역전한다. 후반 종료 직전까지 0-1로 끌려가던 이탈리아였기 때문에 바지오의 마법은 팀의 큰 보탬이 되었다. 바지오는 스페인과의 8강전에서도 후반 종료 직전 결승골을 넣었으며 불가리아와의 4강전에서도 2골을 넣으며 팀을 결승으로 이끌었다. 만일 바지오가 없었다면, 이탈리아는 조기 탈락했을 것이다.

바지오는 세리에 A에서도 좋은 모습을 선사하며 팬들을 열광시켰다. 이 짧은 글 속에 그의 활약을 담기는 무리가 있기 때문에 한 마디로 최고 그 자체라고 부르고 싶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지난 세대 최고의 판타지스타는 바지오이다.

바지오의 후계자는 유벤투스의 상징 델 피에로이다. 73년생이란 고령의 나이를 극복하지 못하며 이번 시즌 부진의 나락으로 떨어진 유벤투스의 구원자가 되지 못하며 비난을 받고 있지만, 바지오가 얻지 못한 월드컵 우승이란 타이틀을 소유한 점에서 오랜 기간 이탈리아 축구팬들의 사랑을 받을 것이다.

세리에 B 팀 파도바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한 그는 1995-1996시즌 아이돌 바지오가 AC 밀란으로 둥지를 옮기자 유벤투스의 10번을 물려받게 되며 판타지스타로서 한 단계 성장한다. 델 피에로가 10번을 달게 된 첫 시즌 만에 유벤투스는 바지오의 부재 속에서도 리그와 챔피언스 리그 우승으로 더블을 달성한다.

이후, 델 피에로는 생각만큼 위협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축구 선수에게 있어서 최대의 적인 부상에 시달렸으며 이 때문에 결정적인 상황에서 자신이 맡은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다. 잦은 부상은 이탈리아 대표팀 내 에이스 자리를 토티에게 내주게 되었으며 우여곡절 끝에 출전한 유로 1996과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부상과 부진으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2004년, 아약스 암스테르담 소속의 최고 유망주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가 유벤투스로 둥지를 옮기면서 벤치 신세로 전락했고 파비우 카펠로 체제에서는 기를 펴지 못했지만, 2006년 이탈리아 전역을 강타했던 칼치오폴리란 악재 속에서도 팀을 지키며 유벤투스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앞서 지적했듯이 델 피에로는 판타지스타이다. 우아한 드리블을 바탕으로 자신의 체격적 단점을 극복하며 남들보다 특별한 테크닉을 바탕으로 그라운드에서 빛을 내며 동료와의 연계 플레이와 좁은 공간에서 상대 수비수를 제치는 능력은 여전히 위협적이다. 가벼운 볼 터치와 움직임 속에서 나오는 조율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74년생이라는 고령의 나이로 인해 이제는 그라운드 위에서 그의 플레이를 오랫동안 볼 수 없는 점이 유일한 단점일 것이다.

다음주 월요일에 세리에 A 톡 이탈리아 축구의 상징 판타지스타 (하) 편이 이어집니다.

[사진=유벤투스의 전,현직 주장 로베르토 바지오와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 ⓒ 유벤투스 FC 공식 홈페이지 캡쳐]



박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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